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식 없는 그들, 진실 규명 바랐던 국민들 ‘모욕’
등록 : 2013.08.16 19:44수정 : 2013.08.16 21:39 

16일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댓글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청문회’에 출석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왼쪽 사진)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원세훈·김용판 출석, 헌정사상 첫 ‘증인선서’ 거부
“질의에 따라 답하겠다” “증언 거부” 청문회 무력화
진실 규명을 바랐던 국민들에게 모욕감을 안겨준 하루였다.

국가정보원의 조직적인 대선 여론조작과 이를 축소·은폐했던 경찰 수사의 전말을 파헤치려는 국회 국정조사는 사실만을 말하겠다는 ‘증인 선서’마저 거부하는 증인들의 ‘꼼수’ 앞에서 무력화됐다.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기를 기대했던 이들은 비현실적으로 당당한 증인들의 태도에 결국 실망감만 곱씹어야 했다.

16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위증할 경우 처벌받겠다’는 증인 선서는 거부하면서도, 대선 개입 및 수사 축소·은폐와 관련한 검찰 공소사실과 의원들의 추궁에는 적극 부인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였다. 14일로 예정됐던 청문회에 뚜렷한 이유 없이 불출석한 이들은 여야가 이번에도 출석하지 않으면 고발할 수 있다는 동행명령장을 보내자, 김 전 청장은 오전 10시, 원 전 원장은 오후 2시에 출석했다. 변호인을 동행한 이들은 사전에 입을 맞춘 듯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증인 선서를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에 소환된 증인이 증인 선서를 거부한 것은 독립성이 요구되는 수사기관장을 제외하고는 처음이다.

지난 7월2일 국회 본회의 의결로 구성된 국정원 국정조사특위는 특위 구성과 국정원 기관보고 방식, 증인 채택 문제를 두고 여당의 발목잡기와 버티기, 야당의 전략 부재 탓에 파행을 거듭하며 45일을 공전한 끝에 이 두 사람을 핵심 증인으로 청문회 증인석에 세우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두 증인이 위증죄를 피해 가는 꼼수를 부리며 자신에게 유리한 여당 쪽 질문만 골라 충실히 답변하고, 불리하거나 곤란한 야당 쪽 질의에는 “답할 수 없다”, “동의하지 않는다”며 피해 가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청문회는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

새누리당 특위 위원들은 박근혜 정부의 검찰이 공직선거법과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한 사건에 대해 시종일관 “대선 승리에 집착한 민주당의 정치공작 사건”이라고 주장하며 두 증인을 감싸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청문회를 본 이들은 고위 공무원을 지낸 증인들의 증언 태도와 새누리당 의원들의 행태에 깊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고위직 공무원을 역임한 두 증인이 선서는 거부하면서 검찰 공소내용 자체를 전면 부인해버렸는데, 이는 국민을 상대로 위증을 해도 상관없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증인들의 변호인을 방불케 할 정도로 적극적인 과잉 엄호에 나섰다. 예상했던 것보다 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문회를 보고 화가 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번 주말 촛불집회 규모가 더 커질 것 같다”고 했다.

국정원 국정조사는 앞으로 19일 청문회, 21일 예비 청문회를 남겨 두고 있지만, 청문회에 나서는 증인들과 여당의 태도를 볼 때 앞으로 일주일 남은 국정조사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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