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1367
1월부터 9회에 걸쳐 본지에 실린 김운회 교수의‘단군을 넘어 고조선을 넘어’.
-왜 그렇게 생각하나.
“역사 기록에도 없는 단군신화나 기자 조선은 침소봉대하면서 모용황이 조선공(조선왕)이라거나 요나라가 고조선의 영역과 전통을 가장 오래 이어왔다는 기록, 그리고 동호가 고조선이라는 기록들을 외면했다. 4세기 이전까지는 기록도 없는 백제를 BC 1세기에 건국한 것처럼 가르치고, 서울·경기 지역에 광범위하게 거주한 말갈을 오랑캐라고 한다. 우리 스스로를 오랑캐라 폄하하는 것 아닌가. 고증 제일주의를 표방하면서도 한반도 중부 지역을 숙신의 남쪽 지방이라고 한 정사의 기록은 부인한다.”
-재야사학계는 무슨 문제가 있나.
“더 심각하다. 고증을 외면하고 과장한다. 심지어 신라의 수도가 중국의 장안(시안)이라는 주장도 한다. 정사의 지리지가 그저 있는 게 아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정사를 남겼고 왕조별로 검정을 해왔다. 『한단고기』 식으로 근거도 없이 ‘경진원년(BC 1716) 큰 가뭄이 있었고 을해 56년(BC1666) 호구를 조사하니 총계가 1억8000이었다’고 하는 것은 소설이다. 역사가 제대로 기록된 것은 BC 3세기 한(漢)대 이후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신고대사에서 가장 큰 이슈는 선비를 고조선의 후예라고 한 것이다. 그 의미는.
“천 년 넘게 이어져온 고조선의 멸망(BC 108) 후 유민들은 2세기께 단석괴(檀石槐)를 중심으로 재통합된다. 그는 고대 한국인들의 건국신화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태양감응 설화’의 유일한 실존 인물이다. 이후 구력거ㆍ가비능 등이 확장된 고조선 지역을 다스리다가 중국 자객에게 암살된 뒤 모용부ㆍ 탁발부ㆍ우문부ㆍ단부로 재편됐다. 이들은 역사 기록에 나타나는 고조선의 유민들이다. 그 외 나머지의 일부는 부여 이주민과 결합해 고구려의 건국세력이 된다. 그리고 뒤에 요나라로 이어진다.”
-요나라를 유별나게 주목하는 것 같다.
“동아시아 문명 전체에 대한 연고와 관련 있기 때문이다. 고조선의 상징인 비파형 동검은 내몽골의 자오양(朝陽)과 선양에 집중 분포돼 있다. 유물의 중심 지역은 최근 세계를 놀라게 하는 홍산(紅山) 문화 지역인데 바로 과거 요나라 수도다. 요하 상류는 한국인들의 주거 양식인 구들의 발상지다. 요나라 역사를 추적하면 한민족의 원형질인 고조선의 역사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리즈에 따르면 고구려는 고조선의 실제 적통과는 상대적으로 연계가 약하다. 요가 고조선을 이었다면 우리는 뭔가? 혼란스럽다.
“역사를 소중화주의 식으로 보면 그런 인식이 생긴다. 한반도 역사는 만주ㆍ한반도ㆍ몽골ㆍ시베리아 유목민 역사의 일부다. 고조선은 서쪽으론 전연ㆍ북위로 동쪽으론 고구려ㆍ백제ㆍ신라로 분리됐다. 그런데 왜 한반도만 고조선 역사를 독점해야 하나. 요가 고조선을 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왜 외면하나. 고구려와 선비는 분명 고조선의 고토에서 비롯됐고 이들은 협력하고 경쟁하면서 동아시아 발전에 기여했다. 우리는 이런 역사를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요나라가 과거 형제 나라인 고려보다 동아시아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컸음을 인정하는 게 무엇이 문제인가.”
-모두 2000년 전 한 민족이었다는 것을 오늘날 강조하는 것은 과장 아닌가.
“동아시아의 고대사 문제는 현대사 문제다. 일본이 ‘임나일본부’를 식민지 지배의 정치 이데올로기로 삼았다. 현대 중국도 마찬가지다. 마오쩌둥이 정치적 돌파구를 역사에서 찾았듯 현대 중국 공산당도 중국 내부 문제의 돌파구를 역사에서 찾고 있다. 사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연고권을 강화하기 위해 역사 왜곡이 절실하다.”
-우리도 역사 왜곡을 하자는 것인가.
“아니다. 한국은 베이징발 역사 도발의 배경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중국의 역사전쟁은 범알타이인(알타이, 몽골, 만주, 한국인)들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몽골 제국의 역사도 1950년대부터 북중국 역사로 기록한다. 몽골인 국가가 엄연히 있는데 칭기즈칸ㆍ쿠빌라이칸 같은 알타이의 영웅들을 북중국인으로 만들었다. 이면에는 몽골도 한족의 영토라는 생각이 숨어있다. 중국은 동아시아 전체의 역사를 집어 삼키려 한다. 중국은 일본과 다투는 센카쿠(尖閣)열도뿐 아니라 오키나와(沖繩)를 포함한 140여 개 류큐(瑠球) 전체도 중국 영토라고 주장한다. 필리핀도 자기 땅이라고 한다. 발해를 독립 국가가 아닌 발해도독부로, 당나라의 침입을 막은 고구려의 박작성(泊灼城)을 호산장성(虎山長城)으로 둔갑시켜 만리장성 동단으로 만들었다. 고조선의 대표 유물인 비파형 동검은 한족이 발전시켜 한반도와 일본의 문명 발전에 기여한 듯이 묘사한다. 중국의 역사패권을 넘으려면 우리 역사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 있어야 한다. 고려 말의 학자 이암 선생은 ‘나라는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國猶形史猶魂)’고 했다. 지금 우리 혼을 말살하려는데 제대로 대응을 하지 않으니 이보다 더 큰일이 어디 있겠는가?”
나라는 몸 역사는 혼 …우리 혼 말살되는데 대응 못 해 큰일
新고대사 ‘단군을 넘어 고조선을 넘어’필자 김운회 교수
안성규<askme@joongang.co.kr> | 제214호 | 20110416 입력
본지가 1월 16일 이후 9회에 걸쳐 연재한 ‘김운회의 신고대사’는 특이했다. 고조선사를 집중 조명한 연재물은 사막의 모래 밑에서 혹은 깊은 물 속에서 역사의 덩어리를 꺼냈다. 어떻게 이처럼 거대한 고대사가 지금까지 숨겨져 있었을까. 왜 중국이 비하하는 오랑캐의 무리로 우리의 고대 선조를 몰아넣었을까. 과장도 폄하도 없는 철저한 고증 때문에 시리즈는 ‘고대사 교과서를 새로 썼다’는 평까지 받았다. 그러나 깊은 고대사를 담기에 시리즈는 너무 짧았다. 글을 쓴 김운회 교수를 만나 아쉬운 마음을 들어봤다.
-연재에 어떤 의미를 뒀나.
“한국인들의 정체성과 관련해 지난 1000여 년간 나온 공식 기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기록이라고 생각하고 썼다. 한편으론 우리 역사를 한반도에 구겨 넣은 보수사학계와 고조선이 동아시아 전체를 지배한 듯 묘사하는 재야사학계의 패러다임을 교통 정리할 필요도 있었다. 철저히 문헌 고증을 했다. 기록의 사실 여부를 다른 자료들과 비교 검토했다. 원래 훨씬 분량이 많았지만 그런 축약의 과정을 거쳐 고증 중심의 연재가 됐다.”
1월부터 9회에 걸쳐 본지에 실린 김운회 교수의‘단군을 넘어 고조선을 넘어’.
-기존 사학계는 사이비 이론으로 보지 않나.
“연재에 앞서 나는 어떤 전문가라도 공식 반론을 하면 공개 대응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늘 그렇듯 기존 학계는 당장 대응하지 않았다. 사실 보수사학계 내부도 균열이 있다. 일부는 단군신화, 『삼국유사』 『제왕운기』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 재야사학처럼 고조선 강역을 만리장성 이북 전체로 본다. 그러나 주류는 중국 관점을 따르면서 한반도 중심으로 고조선사를 본다. 연재물은 검정과 고증이 가능한 부분만 제시했다. 가장 크게 달랐던 점은 선비의 역사에 관한 기록들을 내가 적극 수용한 것이다.”
-보수사학계는 뭐가 문제라고 보나.
“성리학이 조선의 정치이데올로기가 되면서 ‘소중화 의식’이 사상과 역사를 지배하고 ‘한족과 한국인 외에는 모두 오랑캐’라는 인식이 강력한 패러다임을 형성한 게 가장 큰 문제다. ‘조선’이란 국호도 ‘중국이 봉한 기자조선의 후예’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원래 조선은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을 지칭한 용어이며 고조선의 원이름인데 그 뜻은 버렸다. 스스로 뿌리를 부정한 것이다. 중국ㆍ일본이 역사를 왜곡한다고 하지만 내 생각에 한ㆍ중ㆍ일 가운데 왜곡이 가장 심한 나라가 한국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역사 기록에도 없는 단군신화나 기자 조선은 침소봉대하면서 모용황이 조선공(조선왕)이라거나 요나라가 고조선의 영역과 전통을 가장 오래 이어왔다는 기록, 그리고 동호가 고조선이라는 기록들을 외면했다. 4세기 이전까지는 기록도 없는 백제를 BC 1세기에 건국한 것처럼 가르치고, 서울·경기 지역에 광범위하게 거주한 말갈을 오랑캐라고 한다. 우리 스스로를 오랑캐라 폄하하는 것 아닌가. 고증 제일주의를 표방하면서도 한반도 중부 지역을 숙신의 남쪽 지방이라고 한 정사의 기록은 부인한다.”
-재야사학계는 무슨 문제가 있나.
“더 심각하다. 고증을 외면하고 과장한다. 심지어 신라의 수도가 중국의 장안(시안)이라는 주장도 한다. 정사의 지리지가 그저 있는 게 아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정사를 남겼고 왕조별로 검정을 해왔다. 『한단고기』 식으로 근거도 없이 ‘경진원년(BC 1716) 큰 가뭄이 있었고 을해 56년(BC1666) 호구를 조사하니 총계가 1억8000이었다’고 하는 것은 소설이다. 역사가 제대로 기록된 것은 BC 3세기 한(漢)대 이후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신고대사에서 가장 큰 이슈는 선비를 고조선의 후예라고 한 것이다. 그 의미는.
“천 년 넘게 이어져온 고조선의 멸망(BC 108) 후 유민들은 2세기께 단석괴(檀石槐)를 중심으로 재통합된다. 그는 고대 한국인들의 건국신화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태양감응 설화’의 유일한 실존 인물이다. 이후 구력거ㆍ가비능 등이 확장된 고조선 지역을 다스리다가 중국 자객에게 암살된 뒤 모용부ㆍ 탁발부ㆍ우문부ㆍ단부로 재편됐다. 이들은 역사 기록에 나타나는 고조선의 유민들이다. 그 외 나머지의 일부는 부여 이주민과 결합해 고구려의 건국세력이 된다. 그리고 뒤에 요나라로 이어진다.”
-요나라를 유별나게 주목하는 것 같다.
“동아시아 문명 전체에 대한 연고와 관련 있기 때문이다. 고조선의 상징인 비파형 동검은 내몽골의 자오양(朝陽)과 선양에 집중 분포돼 있다. 유물의 중심 지역은 최근 세계를 놀라게 하는 홍산(紅山) 문화 지역인데 바로 과거 요나라 수도다. 요하 상류는 한국인들의 주거 양식인 구들의 발상지다. 요나라 역사를 추적하면 한민족의 원형질인 고조선의 역사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리즈에 따르면 고구려는 고조선의 실제 적통과는 상대적으로 연계가 약하다. 요가 고조선을 이었다면 우리는 뭔가? 혼란스럽다.
“역사를 소중화주의 식으로 보면 그런 인식이 생긴다. 한반도 역사는 만주ㆍ한반도ㆍ몽골ㆍ시베리아 유목민 역사의 일부다. 고조선은 서쪽으론 전연ㆍ북위로 동쪽으론 고구려ㆍ백제ㆍ신라로 분리됐다. 그런데 왜 한반도만 고조선 역사를 독점해야 하나. 요가 고조선을 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왜 외면하나. 고구려와 선비는 분명 고조선의 고토에서 비롯됐고 이들은 협력하고 경쟁하면서 동아시아 발전에 기여했다. 우리는 이런 역사를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요나라가 과거 형제 나라인 고려보다 동아시아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컸음을 인정하는 게 무엇이 문제인가.”
-모두 2000년 전 한 민족이었다는 것을 오늘날 강조하는 것은 과장 아닌가.
“동아시아의 고대사 문제는 현대사 문제다. 일본이 ‘임나일본부’를 식민지 지배의 정치 이데올로기로 삼았다. 현대 중국도 마찬가지다. 마오쩌둥이 정치적 돌파구를 역사에서 찾았듯 현대 중국 공산당도 중국 내부 문제의 돌파구를 역사에서 찾고 있다. 사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연고권을 강화하기 위해 역사 왜곡이 절실하다.”
-우리도 역사 왜곡을 하자는 것인가.
“아니다. 한국은 베이징발 역사 도발의 배경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중국의 역사전쟁은 범알타이인(알타이, 몽골, 만주, 한국인)들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몽골 제국의 역사도 1950년대부터 북중국 역사로 기록한다. 몽골인 국가가 엄연히 있는데 칭기즈칸ㆍ쿠빌라이칸 같은 알타이의 영웅들을 북중국인으로 만들었다. 이면에는 몽골도 한족의 영토라는 생각이 숨어있다. 중국은 동아시아 전체의 역사를 집어 삼키려 한다. 중국은 일본과 다투는 센카쿠(尖閣)열도뿐 아니라 오키나와(沖繩)를 포함한 140여 개 류큐(瑠球) 전체도 중국 영토라고 주장한다. 필리핀도 자기 땅이라고 한다. 발해를 독립 국가가 아닌 발해도독부로, 당나라의 침입을 막은 고구려의 박작성(泊灼城)을 호산장성(虎山長城)으로 둔갑시켜 만리장성 동단으로 만들었다. 고조선의 대표 유물인 비파형 동검은 한족이 발전시켜 한반도와 일본의 문명 발전에 기여한 듯이 묘사한다. 중국의 역사패권을 넘으려면 우리 역사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 있어야 한다. 고려 말의 학자 이암 선생은 ‘나라는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國猶形史猶魂)’고 했다. 지금 우리 혼을 말살하려는데 제대로 대응을 하지 않으니 이보다 더 큰일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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