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53697.html


비좁은 여관방…뒤척일수록 작아지는 열세살의 꿈

등록 :2020-07-15 05:00 수정 :2020-07-15 09:55


가방 둘 공간도 없는 3평짜리 방, 휴대용 버너로 ‘아슬아슬한' 끼니

3년 넘게 버텨왔지만 빚만 늘어, 월 수입은 식비도 안되는 50만원

“아이만은 한국서 사람답게 살길”


‘고려인 3세’ 우주(가명)네 세 식구가 사는 3평(9.9㎡) 남짓한 경남 김해 한 여관방. 지난 8일 오후 아버지, 엄마 김올레나(가운데)씨 부부와 우주가 비좁은 방 안 탁자에 놓인 거울 만큼 작게 비치고 있다. 왼쪽 아들은 얼굴이 잘 보이지 않도록 흐릿하게 했다.김해/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고려인 3세’ 우주(가명)네 세 식구가 사는 3평(9.9㎡) 남짓한 경남 김해 한 여관방. 지난 8일 오후 아버지, 엄마 김올레나(가운데)씨 부부와 우주가 비좁은 방 안 탁자에 놓인 거울 만큼 작게 비치고 있다. 왼쪽 아들은 얼굴이 잘 보이지 않도록 흐릿하게 했다.김해/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우주(가명)는 반에서 키가 둘째로 크다. 우주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만큼 우주가 사는 집은 작아진다. 열세살 소년은 3평(9.9㎡) 남짓한 여관방에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고려인 3세’ 우주는 돈 벌러 온 엄마를 찾아 3년 전 우크라이나에서 경남 김해로 날아왔다. 그새 좁은 여관방에는 전자레인지, 전기포트, 프라이팬 등 살림살이도 늘었다. 세 식구는 이곳에서 매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우주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치킨이다. 하지만 주로 먹는 건 라면이다. 매달 여관비를 감당하기도 버거워 외식은 꿈도 꾸지 못한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학습이나 학원도 남 얘기다. 경찰이 꿈이던 우주는 “이제는 ‘비즈니스맨’이 되고 싶다”고 했다. “돈 벌어서 큰 집에서 살고 싶어요. 제 방도 갖고 싶고요.”


학교가 끝나면 우주는 친구들과 어울릴 새 없이 바로 여관방으로 돌아온다. 집안일을 돕기 위해서다. 가방을 둘 공간도 없는 여관방엔 알록달록한 이불이 덮인 침대와 커다란 화장대, 임시로 세운 옷걸이, 주방도구 등 세간이 가득 차 있다. 방문 뒤엔 미처 다 꺼내지 못한 짐이 담긴 낡은 캐리어가 세워져 있다.


우주네 가족이 사는 여관방. 따로 주방이 없어 화장대 위에 휴대용 버너, 프라이팬과 식기 등을 올려놓고 사용하며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김해/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우주네 가족이 사는 여관방. 따로 주방이 없어 화장대 위에 휴대용 버너, 프라이팬과 식기 등을 올려놓고 사용하며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김해/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여관방 302호…아슬아슬한 세 식구의 삶


그러니 이 단칸방에 세 가족이 앉으면 공간이 꽉 들어찬다. 이곳에서 우주의 엄마 김올레나(43)씨는 우즈베키스탄식 볶음밥을 하거나 양배추국을 끓여 식사를 준비한다. 주방이 없으니 침대 곁에 휴대용 버너를 두고 요리를 해야 한다. 손바닥만한 창문은 열어도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취사 금지 공간에서 부탄가스는 아슬아슬해 보인다.


소금, 설탕, 나무젓가락, 그릇 같은 살림들도 거울 앞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다. 그 옆에서 우주는 몸을 굽히고 묵묵히 재료 손질을 돕거나 빈 페트병을 들고 나가 정수기 물을 길어 온다. 식사를 마치면 아빠(54)와 함께 화장실에서 설거지를 한다. 축구를 좋아해 운동을 배우고 싶다는 우주는 이렇게 반나절 넘게 ‘302호’에만 머물고 있다.


우주 가족은 이 여관을 벗어나본 적이 없다. 보증금을 마련할 목돈이 없어 월세로 감당할 수 있는 여관만 전전했기 때문이다. 우주의 아빠가 2015년부터 이 여관 406호에서 살아왔고, 2016년에는 우주 엄마와 함께 이곳 302호로 옮겨왔다. 2017년에는 우주도 이곳에서 살기 시작했다. 처음 한국에 온 우주가 마주한 여관방은 우크라이나에서 외할아버지와 살던 고향집보다 훨씬 작았다. 그러나 우주는 투정 한번 한 적이 없다. 학교의 다문화학급 수업에서 받아쓰기 백점을 맞아 가끔 받는 용돈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일 찾아 왔다 네 개의 손가락을 잃은 아빠


부모가 모두 일자리를 잃고 우주는 더 빨리 철이 들었다. 아빠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건너왔다가 네 손가락을 잃었다. 그는 고국인 우즈베키스탄에서 교사, 공정관리자로 근무하던 중 2012년 한국 자동차회사 사장의 권유를 받고 목포에 왔다. 그 뒤 1년 반 동안 조선소, 자동차공장 등 여러 회사를 거치며 대구, 창원으로 옮겨 다녔다. 김해에 인력사무소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잠시 일을 도우러 왔다가 이곳에 정착했다.


사고는 느닷없이 일어났다. 2015년 10월20일, 사무소 소개로 출근한 프레스공장에 있는 기계는 그날따라 작동이 이상했다. 우주 아빠는 사장에게 “기계가 좀 이상하다”고 말했지만, 사장은 “불평할 거면 그냥 집에 가라”고 했다. 그러다 오작동한 기계에 손이 끼여 우주 아빠는 왼손 손가락 4개를 잃는 큰 사고를 당했다. 2015년부터 3년 동안 수술만 다섯 차례 받았다. 우주 아빠는 고려인공동체의 도움으로 공장 사장에 대해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내 이겼지만, 보상금 4500만원은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 사장이 의도적인 파산신청으로 배상하길 거부하고 있어서다. 우주 아빠는 추가 수술은커녕 물리치료도 받을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비자도 변경됐다. 공장에서 일어난 사고 때문에 우주 아빠의 방문취업비자(H2)는 난민신청자·장기치료자 비자(G1)로 바뀌었다. 그는 현재 취업도 할 수 없고 건강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는 상태다. 가끔 다른 고려인의 통역을 해주거나 운전을 해주고 감사 표시로 몇푼 받는 게 벌이의 전부다.


최근에는 당뇨에 고혈압까지 앓기 시작했다. 건강보험도 없어 10만원대인 인슐린 주사조차 맞지 못하고 있다. 그저 진통제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래도 우주 아빠는 여전히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이 제 조국이라 생각해요. 다시 일하면서 살고 싶어요.” 그가 검은 장갑을 낀 왼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코로나19 이후…석달치 밀린 여관비


코로나19도 가족을 할퀴고 지나갔다. 2016년부터 주방 보조 아르바이트, 자동차공장 일 등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던 우주 엄마가 지난 4월부터 일감을 잃은 것이다. 인력사무소나 여성일자리지원센터에선 “코로나 때문에 일이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우크라이나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버텨온 생활력도 코로나19 앞에선 소용이 없었다.


요사이 김씨는 가끔 자리가 나는 농장 허드렛일을 아르바이트 삼아 하고 있다. 하루에 9시간씩 허리를 펴지 못한 채 밭에서 양파 등을 캐지만 정기적으로 일하지 못해 한달 평균 50만원을 벌 뿐이다. 월 180만원이던 수입이 ‘4분의 1’로 줄어들었다.


수입은 줄었지만 빚은 늘었다. 매달 35만원씩 나가던 여관비는 벌써 석달치 밀렸다. 오래전부터 이들 가족을 봐온 여관 주인이 배려해준 덕에 아직 쫓겨나지 않았다. 그러나 우주는 이런 상황이 지속될까 불안해하고 있다. 월세를 제외하더라도 생활비는 월 90만원씩 든다. 세 식구가 여관방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필수적으로 나가는 식비 등이다. 지출을 줄이기 위해 요즘엔 우유, 라면, 인스턴트 식품을 주로 먹고 있다. 가끔 다른 고려인 가족이 저녁식사에 초대해줄 때 먹는 밥이 ‘바깥 음식’의 전부다.


우주네 가족이 사는 여관방 화장실. 따로 부엌이 없어 이곳에서 식사를 마친 우주는 아버지의 설거지를 돕는다. 김해/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우주네 가족이 사는 여관방 화장실. 따로 부엌이 없어 이곳에서 식사를 마친 우주는 아버지의 설거지를 돕는다. 김해/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벌이가 줄면서 지인들에게 한푼 두푼 빌린 돈은 벌써 800만원이 넘었다. 지난 3월엔 우주와 김씨가 3년마다 연장해야 하는 방문동거비자를 받기 위해 우크라이나행 왕복 비행기표를 사느라 빚 100만원이 늘었다. 우주는 우크라이나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행여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까봐 울었다고 했다.


열세살 우주는 한국의 친구들보다 현실을 빨리 알아간다. “하루빨리 밥벌이를 찾아서 독립할 계획이에요. 아빠처럼 한국어가 필요한 외국인을 위해 통역을 해주는 거라도 배우고 싶어요.” 그래도 숙제가 적어 학교에 다니는 게 재밌다는 우주는 “다른 가족처럼 엄마 아빠와 바다에 놀러 가보고 싶다”며 들뜬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들이 좁은 방에서 부대끼며 사는 이유도 단 하나, 우주를 위해서다. 함께 한국에 와 있던 우주의 외삼촌은 결국 견디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김씨는 우주에게 우크라이나의 불안한 정치 환경이나 인종차별 등의 경험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우주는 하루가 다르게 몸이 자란다. 키는 벌써 162㎝를 넘었다. 부모와 한 침대에서 자던 아이는 최근 침대 옆 바닥으로 내려와 혼자 자기 시작했다. 침대가 좁아진 탓이다. 사춘기를 맞는 우주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엄마인 김씨는 여관 복도로 나가 있어야 한다. 그래도 부부는 “참고 견디며 살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 있어야 우주의 미래가 더 밝다고 믿고 있어요. 학원은 못 보내도 가정교육을 제대로 시켜서 ‘사람다운’ 착한 사람으로 이곳에서 정착했으면 좋겠어요.”


캠페인에 참여하시려면


우주네 가족에게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기업은행 148-013356-01-136 예금주: 대한적십자사)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대한적십자사(1577-8179)로 문의해주십시오. 모금에 참여한 뒤 대한적십자사로 연락 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목표 모금액은 1천만원입니다. 후원금은 우주네 가족의 주거지원비와 생계비로 사용됩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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