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47880
조선인 일본군들에게 묵념할 수 없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규탄하듯 현충원 일본군 참배도 지탄받을 일
20.06.06 19:44 l 최종 업데이트 20.06.06 19:44 l 김형남(news)
▲ 제65회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유가족들이 참배하고 있다. 2020.6.5 ⓒ 연합뉴스
지난해 여름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 군인들을 조사해보기로 했다. 해마다 6월이면 여러 사람이 현충원을 찾아 참배하는데 이 문제를 두고 보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그랬다.
군인권센터는 친일인명사전을 뒤져 일본군과 만주군에서 활동한 군인 중에 현충원에 안장된 56명을 찾아냈고 이들의 행적을 좇았다. 소속은 어디인지, 군사 교육은 어디서 받았는지, 진급은 어디까지 했는지, 전공은 무엇을 세웠는지, 훈장은 무엇을 받았는지, 광복 후에는 무슨 일을 했는지.
나는 박정희, 정일권, 김창룡과 같은 이들이 일제 치하에 만주에서 독립군을 때려잡았다는 이야기만 접했을 뿐이지 내막은 잘 알지 못했다. 막연히 차별받는 식민지 조선인들이 전쟁통에 출셋길을 찾아 일본군에서 하급 군인으로 복무한 줄로만 알았다.
56명의 행적
하지만 내용을 찾아보니 이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었겠으나 그들은 현충원에 없다. 현충원에 있는 사람들, 국군의 아버지라 칭송받고 한국전쟁 영웅으로 추앙받는 56명의 행적은 이러하다.
일본군 소속이 20명, 만주군 소속이 36명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자가 25명
대령급 장교에 이른 자가 3명
영관급 장교에 이른 자가 11명
일본국과 만주국의 황제에게 받은 훈장이 도합 23개
태평양 전쟁에서 야전 지휘관을 맡은 자가 2명
아비와 아들이 대를 이어 일본 육사를 나온 집이 두 곳.
초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이응준은 1914년 일본 육사를 26기로 졸업한 뒤 시베리아 간섭전쟁, 궈쑹링 사건, 제남 사건, 중일 전쟁, 팔로군 토벌에 참전하여 공을 세워 훈3등 서보장을 수여 받고 대좌(대령)으로 진급하였다.
초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김정렬은 태평양 전쟁 당시 필리핀 해상에서 미군 공군을 궤멸시키고 전대장 대리가 된 뒤 일본군 공군 지휘관을 양성하는 교관으로 발령받았다.
초대 해병대사령관을 지낸 신현준은 만주군 통역관으로 복무하다 중앙육군훈련처를 5기로 졸업한 뒤 항일 빨치산 부대 토벌 작전, 간도특설대 창설요원,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 팔로군 토벌 작전, 소련군 진격 저지 작전에 참여했고 만주국 훈6위 경운장을 수여 받고 상위(대위)로 진급하였다.
국회의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정일권은 만주국 육군군관학교에서 성적우수자로 추천받아 일본 육사로 유학, 53기로 졸업한 뒤 만주군 헌병이 되어 시베리아 철도 폭파 훈련을 받고 만주군 총사령부에서 복무하다 상위(대위)로 진급했다. 이후 간도헌병대 대장이 되었다.
국방부 장관을 지낸 신태영은 1914년 일본 육사를 26기로 졸업한 뒤 시베리아 간섭전쟁에 참전하고 조선군에 복무하다 중좌(중령)로 진급하여 훈4등 욱일장을 받았다. 그는 1943년 경성신문에 '내 첫 출진의 목표는 야스쿠니 신사다'라며 조선 청년들의 자원 입대를 선동하는 글을 남겼다.
조선인 일본군
이들에게 친일 군인이란 타이틀을 붙여주는 것이 온당한지 잘 모르겠다. '조선인 일본군'이라 부르는 것이 더 알맞지 않을까.
현충원에서 조선인 일본군을 이장해야 하는 이유는 많다. '독립운동가와 한 데 안장할 수 없다.', '순국선열에 대한 모독이다.', '친일 행적에 대한 미화다.' 모두 옳은 말이다. 그럼에도 더 따져보아야 할 것은 '이들이 부역한 일제의 행위가 무엇인가?'가 아닐까.
조선인 일본군들이 목숨 걸고 나선 것은 전쟁 범죄로 규정된 일본 제국의 침략전쟁이다. 이들은 일본 본토에서, 중국에서, 만주에서, 동남아에서 태평양 전쟁의 일익으로 활약했다.
우리는 세계를 아비규환으로 몰아넣은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구성원들을 현충원에 묻어놓고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전범 1048명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총리가 참배 가는 일이 지탄받는 것처럼, 대통령과 고위 관료, 유력 정치인, 공직 선거 후보자들이 틈마다 때마다 찾아가 고개 숙이는 현충원에 침략 전쟁에 나선 56인의 일본군을 묻어놓은 일도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다.
육군참모총장은 초대부터 10대, 공군참모총장은 1대와 3대가, 해병대사령관은 1대부터 3대까지 모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이 중에서 한 사람만 빼고 모두 현충원에 들어가 있다. 한 사람이 들어가지 않은 까닭은 그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요즘 그 사람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다. 누군가는 전쟁 영웅을 욕보여서는 안 된다고 하고, 누군가는 지나간 과오 때문에 공을 세운 이를 현충원에 묻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일하겠느냐고 되묻는다.
▲ 시민단체 회원들이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김창룡(장군1-69), 김석범(장군1-71), 김동하(장군1-50), 이형근(장군1-11), 소준열(장군1-21)이 안장되어 있는 장군 제1묘역으로 이동해 단죄수를 묘역과 묘비에 뿌리는 ‘장군 제1묘역 안장자 죄악상 고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2019.6.6 ⓒ 임재근
보훈이란
묻는다. 월에 몇십만 원 주는 것이 아까워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다 다치고 스러진 이들에게 유공자의 자리를 내어주는 일에는 그리 인색하면서, 침략전쟁을 민중의 평화로 미화하며 칼 잡은 이의 사명 따위를 운운하고 있는 늙은 일본군에게는 어찌 그리 관대한가.
현충원은, 보훈제도는 개인에게 영광을 주고자 마련된 제도가 아니다. 이 나라가, 공동체가 어떤 과거를 기념하고 무슨 가치를 공유할 것인지 합의하는 것, 그것이 보훈이다.
누가 파묘산골이라도 하자고 하는가. 현충원에서 빼자는 것뿐이다. 이들을 기념하고 싶거든 하고 싶은 사람끼리 따로 기념관도 짓고 묘지도 만들면 된다. 다만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침략전쟁에 부역한 이들 앞에 묵념하는 일은 그만해도 되지 않겠는가.
☞ 군인권센터가 조선인 일본군 56인의 일제 치하 행적과 해방 이후 행적을 구분하여 정리해둔 명단 보기.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형남은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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