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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와 문장부호를 좀 바꿔서 올렸습니다.

연개소문의 정확한 이름
일본서기의 이리수가미(伊梨柯須彌)에 대한 올바른 해석
카오스 : 2010.10.26

1. 연개소문의 여러 이름들... ----이하 [이름=성+이름]임

(1) 연개소문(淵蓋蘇文) : 淵(성) + 蓋蘇文(이름 혹은 직책) --- [삼국사기(三國史記)]
(2) 천개소문(泉蓋蘇文) : 泉(성) + 蓋蘇文(이름 혹은 직책) --- [이연(李淵)의 피휘(避諱)]
(3) 개금(盖金) : 盖金(어디까지가 성인지 이름인지 불명확)---[대체로 성일 것으로 추정됨]
(4) 개소문(蓋素文) : 蓋素文(어디까지가 성인지 이름인지 불명확)---[대체로 이름일 것으로 추정됨]
(4) 이리수가미(伊梨柯須彌)  : 伊梨(성) + 柯須彌(이름 혹은 직책) ---[일본서기(日本書紀)]
* 피휘(避諱) : 군주나 자신의 조상의 이름에 쓰인 글자를 사용하지 않는 관습

연개소문에 대한 성과 이름이 여러 가지로 알려져 있지만, 대체로 보면 성씨가 淵(성) 혹은 伊梨(성) 혹은 盖金(일단 성으로 간주함)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그 성이 왜 이렇게 여러 가지로 불리게 되었는지와 그리고 또 이름이 蓋蘇文, 蓋素文 혹은 盖金 혹은 柯須彌 등 여러 가지이고 이것들이 이름인지 직책인지가 불명확하여 정확한 이름이 무엇인지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蘇文이 어떤 직책일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도 오직 연개소문에게만 적용되는 직책으로 말하고 있어서 객관적이라고 할 수가 없다고 보이며, 일본서기에 나오는 柯須彌가 도데체 무엇인지를 가늠하지 못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蓋蘇文, 蓋素文 혹은 蘇文, 素文을 직책이라고 확정한다는 것은 무리한 발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蓋蘇文, 蓋素文 혹은 蘇文, 素文에 대한 것은 일본서기의 柯須彌를 규명한 뒤에 결정하여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카오스가 그동안의 여러 가능성을 종합하여 ‘연개소문의 정확한 성명’에 대한 하나의 가설을 수립하고자 한다. 

2. 연개소문의 성씨

일단, 보편적으로 사람의 이름은 성과 이름이 합쳐진 것이 일반적이므로 먼저 동일한 씨족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성을 추적하여 확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연개소문과 同族이 된다고 보이는 사람들의 성명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1) 연자유(淵子遊) -  연개소문의 할아버지, 대막리지
(2) 연휘만(淵輝滿)  - 연남생의 작은 할아버지(연개소문의 작은 아버지?), 대막리지
(3) 연태조(淵太祚) -  연개소문의 아버지, 대대로(大對盧), 막리지, 동부(또는서부)대인
(4) 연국혜(淵國惠)  - 신채호가 연개소문의 아버지(연태조)라고 함
(5) 연개소문(淵蓋蘇文) - 연개소문, 영류완을 시해하는 구테타로 스스로 대막리지에 오름
(6) 천남생(泉男生)  - 연개소문의 큰아들 [泉 또는 錢은 唐고조李淵의 피휘]
-----------[이하 일본서기의 기록임]-----
(7) 이리가수미(伊梨柯須彌) - [일본서기]에서 연개소문을 지칭
(8) 이리거세사(伊梨渠世斯) - [일본서기]에서 연개소문에게 피살됨
(9) 동성도수류(同성都須流) - 이리도수류(伊梨都須流)로 봄, 연개소문이 大臣으로 발탁
(10) 동성도금류(同성都金流) - 이리도금류(伊梨都金流)로 봄, 연개소문이 大臣으로 발탁

[주1] 淵 -- 연개소문 스스로 ‘자기 조상이 샘(井) 또는 물(水)에서 태어낫기 때문에 성을 淵이라고 했다’고 주장
[주2] 同성都須流金流 -- [일본서기]에서 '同성=伊梨'이고, '金流=都金流'로서 이리도수류(伊梨都須流)와 이리도금류(伊梨都金流) 두사람을 함께 병기한 것으로 봄

먼저 연개소문의 성씨를 살피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일본서기의 기록을 먼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그 이유는 다른 기록들은 모두 중국과 신라(삼국사기를 기록한 고려 김부식)의 입장에서 기록한 것들이므로 기록과정에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연개소문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이 아무래도 일본서기를 기록한 당사자들과는 사뭇 다를것이기 때문이다. 즉, 중국과 신라(김부식)의 입장은 연개소문의 패륜적 행동으로 고구려가 망할 수 밖에 없었다는 침략전쟁의 명분을 정당화할려는 입장이었지만, 8세기초 일본의 입장은 비교적 공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비록 두사서[삼국사기와 일본서기]에서 어느정도 왜곡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방향이 서로 다를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연개소문과 관련된다고 보이는 사람들의 이름들을 열거해 보면, 이리가수미(伊梨柯須彌), 이리거세사(伊梨渠世斯), 이리도수류(伊梨都須流), 이리도금류(伊梨都金流)라는 4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리도수류(伊梨都須流)와 이리도금류(伊梨都金流)의 성이 이리가수미(伊梨柯須彌) 혹은 이리거세사(伊梨渠世斯)와 同성이라고 하였으므로 이들의 성이 이리(伊梨)임은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인다. 즉, 연개소문의 성씨를 일본서기에서는 이리(伊梨)라고 하였음은 분명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삼국사기에서는 연개소문의 성이 연(淵)이라고 하였음도 분명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 이리(伊梨)와 연(淵)은 서로 상관관계가 있는 동일한 상황을 설명하는 글자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이 두 글자들 사이에 하나의 공통분모가 존재할 것이라는 전제에서 이 문제를 추적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제 연개소문의 일본서기 성인 ‘이리(伊梨)’를 좀더 분석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은 먼저 각 글자들이 가지는 속성인 의미와 음을 조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아래에 첨부한 1. 각 글자에 대한 해석]을 참조]

[1] ‘이리(伊梨)’ = ‘이(伊)’ +‘리(梨)’로 볼 수 있다

먼저, ‘이(伊)’는 ...사람인변(亻(=人)) + 尹(윤)이기 때문에 이는 尹(윤)이라고 불리우는 사람으로서 쉽게 말하면, 尹(윤)이라는 음으로 불리는 사람들(종족:種族)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 다음, ‘리(梨)’는 ㉣나누다, 분할하다(分割--), ㉤찢다, 쪼개다, 가르다, ㉥따르다, 쫓다 라는 의미의 한자이어서 만일 ‘이리(伊梨)’가 성을 말한다고 한다면 ‘이리(伊梨)’라는 성은 다른 성에서 분리되어 나온 성임을 암시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이리(伊梨)’라는 글자는 연개소문의 가계가 연인(燕人)에게서 갈라져 나와서 燕(연)과 음이 같은 淵(연)으로 개성한 것임을 후대로 알리기 위한 힌트로 만든 글자가 된다

따라서 위의 ‘이(伊)’와 ‘리(梨)’에 대한 해석을 종합하면, "‘이리(伊梨)’는 尹(윤)이라는 음으로 불리는 사람들(種族)의 성에서 나뉘어져 나온 사람들의 성" 이라는 것을 ‘이리(伊梨)’라는 말 속에 함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따라서 이 ‘이리(伊梨)’라는 것은 공식적인 성이 아니라 ‘어떤 성을 설명하는 힌트로서 사용된 기록’이라고 보이므로 연개소문의 공식적인 성씨는 중국의 여러사서들이나 삼국사기에서 기록하고 있는 淵이 된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좀 더 살펴야 하는 부분이 잇다고 보인다. 즉, 지금까지의 역사상 과연 尹(윤)이라는 음으로 불리는 사람들(種族)이 존재햇었느냐?는 것이 될 것이다. 이것은 좀 더 음운학을 연구하여서 결론을 낼 성질의 문제라고 보이기는 하지만, 카오스가 하나의 가설로서 제시한다면, 尹(윤)이라는 음으로 불리는 사람들(種族)은 바로 ‘연(燕)나라 사람들’이라고 추론하는 바이다.즉, 尹(윤)과 연(燕)이 음이 비슷하여서 일본서기 저자들이 그 비슷한 음을 이용하여 이런 힌트를 만들어 냇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두글자가 현대음에서는 약간 차이가 나지만 고대음에서는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燕(音)+사람(人)=燕人’이라는 의미를 암시하는 글자로서 선택할 수 있는 글자가 ‘사람(人)+尹(音)=伊(이)’가 된다는 아이디어는 획기적인 선택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漢字學에서 이런 사례가 있는지에 대해서 좀 더 심층 연구가 필요하다고 보이며, 또한 현실적으로 [‘燕(音)+사람(人)=燕人’<===>‘사람(人)+尹(音)=伊’]으로 대응시키는 방법 이외의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글자가 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카오스는 漢字학자가 아니므로 후학들의 좀더 깊은 연구를 기대하고 이 정도의 선에서 충분히 개연성을 인정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따라서 이제 연개소문의 성씨로 알려진 ‘이리(伊梨)’의 의미가 燕人에게서 갈라져 나온 성으로 해석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 도데체 燕이 나 尹도 아닌 淵을 성으로 삼은 것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보이는데, 역시 하나의 추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즉, 먼저, 연개소문의 가게에서 燕이나 尹도 아닌 淵을 성으로 삼은 시기가 문제가 될 것인데, 연개소문이 소싯적에 지었다는 ‘金海兵書’라는 책이름에 그 힌트가 있다고 보인다. 즉, 연개소문이 지었다는 책이름이  ‘金海兵書’라는 것은 바로 연개소문이 소싯적에 활동하였던 지역이 바로 ‘金海’였다는 것이고 그 ‘金海’는 바로 현,강소성북부의 海지역일 것으로 추측하는데 그곳에 소위 김수로왕 후손들의 金씨들이 집성하여 살던 곳이어서 그곳을 속칭 ‘金海’라고 불렀던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燕나라(참조 :고구려西部大人) 출신이었을 연개소문의 가계가 동쪽으로 치우친 바닷가인 ‘金海’지역에 웅거한 것은 추측컨대 그 선대인 연太組시기에 燕지역에서 분가하여 金海지역으로 이동한 것이 아닌가 판단되는 것이다. 그리고서 연太組는 스스로 성을 燕(연)에서 음이 같은 淵(연)으로 개성하고서 소위 ‘조상이 샘(井) 또는 물(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성을 淵이라고 했다’라는 설을 만들어서 합리화했다고 보이는 것이다. 즉, 그래서 출중한 자질을 갖춘 연개소문이 金海지역에서 출세하여 고구려 중앙정부에 진출하자 그의 원출자(原出資)가 연나라였던 것이 알려졌기 때문에 한동안 배척을 당한 것이 자연스럽게 설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연개소문은 구테타를 하게 되었고, 명분을 위해서 燕이 아닌 淵을 성으로 강조하게 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중국사서들에서는 정식으로 淵을 성으로 인정하여 기록하였는데, 이것도 중국역사와 우리역사를 갈르기 위하여 중국국가인 燕과의 관계를 지우기 위해서라도 필요했었을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연개소문의 성씨가 당시 공식적으로 淵씨였음을 잘 아는 일본서기 저자들이 ‘淵이 燕에서 출발함’을 후대로 알리기 위하여 ‘이리(伊梨)’라는 破字힌트를 만들었던 것으로 판단되는 것이다. 

[3] 결론을 정리하면 일본서기의 ‘이리(伊梨)’라는 글자는 연개소문의 가계가 燕人에게서 갈라져 나와서 燕(연)과 음이 같은 淵(연)으로 개성한 것임을 후대로 알리기 위한 힌트로 만든 글자가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서의 여기저기에서 연개소문의 성이 盖金(개금) 혹은 泉(천)인 것으로 말해지는 경우가 있는데,...우선 ‘泉(천)’은 당나라 고조 李淵의 이름에 이 연개소문의 성씨인 淵자가 있으므로 이를 피휘하여 의미가 비슷한  泉(천)자로 바꾼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이론이 있을 수 없다고 보인다. 그 다음, ‘盖金(개금)’은 좀 복잡하므로 다음에 자세히 설명될 것이지만, 여기에 쓰인 金자가 바로 한때 연개소문이 성으로 사용하였던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고 보인다. 즉, 연개소문 가계는 아마 아버지인 연태조 대에 서쪽 燕나라에서 망명하여 현,산동성 남부의 金씨들이 집성하고 있었던 海지역에 정착하고 한동안 金씨로 행세하다가 훗날 고구려 대막리지가 되면서 淵으로 성을 바꾼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연개소문은 ‘가짜金씨’라는 의미에서 ‘盖金(개금)’이라는 호칭이 따르게 된 것으로 판단되는 것이다. 연개소문은 스스로의 힘으로 고구려 대막리지가 된 뒤 자신의 가계를 다시 정리하면서 아버지를 ‘淵씨의 太祖’라는 의미에서 ‘연태조(淵太祚)’라고 호칭한 것으로 보이므로 아버지의 이름이 太祖가 아니라 아마 신채호선생이 주장하는 ‘국혜(金국혜->淵국혜)’가 진짜 이름이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어쨌든 연개소문은 소싯적에 현, 산동성 남부의 ‘金씨들의 海지역’에서 ‘金씨’로 행세하다가 고구려 대막리지가 된 뒤 淵씨로 다시 개성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이며, 그 힌트가 바로 ‘盖金(개금)’이라는 기록이 된다고 보이는 것이다.

3. 연개소문의 이름

다음에는 연개소문의 이름(이름)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연개소문의 이름은 중국측 사서나 삼국사기 등에 모두 연개소문(淵蓋蘇文)이라고 공식적으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연(淵)을  성으로 인정한다면, 최소한도 공식적인 이름은 개소문(蓋蘇文)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개소문(蓋蘇文)에 대한 사료적 근거들이 일부 있긴 하지만, 모두 견강부회성 설명들이어서 모두 후대에 왜곡을 위한 보조근거들이라고 보여서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고 카오스 나름대로의 가설을 피력하고자 한다. 그 주장들의 대표적인 것으로서, 蓋蘇文에서 蘇文이 어떤 직책일 것이라는 설명이 가장 그럴듯하지만, 이것도 역시 마찬가지로 견강부회성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연개소문의 이름(이름)도 먼저 일본서기의 기록에서 그 힌트를 찾아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라고 본다. 즉, 일본서기에는 이리가수미(伊梨柯須彌)라고 하는 연개소문 이외에도 同성을 갖는 세사람의 이름이 함께 등재되어 있어서 성과 이름의 구분을 하기 쉽고 또 이름에 쓰이는 어떤 원칙을 찾는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네사람의 이름을 다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7) 이리가수미(伊梨柯須彌) - [일본서기]에서 연개소문을 지칭
(8) 이리거세사(伊梨渠世斯) - [일본서기]에서 연개소문에게 피살됨
(9) 동성도수류(同姓都須流) - 이리도수류(伊梨都須流)로 봄, 연개소문이 大臣으로 발탁
(10) 동성도금류(同姓都金流) - 이리도금류(伊梨都金流)로 봄, 연개소문이 大臣으로 발탁

여기에서 앞부분의 이리(伊梨)가 성임을 앞에서 검증하였으므로 이 네사람의 이름은 가수미(柯須彌)=연개소문, 거세사(渠世斯), 도수류(都須流), 도금류(都金流)가 될 것이다. 그런데, 거세사(渠世斯)는 구테타시에 연개소문에 의해서 제거된 인물이고, 도수류(都須流)와 도금류(都金流)는 구테타 후 연개소문에 의해서 大臣으로 발탁된 인물들이므로 만약 일본서기 저자들이 이 ‘이름들’ 속에 실사(實史)의 힌트를 삽입햇다고 한다면, 거세사(渠世斯)는 부정적인 힌트가 될 것이고, 도수류(都須流)와 도금류(都金流)는 긍정적인 힌트가 될 것이다. 즉, 일단 일본서기에 기록된 이름들은 앞서서 살펴본 바와같이 ‘이리(伊梨)가 그 자체로 성이 아니라 성을 설명하는 힌트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일본서기에 등재된 네 개의 이름들도 역시 실제의 이름들이 아니라 그 이름들을 설명하는 힌트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맥락에서 연개소문이 제거한 ‘거세사(渠世斯)’는 그 글자의 뜻이 ‘큰(渠) 세대(世)를 제거(斯)한다’라는 의미로 유추해 볼 수 있으므로 아마 이 인물은 연개소문과 같은 출신으로서 먼저 고구려조정에 튼튼한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지만, 연개소문의 구테타에 반대하였으므로 연개소문이 영류왕과 함께 살해해 버린 사람들일 것으로 판단되는 것이다. 그에 비해서 일반적으로 정상적일 경우 사람의 이름은 항상 좋은 의미에서 작명하게 되는 것이므로  연개소문과 같은 출신으로서 연개소문의 구테타에 협력한 사람들인 도수류(都須流)와 도금류(都金流)는 가능한 한 그대로 이름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이름자를 살펴보면, 도(都)자와 류(流)를 공유하고 있는데, 앞의 도(都)는 ‘도읍지, 으뜸, 최고’등의 의미여서 이들이 어떤 세력의 책임자였음을 암시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뒷부분의 공통자인 류(流)자는 ‘어떤 부류임을 말하는 글자’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즉, 도수류(都須流)는 ‘須를 추종하는 무리들의 책임자’ 정도일 것이고, 도금류(都金流)는 ‘金을 추종하는 무리들의 책임자’정도일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보인다.  그래서 결국, ‘須(수)’와 ‘金(금=김)’이 문제가 될 것인데,... ‘須(수)는 연개소문(柯須彌의 須)의 직계파’을 말하고 ‘金(금=김)은 연개소문의 출신지인 金海에서 연개소문을 지원한 계파’를 말한다고 추측되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구테타에 성공한 연개소문이 자신의 직계부하들 중에서 고른 책임자를 일본서기에서 도수류(都須流)라고 하였고, 연개소문의 후원이 된 金海지역의 세력중에서 책임자를 일본서기에서 도금류(都金流)라고 기록하였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거세사(渠世斯),  도수류(都須流),  도금류(都金流) 모두 실제 어떤 인물의 이름(이름) 아니라 그 인물이 속하는 세력들의 특성을 설명하는 힌트라고 본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의 바탕에서 연개소문으로 알려진 인물을 일본서기에서 이리가수미(伊梨柯須彌)라고 하였다는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보이는데, 일단 이리(伊梨)는 연개소문의 성씨인 淵을 설명한 것이므로 생략하면, 가수미(柯須彌)에 연개소문의 진짜 이름이 들어 있거나 아니면 연개소문의 특징을 설명하는 힌트가 들어 있을 것이라고 본다. 여기서 일단 카오스의 결론을 먼저 말한다면, 가수미(柯須彌)의 가(柯)는 연개소문의 특징을 설명하는 힌트이고, 뒷부분 수미(須彌)가 진짜 연개소문의 이름(이름)일 것으로 판단한다. 즉, 연개소문에 대해서는 여러 사서에 그 특징이 모두 잘 알려져 있으므로 일본서기 저자들은 굳이 자세한 특징 설명이 필요없다고 보아서 ‘가(柯)’자에 해당되는 특징만 부가한 것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즉, 연개소문의 아버지 연태조는 연개소문이 태어나자 ‘불교에서 세상의 중심이 되는 산으로 알려진 수미산(須彌山)과 같이 세상의 중심이 되라는 의미에서 수미(須彌)라는 이름’을 지었던 것이라고 보인다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연개소문의 兒이름이 金須彌(김수미)였고 커서 스스로 개성하면서 淵須彌(연수미)가 되었다고 본다는 것이다. 물론 대막리지가 된 뒤로는 이름 보다는 대부분 대막리지라는 직책으로 불리게 되었을 것이므로 이름에대한 기록이 남지 않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이는데, 이런 사정을 후대로 알리기 위하여 일본서기 저자들이 이리가수미(伊梨柯須彌)라는 힌트 속에 연개소문의 본명을 후대로 알리게 된 것이라고 보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서기 저자들은 연개소문의 이름인 수미(須彌)자 앞에 가(柯=줄기,가지)자를 삽입하여 결국 연개소문이 ‘수미산(須彌山)과 같은 우뚝선 인물의 하나가 되었음’을 암시하게 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함으로서 이리가수미(伊梨柯須彌), 이리거세사(伊梨渠世斯), 이리도수류(伊梨都須流), 이리도금류(伊梨都金流) 등 네개의 이름들이 동일한 형태로 됨으로써 후대인들이 이 네 개의 이름들 속에서 연개소문에 대한 實史[정확한 出資(燕)와 성명(淵須彌=연수미)]을 알게 하려고 일본서기기록에 삽입한 것으로 판단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가(柯=줄기,가지)’자를 포함할 경우 연개소문의 이름은 가수미(柯須彌)가 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중국사서나 삼국사기에는 모두 연개소문의 이름(이름)이 개소문(蓋蘇文)이라고 되어 있어서 일본서기에서 기록한  가수미(柯須彌)와 달라진 이유를 살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사서들이 많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 연개소문에 대해서는 일본서기가 가장 앞서는 기록이라고 해야 할 것이므로 중국사서의 저자들도 연개소문의 이름이 일본서기에 이미 수미(須彌)라고 기록되어 잇었고, 거기에 일본서기 저자들이 ‘가(柯=줄기,가지)’자를 덧붙여서 가수미(柯須彌)가 되었음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므로 어떤 형태로든지 일본서기의 기록에 근사(近似)시켜서 연개소문을 기록하지 않으면 않되었을 것으로 보았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사서 저자들은 연개소문의 이름인 수미(須彌)가 너무 웅대한 이름이어서 그대로 사용하기에 거북하므로 음이 비슷한 다른 글자로 대체시킨 것이 소문(蘇文)이라고 보이는 것이다. 즉, 소문(蘇文)은 과거에 시중(중서령)에 해당되는 비슷한 직책명이 있었기도 햇었고(사실은 이것도 불확실함) 또 소(蘇)자는 ‘㉦거스르다, 역행하다(逆行--) ㉧그르치다, 틀리다 ㉨소홀(疏忽)히 하다 ㉩(풀을)베다’라는 의미가 있고, 문(文)자는 ‘ ㉩법도(法道), 예의(禮義) ㉪조리(條理)’라는 의미가 있어서 ‘소문(蘇文=법도를 어기다)’으로 해석될 수 있으므로 天道를 거스른 연개소문의 이름으로 적당하다고 판단하여 아예 새롭게 작명해 버린 것이라고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연개소문의 또다른 이름으로 알려진 蓋素文(개소문)이라는 이름이 있는 점으로 보아서도 그 개연성을 찾을 수 있다고 보인다. 아마 이러한 허위 작명의 사정을 후대에 알게 된 어떤 양심적인 후대의 학자가 또 다른 틀린 이름을 하나 더 거론함으로서 개소문(蓋蘇文)이 진짜 이름이 아님을 애둘러서 암시할려고 한 것으로 판단되는 것이다. 어쨌든 엉터리 작명을 한 그들도 학자적인 양심은 있기 때문에 당대에는 권력의 힘에 눌려서 어쩔 수 없었지만, 터무니없는 작명을 한 것을 후대인들에 대해서 익스큐즈하기 위하여 소문(蘇文/素文)자 앞에 ‘개(蓋)’자를 삽입하여 ‘소문(蘇文/素文)이라는 이름이 가짜임을 암시’하면서 한편으로는 ‘소문(蘇文)이라는 놈은 아주 사악하여서 사람답지 못한 개같은 놈이다[蓋蘇文=개소문=犬蘇文]’이라는 뉘앙스를 풍기게 만들어서 당시 연개소문에게 적대감을 갖고 있었던 권력자들의 비위에 맞추었던 것으로 판단되는 것이다. 즉, 교묘한 이중플레이에 해당된다고 보이는 것이다. 

즉, 연개소문 이름(이름)에 대한 결론을 정리하면,....연개소문의 본명은 須彌(수미)인데, 일본서기에서는 연개소문의 정확한 出資(燕=연)와 성명(淵須彌=연수미)을 후대로 알리기 위하여 이리가수미(伊梨柯須彌)라는 이름을 만들어 냈고 이를 풀 수 있는 힌트로서 이리거세사(伊梨渠世斯)와 동성도수류금류(同성都須流金流)라는 보조 힌트를 일본서기 속 기록에 남겨 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서기의 기록이 존재함을 알고있는 중국사서(삼국사기포함) 저자들은 연개소문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가해질 수 있고 또 일본서기의 내용을 희석시킬 수 있도록 연개소문(淵蓋蘇文)이라는 이름을 작명하여 정사에 등재시켜 둔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잇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알지 못한 신채호선생을 비롯한 후대의 여러사람들이 갖은 억측을 수없이 내놓음으로서 오히려 실사가 감추어지게 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연개소문의 진짜 성명은 金須彌(김수미) 혹은 淵須彌(연수미)라고 해야 할 것이며, 연개소문가계의 출자는 고구려 西部지역인 燕지역이며, 이들이 東部의 金海지역으로 이동하였다가 연개소문 代에 고구려의 대막리지가 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의 선조들이 처음부터 대막리지였다는 것은 아무래도 후대의 가필일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자료] : 첨부를 생략합니다. 
1. 각 글자에 대한 해석
2. 伊梨柯須彌 에 대한 여러 가지 참고 의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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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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