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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파령관애(望波嶺關隘)
망파령관애(望波嶺關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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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파령관애 위치도
망파령관애와 칠개정자관애
망파령관애 위치도
망파령관애와 칠개정자관애
집안 망파령관애(集安 望波嶺關隘)는 일명 왕팔발령관애(王八脖嶺關隘)라고도 불린다. 집안시(集安市)에서 서북쪽 약 50km 거리에 있는 삼가자(三家子)댐 부근에 위치한다. 집안시 쌍차향(集安市 雙岔鄕)에서는 서북으로 10km 떨어져 있는데, 쌍차향(雙岔鄕)과 태상향(台上鄕)의 경계지점에 해당한다.
노령 산줄기에서 발원한 쌍차하(雙岔河)가 흐르다가 태상향가 쌍차향의 경계지점을 지날 무렵, 협곡의 폭이 좁아지고 양 옆의 산도 깎아지른 듯이 험준해지는 곳에 설치된 관애이다. 북쪽 산비탈은 높고 가파른데, 아래로는 좁고 험준한 협곡이 내려다보이며, 높이는 약 60m이다.
1962년 길림성박물관 집안고고대(吉林城博物館 集安考古隊)가 길림사범대학(吉林師範大學), 길림성철학사회과학연구소(吉林城哲學社會科學硏究所), 집안현문물관리소(集安縣文物管理所) 등과 합동으로 집안시 전역의 유적을 조사하였고, 1963년 5월에는 관마장산성(關馬墻山城)과 함께 망파령관애를 집중적으로 재조사하였다. 1976년 삼가자(三家子)댐의 건설로 유적의 대부분이 수몰되었고, 1983년 집안현문물조사대(集安縣文物調査隊)가 다시 망파령관애에 대한 실측, 기록, 촬영을 실시하였다.
망파령관애(望波嶺關隘)는 망파령에서 뻗어 나와 협곡을 가로막고 있는 용두령(龍頭嶺)의 등성이에 축조하였으나, 돌로 쌓아 많이 허물어졌다. 용두령의 남단과 망파령이 만나는 지점에는 약간 낮은 구릉이 있는데, 도로가 이곳을 뚫고 지나가며, 도로 북변에 성벽 단면이 드러나 있다. 네모 반듯한 큰 강돌로 기초를 다진 다음, 작은 자갈을 안쪽으로 약간씩 물리면서 층층이 쌓아 올렸다. 성돌의 크기는 20cm, 35cm, 45cm 전후이다. 성벽 높이는 산등성이와 같아 병력이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평탄한 통로를 이루고 있는데, 폭은 1.5m~2.5m이다.
성벽 남단 90m 정도는 일찍이 보수한 흔적이 남아 있는데, 자갈로 쌓은 다음 진흙을 10~20cm 두께로 덧쌓았다. 성벽 남단은 크고 작은 7개의 산봉우리로 이어지는데, 산봉우리 사이의 구릉지에도 돌로 성벽을 축조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성벽의 높이는 2.5m, 9층 전후이고, 안쪽으로 조금씩 물리면서 성벽을 쌓았는데, 약간씩 다듬은 성돌을 사용하였다.
혼강(渾江)에서 신개하(新開河)를 거슬러 집안으로 통하는 교통로상의 요충지에 위치한 군사방어시설로, 신개하 하구에 위치한 패왕조산성과 함께 신개하 일대에서 도성 외곽의 호형방어선(弧形防禦線)을 구축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342년 전연(前燕)과의 전쟁에서 남도와 북도 가운데 남도(南道) 상의 중요한 요충지로 추정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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