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it.ly/1u3VWP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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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설·은둔설은 장군에 대한 모독”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제14회 학술대회
2012년 04월 25일(수) 10:19 [온양신문]
"거북선은 세계 최초 철갑선이 아니었다"
ⓒ 온양신문
그동안 여러 경로에서 난무했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 대한 각종 이설(異說)과 가설(假說)을 ‘정론(正論)’으로 바로잡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학계는 물론 이순신을 연구하는 전문가들까지 이 문제에 관해 주목하고 있다.
순천향대학교(총장 손풍삼) 이순신연구소(소장 임원빈)는 올해 임진왜란 발발 7주갑을 맞이해‘이순신정론’이라는 주제로 지난 4월 24일 오후 2시부터 아산 현충사 옆에 위치한 충무교육원 강당에서 ‘제14회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임원빈 이순신연구소장은“이순신정론은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을 재조명하는 사업이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문헌적 해석의 입장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순신에 대해 잘못 알려지고 왜곡된 여러가지 이설(異說)에 대해 바로 잡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학술세미나에서 발표된 주제는 ▲해군리더십센터 제장명 교수가 ‘해전횟수, 면사첩, 백의종군’ ▲해군사관학교 이민웅 교수는 ‘출신 배경과 명량해전 철쇄설’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장인 임원빈 교수는 ‘명량해전 승리요인, 이후 조선수군과 일본 수군의 행적 그리고 당파전술’ ▲문화재전문위원인 정진술 위원은 ‘거북선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연기교육청 홍순승 장학관은 ‘전사설·자살설·은둔설’을 발표했다.
이날 제장명 교수는 지난 2004년 방영됐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으로 인해 널리 알려진 이순신 장군의 해전횟수인 ‘23전 23승’은 실체가 없는 가운데 구호만 난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장명 교수는 해전횟수 정립(안)으로 임진왜란 당시 해전을 분류하기 위해서는 ‘어떤 해전을 1회의 해전으로 셈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 해전의 개념에 대한 규정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보고 이를 ‘대표해전’과 ‘세부해전’으로 나누어 분류했다.
이렇게 해서 ‘대표해전’은 조선수군이 모 기지를 한번 출동해서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간 중 전투를 했을 경우 있었던 모든 해전을 모아서 1회로 산정하고 해전명칭을 그 중 가장 의미가 깊은 해전에 포함시켜 분류하는 방안으로 이러한 분류방식을 적용할 경우 이순신 참가해전은 총 17회로 분류했다.
‘세부해전’은 한번 출동해서 있었던 모든 전투를 각 각 1회의 해전으로 산정하는 것으로 이렇게 할 경우 이순신 참가해전의 세부해전은 모두 45회로 꼽았다.
또 ‘백의종군’은 조선시대 형벌의 하나로서 이 형벌은 적어도 과거에 급제한 인물들 이상에게만 적용. 이를 통해 항간에서 이순신의 백의종군 중의 신분을 졸병이라고 규정한 것은 잘못된 인식이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정진술 위원은 거북선이 세계최초의 철갑선이었다는 말은 대대부분 서양에서 언급된 것이라고 밝히고 이순신 장군 자신의 기록에는 거북선의 등에 철첨(鐵尖)을 꽂았다는 말이 있고, 또 그의 조카 이분은 이순신 ‘행록(行錄)’에 거북선의 등에 도추(刀錐)를 꽂았다는 말이 있으며, 후대의 ‘행장(行狀)’과 ‘시장(諡狀)’에는 추도(錐刀)를 꽂았다는 내용이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 위원은 “철갑선의 정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의견이 달라지겠지만, 진정한 철갑선은 19세기 중엽에 유럽과 미국에서 등장했다”면서 “세계사적인 시각으로 군함의 역사를 바라보았을 때, 16세기의 동양에서 목선에 약간의 철판을 가미한 것을 철갑선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필자는 거북선의 철갑선 주장에 대해서 대체로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순신 장군의 전사설·자살설·은둔설을 조명한 홍순승 교육장은 자살설과 은둔설은 둘 다 이순신의 죽음이 비정상적이었다는 의혹을 가지고 고난과 죽음의 위기를 겪어야 했던 민족적 영웅의 비극적인 일생을 주관적인 정서를 개입시켜 묘사한 것이라고 일축하고 특히 충분한 설득력을 얻기에는 이론적인 근거 제시나 실증적인 자료의 뒷받침이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홍순승 교육장은 “이순신이 죽은 지 420년이 지난 지금 우리 민족사의 유일무이한 성웅의 죽음을 가지고 확실한 증거도 없이 비약적인 상상이나 구구한 억측으로 자살이니 은둔이니 하는 것은 아무런 소득이 없고 그의 값진 죽음에 모독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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