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ongik.ac.kr/~kayakim/openlec/Gimhae/Gimhae2-5.htm

김해 금관국의 후예가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에 끼친 영향
 
7세기 중엽에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한반도를 통일한 것은, 한국사 전체에서 민족의 형성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것이 신라인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은 틀림없으나, 그 중에 가야의 후예가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신라의 문무왕은 “나의 선왕이 당나라에 군사를 청하여 고구려와 백제를 평정한 것은 비록 군사적 공로라 하나 또한 문장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인 즉, 강수(强首)의 공을 어찌 소홀히 여길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문무왕은 고구려의 평양성을 함락하고 돌아와서 “유신이 나가서는 장수가 되고 들어와서는 재상이 되어 그 공적이 많았다.”며, 김유신(金庾信)에게 국가 최고의 관등인 태대각간(太大角干)의 직위를 주고 대궐에서 지팡이를 짚고 몸을 굽히지 않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로 보아, 신라의 삼국 통일의 일등 공신은, 문(文)의 면에서는 강수(强首)이고 무(武)의 면에서는 김유신(金庾信)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강수는 국원성(國原城: 충주) 사람이나, 신라 무열왕에게 “신은 본래 임나가량(任那加良)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의 선조는 금관국이 532년에 신라에 항복할 때 왕족과 함께 경주로 이주하였다가, 신라가 558년에 국원성을 개척할 때 그 곳으로 옮겨진 사람이었습니다.

김유신은, 백제 성왕을 죽이고 관산성 전투를 신라의 승리로 이끈 김무력(金武力) 각간의 손자이며, 무력의 아버지는 김해 금관국의 마지막 왕인 구해왕(=구형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김유신은 김해 금관국 마지막 왕의 증손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신라가 삼국 통일을 함에 있어서, 김해 금관국의 인적 자원이 문(文)과 무(武)의 양면에서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이는 가야 문화의 여력을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金泰植>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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