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ongik.ac.kr/~kayakim/nonyo/kngima.htm
* "한국의 기마민족설 - 김태식,송규현" 중 목차와 발간사 내용만 가져왔습니다.

韓國의 騎馬民族論
-騎馬民族征服說의 實體와 騎馬文化-
金泰植, 宋桂鉉 共著


제1장 騎馬民族說의 소개와 日本側 硏究史
    Ⅰ. 江上波夫의 騎馬民族說
        1. 1949년의 기마민족설 발표
        2. 1960년대의 기마민족설 증보
        3. 1980~90년대의 기마민족설 변화
    Ⅱ. 日本學界의 反 騎馬民族說
        1. 小林行雄의 乘馬風習 漸進的 輸入論
        2. 水野祐의 네오 騎馬民族說
        3. 佐原眞의 騎馬民族文化 日本不在論
        4. 中村潤子의 考古學的 再檢討

제2장 騎馬民族說과 관련된 韓國側 硏究成果
    Ⅰ. 騎馬民族 日本征服說에 대한 이해
        1. 盧泰敦의 騎馬民族 日本征服說 비판
        2. 千寬宇의 農耕民族 日本征服說
        3. 金貞培의 衛滿朝鮮 騎馬民族說
        4. 金基雄의 加耶-百濟系 騎馬民族 日本征服說
        5. 李基東의 韓倭聯合王國論 비판
        6. 崔秉鉉과 申敬澈의 加耶住民 日本移動說
    Ⅱ. 騎馬民族 百濟征服說
        1. 1970년대까지의 百濟=征服國家論
        2. 李道學의 滿洲百濟騎馬民族 伯濟征服說
    Ⅲ. 騎馬民族 新羅征服說
        1. 新羅 積石木槨墳에 대한 1970년대 이전의 학설
        2. 崔秉鉉의 中央아시아系 騎馬民族 新羅征服說
    Ⅳ. 騎馬民族 加耶征服說
        1. 申敬澈의 夫餘系 騎馬民族 加耶征服說
        2. 夫餘系 騎馬民族 加耶征服說에 대한 反論

제3장 4〜5세기 日本移住民 關聯記錄과 諸學說
    Ⅰ. 日本史書의 4~5세기 韓日關係 관련 기록 검토
        1. 日本列島로의 수많은 移民
        2. 加耶와 百濟 위주의 對倭交涉
        3. 三國의 우월한 文化水準
    Ⅱ. 4~5세기 日本移住民의 성격에 대한 諸學說
        1. 末松保和와 關晃의 歸化人說
        2. 上田正昭의 渡來人說
        3. 江上波夫의 騎馬征服民說
        4. 최근의 援助工人說

제4장 4~5세기 東北아시아의 격변과 加耶系 日本移住民
    Ⅰ. 4세기 東北아시아 정세와 加耶工人
        1. 4세기 加耶 주변의 국제관계
        2. 重裝騎馬戰士團의 加耶 파급
        3. 加耶工人과 倭人傭兵의 교환
    Ⅱ. 5세기 한반도의 세력 재편과 加耶流亡民
        1. 廣開土王 군대의 加耶 원정
        2. 加耶聯盟의 재편
        3. 加耶流亡民의 日本 이주
    Ⅲ. 일본에 건너갔다는 ‘騎馬民族’의 실체

제5장 加耶의 騎馬文化
    Ⅰ. 도입기의 마구
    Ⅱ. 기마문화의 도입과 마구의 변화
        1. 4세기대의 마구
        2. 5세기전반대의 마구
        3. 5세기후반대의 마구
        4. 6세기대의 마구
    Ⅲ. 기마전술과 중장기병
        1. 삼한의 무장
        2. 4세기대의 무장
        3. 5세기대의 무장
    Ⅳ. 마구의 지역성

제6장 騎馬文化의 日本傳播
    Ⅰ. 일본 초기의 마구
    Ⅱ. 갑주의 변화
    Ⅲ. 가야와 일본의 마구 비교

부록: 관련 사료 모음
    ≪三國志≫ , ≪晉書≫, ≪宋書≫, ≪魏書≫, ≪隋書≫, ≪舊唐書≫, ≪新唐書≫, ≪資治通鑑≫
    ≪廣開土王陵碑文≫, ≪三國史記≫, ≪三國遺事≫
    ≪古事記≫, ≪日本書紀≫, ≪續日本紀≫, ≪新撰姓氏錄≫


발간사

2001년 가을에 연구년을 맞이하여 강의를 쉬면서 연구실에 나아가 ≪미완의 문명 7백년 가야사≫ 저작의 마무리 편집을 서두르고 있을 때, 馬事博物館으로부터 騎馬民族說의 實體에 대하여 집필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힘에 부치는 과제인 듯하여 간곡히 거절하였으나, 그 때까지 우리나라 고대사 및 고고학계의 여러 분으로부터 집필을 거절 당했노라는 박물관 측의 설득에 승낙하고 말았다.

기마민족설은 일본 고대의 문헌과 고고학 모두에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고, 시간적 및 공간적으로 다루는 범위가 매우 넓기 때문에, 요즘같이 전공이 세분된 학계 상황으로는 누구라도 이를 종합 정리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내 후회막급이 되어 이를 어떻게 정리할까 고민을 하다가 釜山福泉博物館의 宋桂鉉 館長이 고고학 관련 내용을 분담해 주겠다는 말에 용기를 얻게 되었다.

그에 몰두하여 기마민족설과 본격적으로 씨름한 지가 벌써 만 2년이 되어 책의 발간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많은 힘은 들었으나, 결과적으로 기마민족설에 대한 연구 성과들을 검토하는 중에 가야 문화의 힘과 일본 고대사의 발전 과정에 대하여 좀더 새로운 지견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송 관장이 가야와 일본의 마구 및 그와 관련된 갑주 및 무기 유물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필자의 생각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결론에 도달해 준 것은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騎馬民族說은 원래 일본의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가 1948년의 좌담회 중에 발설하고 1949년에 그 내용을 그대로 토론집으로 발표하면서 알려진 학설로서, 그 요지는 일본 고대국가를 건설한 天皇族은 대륙 및 한반도 방면으로부터 4~5세기에 일본열도로 정복해 들어간 騎馬民族이라는 것이다. 에가미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 학설을 ‘騎馬民族 征服王朝說’이라고 명명하기도 하였지만, 국제적인 시각에서 말하면 ‘騎馬民族 日本列島征服說’이라고 하는 것이 객관적이다. 이 학설은 일본 내에서는 발표 초기부터 세인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 후반 이후 1980년대에 걸쳐 잠시 흥미를 끌다가 기억의 저편으로 묻혀져갔다. 기마민족설이 任那日本府說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마민족설은 그렇게 포기하고 말 정도의 간단한 학설이 아니다. 기마민족설이 마련될 당시에 주요 근거 자료가 된 것은 중국 고대사와 중앙아시아 기마민족에 대한 폭 넓은 이해와 일본 고고학적 유물들의 출토 상황이었다. 그 학설의 핵심적 근거는 4세기 말, 5세기 전반 사이에 일본열도의 고분 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 자료들이 급격하게 무력적이고 귀족적인 성격의 것으로 변모되었다는 점에 있다.

임나일본부설에서는, 5~6세기 일본 고대 문화의 급속한 발전은 이른바 ‘歸化人’들에 의하여 촉발되었으며 이는 곧 任那 支配의 결과라고 보았다. 물론 기마민족설도 임나일본부설과 연동되어 고려된 학설이어서 ‘倭韓聯合王國論’과 같은 문제 있는 관점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고고학적인 관점에서 5세기 일본열도 개척의 근본 원인을 騎馬征服民의 침입과 그에 따른 경영의 결과로 파악한 점은 다시 한번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이제 기마민족설이 나온 지 55년이 지났다. 그 동안 기마민족설이 나올 당시에는 고려되지 않았던 加耶 지역과 北九州 지역의 유물 상황에 대하여 상당한 연구 진전이 있었다. 그리고 작년(2002년) 겨울에는 그 창안자인 에가미 나미오가 타계했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다. 선생의 명복을 빈다. 그런데 그 간의 연구 진전으로 인하여 기마민족설은 일본에서도 더 이상의 흥미를 상실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고대 일본열도가 5세기에 급격한 발전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외부의 침입자인 기마민족에게 정복되었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기마민족’이라고 언급되었던 일본 고대 문명의 개척자들은 누구인가 하는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본서의 목적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4~5세기 일본열도의 개척 및 일본 고대 문명의 발전은 주로 加耶의 鐵과 기타 여러 가지 技術을 둘러싸고 가야와의 긴밀한 交流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4세기에 가야 지역에는 서북한 지역으로부터 상당한 수준의 騎馬文化가 도입되었고, 4세기 후반에 전기 가야의 工人들이 금관가야 왕권에 의하여 일본열도에 지원되었으며, 5세기 후반에는 후기 가야의 工人들이 대가야 왕권에 의하여 일본열도에 지원되었다. 그러한 지원의 대가로 가야는 일본열도로부터 倭人傭兵을 비롯하여 다른 交易品들을 받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5세기 초의 전, 후기 가야 전환기에 많은 가야 유망민들이 발생하여 그 교류 통로를 타고 일본열도로 대거 이주하였다는 것이다.

즉 가야 주민의 상당수가 援助工人 또는 流亡民의 형태로 4세기 말 이후 5세기에 걸쳐 일본열도로 건너갔고, 그들 중의 일부는 天皇族을 비롯한 지배층에 混入되기도 하였다고 추정되지만, 가야가 일본열도를 征服했다고 하거나, 또는 그들을 騎馬民族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加耶와 倭 사이의 관계는 상호 이익을 위한 대등한 交流가 근본 동력을 이루고 있었으며, 거기에 한반도, 일본열도 및 중국의 정세가 광범위하게 얽혀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한반도로부터 일본열도에 건너간 歸化人이나 騎馬征服民, 또는 단순한 渡來人이 아니라 加耶系 日本移住民이었던 것이다. 가야를 대신하여 百濟가 일본열도와 직접적으로 교류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한 단계 늦은 6세기 이후였다.

본서를 집필하는 데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가장 큰 조력자는 공동 집필자인 송계현 관장이며, 여러 모로 바쁜 와중에 좋은 글을 집필해 준 그의 노력에 가장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한 마문화 연구총서 시리즈를 마련하여 재정적으로 지원해 준 한국마사회 박창정 회장, 본서를 기획하고 필자에게 이를 의뢰한 마사박물관의 최공호 前 관장, 행정적으로 뒷받침해 준 권순호 관장과 김명희 씨, 본서를 정성스럽게 편집해 준 국학자료원 정찬용 사장과 편집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2003년 10월 15일

騎馬民族說의 올바른 變容을 기원하며

金    泰   植



제4장 제3절. 일본에 건너갔다는 ‘騎馬民族’의 실체

http://tadream.tistory.com/10927 (내용을 따로 옮겼습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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