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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조선 후예들이 외부의 공격으로 몰려 집결한 곳으로 후에 선비족 발상지로 알려진 알선 동굴. 헤이룽장성과 몽골이 접하는 지역에 있다. 선비족은 AD1세기께 이곳을 떠나 초원으로 이동했다. 이 지역을 흐르는 강이 아리하(阿里河)인데 이 이름은 아무르강, 압록강, 한강, 알천(경주)에 반영돼 있어 민족 이동의 징표가 된다.
2 알선동 지역에서 발견된 명문(銘文). 위서에 따르면 북위의 태무제 때(443) 지역 부족들이 나라의 발상지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태무제는 동굴에서 제사를 지낸 뒤 축문을 새기고 돌아왔다. 축문은“위대한 선조들 덕에 천하를 다스리게 됐고 조상의 은덕으로 무궁 발전할 수 있도록 축원한다”는 내용이다. [권태균 제공]
선비족도 고조선의 한 갈래, 고구려와 형제 우의 나눠
[중앙선데이] 입력 2011.03.13 01:27 / 수정 2011.03.13 01:27
김운회의 新고대사: 단군을 넘어 고조선을 넘어<끝>
1 고조선 후예들이 외부의 공격으로 몰려 집결한 곳으로 후에 선비족 발상지로 알려진 알선 동굴. 헤이룽장성과 몽골이 접하는 지역에 있다. 선비족은 AD1세기께 이곳을 떠나 초원으로 이동했다. 이 지역을 흐르는 강이 아리하(阿里河)인데 이 이름은 아무르강, 압록강, 한강, 알천(경주)에 반영돼 있어 민족 이동의 징표가 된다.
⑨ 고조선의 계승자들
고조선 멸망 뒤 유민 일부는 고조선 남부와 해안을 중심으로 부여에서 유입된 세력과 연합해 고구려를 건국한다. 다른 갈래들은 고조선 북부에서 국가 형태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선비나 오환으로 불리며 할거했다. 크게 보면 고조선 후예들은 고구려부(高句麗部)와 선비오환부(鮮卑烏桓部)로 나눠지고, 선비오환부는 다시 모용부(慕容部)·탁발부(拓拔部)·우문부(宇文部)·단부(段部) 등으로 분류된다.
2 알선동 지역에서 발견된 명문(銘文). 위서에 따르면 북위의 태무제 때(443) 지역 부족들이 나라의 발상지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태무제는 동굴에서 제사를 지낸 뒤 축문을 새기고 돌아왔다. 축문은“위대한 선조들 덕에 천하를 다스리게 됐고 조상의 은덕으로 무궁 발전할 수 있도록 축원한다”는 내용이다. [권태균 제공]
BC 2세기 한나라는 ‘흉노’를 견제하는 완충지대를 만들기 위해 요하상류의 동호(東胡·선비오환부)를 한나라 5부 북쪽으로 옮기려 했다(後漢書 烏桓鮮卑列傳). 그런데 흉노가 이를 간파해 동진하자 동호는 선비산(鮮卑山)과 오환산(烏桓山)으로 달아났다. 그러자 이들을 선비 또는 오환으로 부르게 됐다(烏桓鮮卑列傳)고 한다. 이들의 명칭이 시기에 따라 임의로 붙여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전국책(戰國策)에 “조(趙)나라… 동으로 연나라와 동호의 경계가 있다” 하고 사기에 “연나라 북쪽에는 동호와 산융(山戎)이 있고 이들은 각기 흩어져 계곡에 거주하고 있다… 흉노의 동쪽에 있어 동호라고 했다(匈奴列傳)”고 하는데 동호 지역이 모두 고조선 영역이다. 따라서 동호는 고조선인들을 말한다.
그런데 오환이 처음 나타나는 사기의 기록엔 “연나라는… 북으로 오환부여, 동으로 예맥조선과 서로 접하고 있다(貨殖列傳 烏氏<502E>)”고 한다. 이 기록은 흉노의 동진으로 동호가 오환산으로 들어가 오환족이 됐다는 후한서와 어긋나 의심스럽다. 또 부여는 북만주 일대이므로 연나라 ‘북’이라면 고조선 지역인데 사기는 이를 오환 지역으로 본 것이다. 결국 부여와 조선이 모두 예맥의 국가인데 ‘오환부여’니 ‘예맥조선’이니 하므로 오환은 예맥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오환산은 적산(赤山), 즉 울라간(Ulagan)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요사 지리지에 의하면 “오주(烏州)는 원래 오환의 땅으로 요하(遼河)·오환산(烏桓山) 등이 있으며 경주(慶州)에는 적산(赤山)이 있다”고 한다. 오환산은 현재 홍산문화의 중심지인 츠펑(赤峯)이다. 츠펑은 몽골어로 ‘울라간 하다(Ulagan Hada)’라고 하는데 원사(元史)에도 적산(赤山)으로 명기돼 있다. 붉은 산(울라간)은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아사달’ ‘조선’과 연관되지만 아직 구체적인 문헌적 연계는 찾지 못하고 있다.
흉노와 후한의 대치 국면에서 고조선은 번영하지만 한 무제의 침공으로 흉노는 후퇴하고 고조선은 멸망한다(BC 108). 많은 유민이 발생하고 이들 대부분은 잡거(雜居)한다. AD 46년을 전후해 북방 일대는 메뚜기의 습격으로 수천 리가 붉게 변하고 초목이 말라 죽어 황무지가 되는 등 천재지변이 발생한다(後漢書 南匈奴列傳). 흉노는 내분으로 남북 흉노로 분열했다(48년). 이를 틈타 고조선의 후예(또는 동계)인 오환선비는 흉노를 막남(莫南) 지역까지 몰아 오르도스(현재 네이멍구(內蒙古) 바우터우 인근) 일대까지 세력을 확장했다(後漢書 卷90 烏桓鮮卑列傳).
고조선은 2세기께 선비족을 중심으로 재통합된다. 옛 고조선의 북부인 요서 지역에서 단석괴(檀石槐)는 후일 칭기즈칸만큼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다. 단석괴는 광활한 영역을 통치하기 위해 제국을 동·중·서부로 나눠 각각 대인을 배치했다. 동부는 현재의 허베이(河北) 핑취안(平泉)~랴오양(遼陽), 중부는 탕산(唐山)~베이징(北京), 서부는 베이징~둔황(敦煌)에 이르는 지역이었다.
단석괴 사후 2세기 말 이 지역은 구력거(丘力居)로 이어진다. 황제를 칭한 그는 영역을 확장해 청주·서주·유주·기주 등 네 주를 점령했다(三國志 魏書오환전). 3세기 초에는 구력거의 조카 답돈(踏頓:?~207)이 황제위를 이었다. 당시 북중국의 실력자였던 원소(袁紹:? ~ 202)는 답돈과 우호 관계를 맺고 친척의 자식을 자기 딸로 꾸며 시집을 보냈다(魏書 무제기). 답돈은 위 무제 조조(曹操)의 정벌 때 참수됐다. 이 시기를 전후로 고구려는 옛 고조선 남부 지역인 요하에서 벗어나 한반도 북부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가비능(軻比能:?~235)이 여러 부족을 통솔해 위(魏)나라와 대립하다 암살되자 분열돼 모용부·탁발부·우문부·단부로 재편됐다. 이들 가운데 모용부가 가장 강해 전연(前燕:337∼370)과 후연(後燕:384∼409)을 건국했다.
4세기엔 ‘조선’이라는 이름이 다시 나타난다. 진서에 “모용외가 건무(후한 광무제의 연호) 초에 정벌 전쟁을 하여 공이 크게 쌓여 조선공(朝鮮公·조선왕)에 봉해졌고 이를 모용황이 계승하였다(晉書 卷109)”고 했다. (고)조선의 이름이 고구려 아닌 모용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진서에는 모용외(慕容<5EC6>)가 조선공에 봉해진 뒤 모용황(재위 337∼348)이 이를 계승하자 내분이 일어났고, 모용황은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험독(險瀆)으로 갔다는 기록이 있다(晉書 卷109). 수경주(水經注)나 청나라 고염무의 일지록(日知錄)에 따르면 이 지역이 바로 현재 베이징 인근으로 과거의 고죽국이다. 이로써 베이징 인근~요동에 이르는 고조선 옛 지역은 조선왕 모용외·모용황이 회복했다.
고조선이 멸망 450여 년 만에 더욱 강력하게 부활한 것이다. 조선왕 모용황은 기존의 고조선 영역뿐만 아니라 훨씬 더 남하해 북중국 주요부를 대부분 장악했다. 중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국호를 연(燕·전국시대 연과는 다름)이라고 했다. 이런 현상은 고조선의 후예들이 중국을 지배할 때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후연은 모용운(慕容雲)으로 이어진다. 진서(晉書)는 “모용운은 모용보(慕容寶)의 양자로 조부는 고화(高和)인데 고구려의 한 족속이다(慕容雲傳)”고 한다. 모용운은 즉위 후 성을 다시 고(高)씨로 하고 광개토대왕이 사신을 보내어 종족(宗族)의 예를 베풀자(408년), 시어사 이발(李拔)을 보내어 답례함으로써 종족 간의 유대감을 표시했다(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모용씨 세력이 약화된 뒤 탁발씨가 대두해 건설한 국가가 북위(北魏:386∼534)다. 북위 헌문제(454∼476)는 ‘고구려를 정벌해 달라’며 472년 백제 개로왕이 국서를 보내자 꾸짖으며 장수왕을 두둔했고, 장수왕에게 딸을 보낼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헌문제의 아들 효문제(471~499) 탁발굉은 고구려 왕족 고조용(高照容:469~519)을 황후로 맞았는데, 그녀가 유명한 문소황태후(文昭皇太后)로 다음 황제인 선무제(499~515)를 낳았다(魏書 文昭皇太后列傳). 선무제의 등극에 황족 일부가 반발하자 문소황태후의 오빠인 고구려의 고조(高肇)가 대군을 몰고 와 북위 조정을 장악했고, 남조 송나라의 대군을 격파하기도 했다(502).
“491년 장수왕이 서거하자, 북위의 효문제가 부음을 듣고 흰 위모관과 베로 지은 심의를 입고 동교(東郊)에서 거애(擧哀)하였다”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기록에 따르면 효문제는 천자(天子)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서거한 듯한 애도의 정을 보였다.
이 같은 전연·후연·북위·고구려의 관계는 모용부·탁발씨·고구려가 중국 북부 지역에 서로 다른 나라를 만들었지만 ‘고조선의 후예’라는 인식을 공유했음을 보여 준다.
6세기 북위의 멸망 수·당시대(7~10세기)가 열렸다. 수·당나라는 선비족 전통과 중국 한족(漢族)의 발달된 문화를 결합해 퓨전(fusion) 통치체제를 구성했다. 수나라를 건국한 양견(楊堅)은 한족과 선비족의 혼혈이었고 당나라를 세운 이연(李淵)은 양견의 이종사촌이었다. 전 서울대 박한제 교수는 호한융합(胡漢融合) 또는 호한체제(胡漢體制)라고 평가한다. 동아시아 최초의 거대 국제 국가 당은 ‘선비(鮮卑)의 나라’지만 한화가 극심했고 중국도 한·당나라를 중화의 꽃으로 보고 있어 이 시기를 고조선의 고유성(固有性)만으로 보기는 어렵다. 당나라는 그 정체성을 중립적, 비한비이(非漢非夷)로 파악해야 한다. 이 시기는 많은 북방민족이 한족으로 귀화 또는 편입했고 만리장성 이북에서 북방민의 고유성이 많이 상실되는 계기가 됐다. 고조선의 고유성은 만주에서 거란·고구려·발해가 유지했다.
10세기 번성했던 거란(요나라 중심세력)은 우문부의 후예다. 우문부는 모용부에 의해 궤멸된 뒤 남은 사람들로 후에 거란으로 불렸다. 위서에는 “거란국은 고막해(庫莫奚)의 동쪽에 있는데 고막해와 같은 민족으로… 선조는 동부 우문의 별종이고 처음 모용원진(慕容元眞)에게 격파돼 송막지간(松漠之間)으로 달아나 숨었다(魏書 庫莫奚 契丹)”고 기록했다. 송막지간은 현재 네이멍구다.
요사(遼史)는 “요나라는 그 선조가 거란이고 본래는 선비의 땅이다. 요택(遼澤)에 살았다(“遼國其先曰契丹 本鮮卑之地 居遼澤中” 遼史 地理志)”고 한다. 이 요택(요하의 삼각주 유역)은 대릉하~요하 유역의 세계 최대 습지로 전국시대에는 고조선 땅이었는데 연나라의 침입으로 고조선이 밀려간 서쪽 국경 지역으로 추정된다.
나아가 요사는 “요나라는 조선의 옛 땅에서 유래했으며, 고조선과 같이 팔조범금(八條犯禁) 관습과 전통을 보존하고 있다” 했고 요사의 지리지에는 “(수도의 동쪽 관문인) 동경요양부는 본래 조선의 땅(“東京遼陽府本朝鮮之地” 遼史 地理志2)”이라고 기록한다. 고조선의 후예인 거란(동호의 후예)은 모용부·탁발부 등 타 부족의 기세에 눌려 지냈지만 이전의 북위, 수·당과 달리 고조선의 고유 전통을 유지하면서 고조선의 옛 지역을 모두 회복하고 더욱 세력을 키워 중원으로 진출했다.
고조선은 중국의 전설 시대부터 존재했고 BC 7세기엔 춘추 5패나 전국 7웅 같은 국가 형태로 유지됐다. BC 4세기께 보다 독립적인 고대 국가를 형성해 연나라와 경쟁했고 BC 3세기 말에는 진(秦)과 국경을 맞대며 화평을 유지했다. BC 2세기 흉노와 한나라의 각축 속에서 번영했으며 멸망 후에는 남으로는 고구려와 신라, 북으로는 선비오환에 의해 지속적으로 부활되고 계승돼 왔다. 고조선의 후예들은 4C 모용씨 이후 중국 지배를 본격화하는 특성이 나타나면서 중국 대륙으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이후 대부분의 중국 비(非)한족 왕조는 이들이 건설했다. 그러나 중국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고조선의 고유성을 상실했다. 고조선의 고유성은 주로 고구려·거란(요)·금·고려·청 등에 의해 유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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