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ongik.ac.kr/~kayakim/openlec/Gimhae/Gimhae1-2.htm
김해 가락국의 위상
김해 가락국의 위상
전기 가야연맹의 맹주국인 김해의 가락국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 조'의 기록에 의하면, 3세기 당시에 한반도 남부지역에는 24개의 소국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12개의 소국을 변한(弁韓)이라 하고, 나머지 12개의 소국을 진한(辰韓)이라고 하였습니다. 김해의 구야국(=가락국)은 변한 12국 안에 들어 있으며, 그 변한 12국으로 이루어진 연맹체를 가야사에서는 ‘전기 가야연맹(前期加耶聯盟)’이라고 부릅니다.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아서는 4세기 이전의 낙동강 유역에서 김해 가락국의 대표성이 인정됩니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맹주국은 김해의 가락국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발굴된 고고학 자료들을 비교해 볼 때, 1~4세기 당시 가야지역의 문화 중심은 김해, 부산, 창원을 둘러싼 경남 해안지대였고, 그 중에서도 김해 지방의 출토 유물은 다른 지역에 비해 압도적인 우월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기 가야 소국들은 상당한 통치 체제를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대체로 비슷한 문화 기반 속에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구야국과 같이 지리적으로 해상 교통에 유리하고 비교적 큰 소국이 대외적인 교섭의 대표 역할을 맡곤 하다가, 차츰 소국연맹체가 형성되었습니다.
가야연맹의 형성 시기는 2세기 후반 정도로 볼 수 있으며, 아무리 늦어도 3세기 전반을 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3~4세기에 변한 12국은 김해의 가락국(=가야국=구야국)을 중심으로 통합되어 변한 소국연맹체, 즉 전기 가야연맹을 이루고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그 당시 맹주국인 가락국의 위상은 길이 10미터가 넘는 대형 목곽묘들로 구성되어 있는 김해시 대성동 고분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金泰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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