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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이순신의 리더십 (9) 역사의식을 지녀라
“하늘의 이치 어긴 倭 응징은 하늘의 이치”
2012. 07. 16   00:00 입력 | 2013. 01. 05   08:10 수정

‘정의’라는 보편적 가치 역사속에서도 구현 의지

남해 이락사 전경.
 

남해 이락사 유언비.
 
리더의 삶은 어떤 방식으로든 리더가 속한 사회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리더는 역사에 관통하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통찰력과 실천에의 의지, 이른바 역사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이끄는 조직과 사회에 대해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의 존망(存亡)과 부하들의 생사를 좌우하는 군의 리더는 더더욱 그렇다. 전쟁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명한 대의명분(大義名分)이 있을 때라야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삼국지’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병법의 대가, 정치가로서의 제갈공명을 존경한다. 유비(劉備)를 도와 촉(蜀) 나라의 중흥을 꾀하고 한때는 위(魏)나라의 조조(曹操)를 위기에 몰아넣기도 했지만 결국은 삼국 통일의 위업을 이루는 데 실패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제갈공명이 존경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당시 유비의 촉 나라는 조조의 위나라나 손권의 오(吳)나라에 비해 형편없이 약했으며 삼국을 통일할 가능성이 가장 낮은 나라였다. 그런 상황에서 제갈공명이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에 응해 그와 의기투합한 이유는 촉 나라가 유방(劉邦)이 세운 한(漢)나라 황실을 계승한 정통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촉 나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일이야말로 역사의 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유능한 리더를 넘어 위대한 리더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가 제갈공명과 같은 의리지향적(義理指向的) 역사의식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순신에게 임진왜란, 정유재란은 정의(正義)의 전쟁이었다. 수천 년 동안 조선의 은혜를 입어 온 일본이 아무런 이유 없이 조선을 침략해 백성을 도륙하고 임금이 있는 도성을 침탈하는 행위를 보면서 이순신은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그것은 단 한 척도, 단 한 명도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할 정도로 철저히 응징해 하늘의 이치를 거스른 자들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똑똑히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이순신의 생각을 자료에서 확인해 본다. “왜적이 스스로 흔단을 일으켜 군사를 이끌고 건너와 죄 없는 우리 백성을 죽이고, 또 서울로 쳐들어가 흉악한 짓을 저지른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으므로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의 통분함이 뼛속에 맺혀 이들 왜적과는 같은 하늘 아래서 살지 않기로 맹세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갑오년(1594년) 3월 웅천에서 일본군과 강화 협상을 하고 있던 명나라 관리인 담종인(譚宗仁)의 패문(牌文)을 받고 이순신이 답장으로 보낸 ‘답담도사금토패문(答譚都司禁討牌文)’에 포함된 내용이다. 담종인이 보낸 패문에는, 지금은 강화협상 기간이니 일본군을 공격하지 말고 속히 조선군 진영으로 돌아가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순신은 이 패문을 받고 울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직접 답서를 작성해 담종인의 지시가 왜 부당한지를 조목조목 따졌다. 그리고 심정 같아서는 한 척의 배도 돌아가지 못하게 함으로써 나라의 원수를 갚고 싶지만, 조선을 도우러 온 명나라 관리의 지시이니만큼 일단 따르지 않을 수 없으니 자신을 대신해서 일본군들에게 하늘의 이치[天理]가 무엇인지를 깨우쳐 주기를 부탁했다. 내용을 확인해 본다. “이제 (일본인들이) 강화한다는 것은 실로 속임과 거짓이옵니다. 그러나 대인의 뜻을 감히 어기기 어려워 잠깐 얼마쯤 두고 보려 하옵니다. 또 그대로 우리 임금께 아뢰려 하오니, 대인은 이 뜻을 널리 타이르시어 왜놈들에게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고[逆天]’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順天]’ 도리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면 천만다행이겠습니다.” 이순신에게 있어 임진왜란은 침략자 일본군들을 철저히 응징해 역천(逆天)과 순천(順天)의 도리가 무엇인지를 깨우치게 하기 위한 그야말로 ‘정의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비단 이순신뿐만이 아니었다. 유학적 세계관으로 의식화된 조선의 리더, 지식인들은 보편적으로 의리지향적(義理指向的) 역사의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임진왜란 등 위기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의병(義兵)이 떨쳐 일어나 활약하는 일이 있게 된 것이다.

노량해전 직전 순천에서 해상봉쇄를 당하고 있던 일본의 고니시 유키나가는 조·명 연합 함대 사령관격인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陳璘)에게 뇌물을 보내 회유하려고 했다. 마음이 흔들린 진린이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대를 놓아주려고 하자 이순신은 그를 다그친다. “이 적들은 우리나라에는 이미 한 하늘 밑에서 살 수 없는 원수요 또 명나라에 있어서도 죽여야 할 죄를 지었는데 도독은 도리어 뇌물을 받고 화의를 하려 하오?” 이순신의 논리정연한 질책에 진린도 결국에는 뜻을 함께했다. 이순신과 의기투합한 진린은 뇌물을 받고 고니시 유키나가와의 전투를 회피하고 있던 육지 쪽의 명나라 장수 유정(劉綎)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차라리 순천의 귀신이 될망정 의리상(義理上) 적을 놓아 보낼 수 없다.” 이순신의 설득을 받아들여 침략자 일본군을 응징하는 데 끝까지 최선을 다한 중국 장수 진린 또한 훌륭한 리더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반인륜적이고 패륜적인 침략행위에 대해서는 하늘을 대신해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 그래서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줘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단 한 척도, 단 한 명도 일본으로 돌려보내선 안 된다. 만약 그러지 못하면 일본인들은 대의(大義)를 저버리는 침략행위를 또다시 되풀이할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대를 끝까지 해상 봉쇄하고 나아가 이들을 구원하러 출동한 일본 수군을 남김없이 격파하고자 했던 이유다. 일본군에 대한 상상을 초월하는 이순신의 적개심 바탕에 ‘정의가 승리하는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역사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한 승리를 넘어 ‘정의’라는 보편적 가치가 역사 속에서 구현되기를 바랐던 이순신, 보편적 가치의 구현을 위해 목숨을 담보로 한 이순신, 우리가 그를 위대한 리더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역사의식, 위대한 리더를 꿈꾸는 사람들이 반드시 새겨봐야 할 덕목이 아닐 수 없다.
 

임원빈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  전 해사 교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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