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it.ly/1qvt1Am
<29>이순신의 리더십 (11) 위험에 처하면 한마음이 된다
“죽기 각오하고 싸우면 산다<必死則生>” 병사들 독려 승전
2012. 07. 30 00:00 입력 | 2013. 01. 05 08:13 수정
울돌목의 빠른 물살.
벽파정 쪽에서 바라본 명량의 좁은 물목.
명량대첩제 수군 행렬.
‘손자병법’에 “병사들은 위험한 곳에 투입한 연후에야 보존할 수 있으며, 사지(死地)에 빠지게 한 연후에야 살릴 수 있다”는 구절이 있다. 병사들의 일반적 속성은 살아나기 어려운 사지에 던져 놓으면 어쩔 수 없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행동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사람은 해로운 것을 싫어하는 존재’라는 인간관을 활용한 리더십이다. 이순신의 명언으로 잘 알려진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산다(必死則生)”는 말은 명량해전이 벌어지기 하루 전 조선 수군 장병들을 모아 놓고 한 이순신의 훈시(訓示) 내용에 포함돼 있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쳐 가며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게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부하 병사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게 할 수 있을까.
수군 소속 지역 육군 징발 못하게
임진왜란 당시 수군은 매우 힘든 병역(兵役)이었으며 신분도 매우 낮았다. 따라서 그들에게 나라와 임금에 대한 자발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인 측면이 있다. 또 한편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지 않아 실전 경험이 거의 없었던 조선 병사들은 군기나 사기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이순신은 조선의 병사들을 어떻게 봤을까. 장계에서 확인해 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10명 중 8∼9명이 겁쟁이고, 용감한 자는 10명 중 1∼2명에 불과합니다. 이들이 평시에는 구별되지 않고 서로 섞여 있다가 무슨 소리가 나면 문득 도망쳐 흩어질 생각만 해 놀라 엎어지고 자빠지며 다퉈 달아납니다. 비록 그 안에 용감한 자가 있더라도 홀로 흰 칼을 무릅쓰고 죽기를 각오하고 돌격해 싸울 수 있겠습니까.”(條陳水陸戰事狀)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을 겁쟁이라고 본 이순신의 인식이 자못 흥미롭다. 그러나 이순신이 이런 장계를 조정에 올린 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수군의 전장 환경적 특성을 조정에 알려 수군에 소속된 지역에서 육군을 징발해 가지 말 것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순신은 수군의 전장 환경적 특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을까. “해전에서는 많은 군졸이 모두 배 안에 있으므로 적선을 바라보고 비록 달아나려 해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노를 재촉하는 북소리가 급하게 울릴 때, 만약 명령을 위반하는 자가 있다면 군법이 뒤를 따르는데, 어찌 마음과 힘을 다해 싸우지 아니하겠습니까.”(條陳水陸戰事狀)
‘死地’ 울돌목서 절묘한 리더십 발휘
함정은 그 자체가 배수진이요, 승리하지 못할 경우 모두가 함께 죽어야 하는 사지(死地)요 망지(亡地)라는 것이 이순신의 생각이다. 한배를 타고 있는 수군 병사들은 생사를 함께할 수밖에 없는 운명 공동체이기 때문에 일단 전투가 벌어지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쟁 경험이나 훈련이 충분하지 않은 조선의 병사를 데리고 육전을 치르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지지만, 해전에서는 지휘관이 병사들의 소질에 따라 잘만 지도하면 정예 병사처럼 한마음 한뜻이 돼 싸울 수 있다는 것이 이순신이 파악한 수군의 장점이다. 이에 기초해 이순신은 “수군 소속 정예 병사 1명은 100명을 대적할 수 있다”(請舟師所屬邑勿定陸軍狀)는 논리를 내세워 수군 소속 고을에서 육전을 위한 병사를 징발하지 말도록 요청하는 장계를 조정에 올리기도 했다.
이순신이 벌인 해전 가운데 가장 어려운 해전이 명량해전이었다. 절대 열세의 상황에서 해전을 치를 수밖에 없었던 조선 수군 병사들에게 울돌목은 이미 망지요 사지였다.
여러 겹으로 둘러싸고 공격해 오는 일본 함선을 본 조선 수군 병사들은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로 질려 있었다. 이순신은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하루 전에 장수들을 불러 놓고 “너희 여러 장수가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긴다면 군율대로 시행해서 작은 일일망정 용서치 않겠다”(임진년, 9월 15일 일기)고 다짐을 했지만, 여러 장수는 절대 열세의 해전임을 알고 낙심해 회피할 꾀만 내고 있었다.
조선 수군에는 조류가 역방향이어서 노를 열심히 젓지 않으면 뒤로 밀리는 상황이었다. 이인자 격인 전라우수사 김억추조차도 벌써 2마장 밖으로 뒤처져 있었다. 순간 이순신은 다급했다. 부하 장수들을 질책하기 위해서는 배를 돌려야 하는데 그러면 적들이 기세를 타고 몰려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홀로 닻을 박고 천자·지자 등의 총통과 화살을 빗발치듯 쏘면서 고군분투했다. 그러자 일본 함선들은 더는 진격하지 못하고 관망하는 상황이 됐으며 일순간 소강상태가 전개됐다. 이 틈을 타 이순신은 기(旗)를 이용한 신호를 통해 부하 장수들을 불렀다.
가장 먼저 거제 현령 안위의 배가 당도했다. 이순신은 뱃전에 서서 그를 꾸짖었다. “안위야,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정유년, 9월 16일 일기) 이러고 있는 사이에 미조항 첨사 김응함이 또 당도했다. 마찬가지로 이순신은 그를 준엄하게 질책했다. “너는 중군(中軍)으로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하지 않았으니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당장 처형할 것이로되 적세가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한다.”(정유년, 9월 16일 일기)
이순신은 도망가려 했던 그들이 사지에 있음을 상기시켰다. 처형이라는 위험에 직면한 거제 현령 안위, 중군장 김응함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선 용감하게 돌격해 공을 세우는 길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절대 열세 명량해전 승리 이끌어
이순신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두 장수는 일본의 함선을 향해 곧장 돌격했다. 그리고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다. 이들의 용전분투에 힘입어 조선 수군은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고 결국은 절대 열세의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거제 현령 안위는 이 공로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제수됐다.
적진에 침투해 임무를 수행하는 군(軍)의 여러 특수부대들은 부대 구성원들의 결속력이 남다르다. 위험한 적진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만큼 한마음 한뜻이 되지 않고는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운명 공동체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안위를 위해, 국민을 위해 군의 리더는 때로는 ‘위험에 처하면 한마음이 된다’는 타율적 리더십도 염두에 둬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임원빈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 전 해사 교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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