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만원' 가진 연희궁 노인의 부귀영화
시사저널 | 이규대 기자 | 입력 2013.07.26 13:54 | 수정 2013.07.26 14:35

'15만원, 10만원, 1000원. 통장 세 개 은행 채권 도합 29만1000원. 보유 현금은 전무. 여기에 일부 부동산, 예술품, 악기, 골동품 등 추가.' 전두환 전 대통령이 2003년 4월 재산 심리 재판 과정에서 신고한 전 재산이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은 "추징금 낼 돈을 정치자금으로 다 써버려 더는 돈이 없다. 주위의 도움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유명한 '29만원' 발언이다.

자산 규모 29만1000원의 빈털터리라고 하기에 전두환 전 대통령은 너무나도 '잘'산다. 연간 8억원 상당의 혈세가 들어가는 국가의 경호를 받으며 풍족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당장 그가 살고 있는 사저부터 그렇다. 쿠데타를 일으키기 전 '장군' 시절부터 살아온 집이다. 임기 말 수억 원을 들여 대대적으로 개·보수한 바 있다. 당시 역대 대통령 사저 중 가장 넓어 '연희궁'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인근 부동산업자 이 아무개씨는 이 집의 자산 가치를 30억원가량으로 평가했다. 그는 "연희동에서는 20억원 이상이면 아주 좋은 집에 속한다. 다만 요즘 기준으로 '초호화' 수준으로 보기는 어렵다. 40억~50억원 정도는 돼야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그래도 아주 비싼 집임에는 틀림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집의 가치를 40억원까지 추정하기도 한다. 이 집은 줄곧 부인 이순자씨가 소유해왔다.

2010년 1월 서울 논현동의 한 예식장에서 열린 전두환 전 대통령 팔순잔치. ⓒ 연합뉴스

'외교관 여권 특혜'로 7차례 해외여행

7월16일 검찰의 압수수색 결과, 사저에서는 고가로 추정되는 미술품과 일부 현금성 자산이 발견됐다. 추징을 피하려 은닉해둔 불법 자산인지 여부가 관건이다. 이와 함께 전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 '호화 생활' 역시 관심을 끌고 있다. 수천억 원대의 추징금을 미납하고 있는 인물치고는 지나치게 호화로운 생활을 누려온 데 대한 여론의 반감 때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유명한 골프 애호가다. 골프를 좋아해 재임 당시 대통령 휴양지인 청남대에 6홀 규모의 골프장을 만들기도 했다. 재산을 추징당하고 1997년 말 특별사면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도 그의 골프 사랑은 그치지 않았다. 최근까지도 골프장에 자주 모습을 노출하며 구설에 올랐다. 골프가 보통 중산층 이상이 즐기는 스포츠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 전 대통령이 어떤 생활을 누리고 있는지 짐작할 만하다.

2003년 전 전 대통령 재산을 심리하던 판사가 "도대체 무슨 돈으로 골프 치러 다니고 해외여행 다니느냐"고 따지자 그는 "그린피(골프장 이용료)는 골프협회에서 전직 대통령에게 무료로 해준다. 내 나이가 올해 72세다. 인연이 있는 사람, 도와주는 분들이 많다"고 답했다. 추징금을 낼 돈은 없으나 주변의 도움 덕에 호화 생활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법정에 출두하기 불과 20여 일 전에 전 전 대통령 내외가 경기 광주의 한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즐긴 뒤 수백만 원대의 기념식수까지 했다는 논란이 추후 불거지기도 했다.

전 전 대통령의 해외여행과 관련해서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전모가 드러났다. 그는 퇴임 후 4차례 유효기간 5년짜리 외교관 여권을 발급받아 7차례에 걸쳐 캄보디아·싱가포르·일본·중국·미국 등지에 출국했다. 일시 및 장소는 2000년 2월 캄보디아·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4개국, 2001년 12월 중국, 2002년 6월과 12월 일본·중국, 2006년 5월 일본, 2007년 7월과 10월 미국·중국 등이다.

외교관 여권이 있으면 타국에서 특권·면제권을 갖고 출입국 수속 과정에서 편의를 제공받는다. 현행 여권법상 전직 대통령에 대한 외교관 여권 발급은 필수 조항이 아니다. 국가의 죄인인 전 전 대통령에 대한 '과잉 예우' 논란이 일었던 이유다. 출입국관리법상 2000만원 이상의 벌금·추징금을 내지 않을 경우 출국이 불가능한 점을 들어 이를 묵인한 법무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2008년 6월 강원도 춘천의 한 골프장을 찾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카트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가족들도 '왕족' 같은 생활

이와 비슷한 시기에 자신이 나온 고등학교 총동창회 체육대회에 참석하거나, 불참할 경우 금일봉을 전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전 전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막걸리를 선물로 제공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2009년 경기 연천의 국내 최대 허브 농장인 허브빌리지 레스토랑에서 초호화 금혼식을 올렸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허브빌리지는 장남 재국씨의 배우자와 자녀 명의로 등록된 휴양지다. 5공 시절 장차관을 지낸 인사와 측근 부부 100여 명이 참석해 10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드는 호화 파티를 열었다는 것이다. 이보다 앞선 2010년에는 강남의 한 예식장에서 호화 팔순잔치를 열어 구설에 올랐다.

이런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에 대해 장남 재국씨가 해명한 적이 있다. 재국씨는 2005년 < 월간중앙 > 과의 인터뷰에서 "이론적으로 보면 아버님의 재산은 지금 한 푼도 남아 있지 않다. 어머니가 (외조부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이 있는데 지금 아버님의 생활은 거의 전적으로 어머니의 재산에 의존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6월27일 일명 '전두환 추징법'(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친인척에 흘러들어간 사실이 확인되면 이를 추징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친인척에게 간 전 전 대통령의 불법 재산이 있는지가 수사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전 전 대통령 가족은 적게는 수백억에서 많게는 수천억대의 자산가가 돼 호화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 시사저널 > 은 현재까지 알려진 직계가족의 재산만 모두 2400억원에 달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들의 특권적인 생활상이 알려질 때마다,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고 버티는 전 전 대통령의 태도와 비교되며 논란이 됐다.

지난 6월, 전 전 대통령의 둘째 며느리인 탤런트 출신 박상아씨가 자녀들과 함께 연간 회원권 가격이 수억 원대인 고급 수영장에서 피서를 즐긴 것으로 드러났다. 전 전 대통령의 추징 재산이 관심을 끄는 시점에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지난해 6월에는 전 전 대통령의 손녀인 수현씨가 서울 최고급 호텔에서 비용이 1억원 넘게 드는 호화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이규대 기자 / bluesy@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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