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ews.v.daum.net/v/20200606213221847?s=tv_news
반민특위 피습.."민족정기 짓밟힌 국치일"
송명희 입력 2020.06.06. 21:32
[앵커]
현충일인 오늘(6일)은 71년 전 친일파 처벌을 위해 설치된 반민특위가 경찰의 습격을 받은 날이기도 합니다.
독립유공자들은 민족정기가 짓밟혔다며 이 날을 국치일로 부르는데요.
이후 이승만 정권의 조직적 방해로 반민특위가 좌초되고 지금까지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았죠.
역사가 송두리째 묻힌 그 날을 송명희 기자가 마주했습니다.
[리포트]
서울 중부경찰서를 수십 명이 둘러쌌습니다.
독립유공자 그리고, 그 후손들입니다.
["사과하라 사과하라!"]
71년 전, 1949년 6월 6일 친일파 조사에 속도를 내던 '반민특위' 사무실에 권총을 든 중부경찰서장과 경찰들이 난입합니다.
반민특위는 무장해제됐고 직원과 민간인 35명이 끌려갔습니다.
[김원웅/광복회장 : "친일 청산의 동력이 완전히 상실되었습니다. 친일 반민족세력들이 사실은 그날부터 잔칫날입니다."]
당시 김상덕 반민특위위원장의 아들은 8순이지만 지금 광복회 사무총장입니다.
[김정육/광복회 사무총장 : "각 지방에서 온 생생한 고발장 이것부터 먼저 탈취하고 문서 탈취하고 반민특위 기능을 일단 제거합니다."]
반민특위가 악명 높았던 친일파인 노덕술과 최운하 등 경찰 간부들을 체포하자 친일 경찰이 주도한 습격이었습니다.
습격에 앞서 5월 말쯤 이승만 대통령이 아버지인 김상덕 위원장을 찾아온 날을 생생히 기억했습니다.
[김정육 : "반민특위 위원장이. 경호팀이 있었습니다. 경호실이 있고. 저 바깥으로 다 쫓겨났어요. 경무대 경호팀이 확 둘러싸버려요. 이게 뭐냐 겁박을 하는 겁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노덕술 등의 석방을 요구했고 김 위원장은 거부했습니다.
[김정육/광복회 사무총장 : "거절했죠. 그 사람들을 만약에 풀어주면 반민특위는 의미가 없어지죠."]
거절의 대가는 친일 경찰의 습격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된 조사 대상은 당시 7천 명.
그러나 682건을 조사하고, 그 가운데 221건을 기소하는데 그쳤야 했습니다.
당초 조사 대상의 10%에도 못 미칩니다.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 : "815 이후에 최대의 민족 치욕의 날은 바로 오늘입니다."]
20일 뒤인 6월 26일 김구 선생이 암살되면서 반민특위는 더욱 위축됩니다.
이승만계가 압도적 다수였던 국회가 반민법의 공소시효를 50년 6월 20일에서 49년 8월 31일로 단축시켰고 반민특위는 해체됩니다.
해방 이후 바로 청산되지 않은 친일은 사회 갈등과 분열의 씨앗이 됐습니다.
KBS 뉴스 송명희 입니다.
송명희 기자 (thimbl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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