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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왕국을 찾아서 .4]우산국
면적은 小國 역사는 大國 "그 누가 우겨도 대~한민국"
현포리…선사시대 주민 집단거주지로 추정되는 '도읍지'
남양리…비파산 일대 자연 방어선 '천혜의 전략적 요충지'
울릉=정용태기자 임호기자 2007-04-12 08:01:35
고대 선사시대 우산국의 도읍지로 추정되는 울릉군 북면 현포리 전경. 취나물 밭에는 돌을 쌓아 만든 고분 40여기가 흩어져 있다.
◇ 우산국이란
다른 고대왕국과 마찬가지로 울릉도와 독도를 장악했던 우산국의 역사적 자료는 많지 않다. 다만 울릉군 북면 현포리와 서면 남양리 일대가 선사시대부터 멸망 직전까지 우산국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우산국의 역사는 대략 기원전 4세기경부터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한 512년까지 천년정도로 추정된다. 다른 왕국과는 달리 오랜 역사를 간직할 수 있었던 데에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내용도 삼국유사에 간단히 남겨져 있다. '동쪽 바다에 순풍(順風)으로 이틀 걸리는 곳에 우릉도(지금의 울릉도)가 있고, 섬의 둘레는 2만6천730보(步)이다. 이 섬에 사는 오랑캐들은 그 바닷물이 깊은 것을 믿고 몹시 교만해 조공을 바쳐 오지 않았다. 신라 지증왕은 이사부에게 명해 우산국을 정벌하도록 했다. 이에 이사부는 나무로 만든 사자(獅子)를 배에 싣고 가 "너희가 만일 항복하지 않으면 이 짐승을 놓아 버리겠다"고 위협했고, 두려움을 느낀 오랑캐들이 항복했다'고 전한다.
2000년 6월 영남대 박물관 조사단은 울릉군 북면 현포리의 고대 도읍지로 추정되던 지역을 조사했다. 그 결과 곡식을 갈아 먹던 갈돌, 갈판 등 선사시대 유물이 무더기로 출토되면서 전설로만 남아있던 해상왕국 우산국의 실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울릉도와 독도는 선사시대부터 한반도의 역사와 그 맥을 함께 해왔다.
우산국 도읍지 현포리
잊어진 천년 해상왕국, 그 비밀의 문을 열기 위해 울릉도 도동항에서 해안일주도로를 따라 30㎞ 떨어진 현포리 고분군에 도착했다.
현포리 고분군 일대는 철기시대(기원전 300년) 전후의 고대 선사시대 우산국 주민들의 집단거주지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그러나 취나물을 재배하는 밭 여기저기에 40여기의 돌무더기(고분)가 흩어져 있어, 이곳이 기원전 우산국의 도읍지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더욱이 고분군 주변에는 사람의 접근을 막을 수 있는 울타리가 설치돼 있지 않고, '현포리 고분군'이라는 푯말만이 덩그러니 서 있다.
우산국의 고분은 횡구식 석실묘 형태로 만들어졌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울릉도 고분은 한반도에서 발견된 다른 고분과 달리 돌로 쌓은 적석묘다. 땅이 좁고, 흙이 귀한 환경적 요인이 만들어낸 우산국만의 독특한 고분형식이다.
고분군에서 500m 떨어진 곳엔 너비 7m의 선사시대 유적인 고인돌도 위치해 있다. 또 현포리 고분군을 중심으로 절터가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1.5m 높이의 돌기둥 4개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금동불상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된 사실만으로도 고대왕국의 도읍지라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
천혜의 전략 요충지
다시 차를 돌려 현포리에서 울릉읍 방향으로 20분 정도 가자 울릉도 주민들이 몽돌해수욕장이라고 부르는 아름다운 해안이 나타난다.
몽돌해수욕장에서 직선거리로 500m 떨어진 곳은 비파산. 울릉도 주민들은 서면 남양리 일대가 기원후 우산국의 도읍지라고 말한다.
이곳은 해상교통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산세가 험준한 비파산이 버티고 있어, 외부로부터의 침략을 막을 수 있는 자연적인 방어선이 형성된다.
실제 비파산에 올라보면 투구바위가 시선 아래 있고, 그 너머는 동해의 푸른 바다, 돌아보면 태하령, 사방은 산이 성처럼 둘러싸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울릉군 서면 남양리 일대는 천혜의 전략적 요충지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우산국이 신라 지증왕 13년 이사부와의 전쟁을 벌인 격전지이기도 하다.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우산국은 면적이 사방 100리에 불과하지만 지세가 험난하고, 사람들이 용맹해 하아슬라주(지금의 강릉) 군주인 이사부가 나무로 만든 사자모형으로 우산국 주민들을 위협해 복종시켰다고 한다.
고분에서 출토된 동관의 금속파편과 금동장신구.
남서리 횡혈식석실 고분
고분에서 출토된 동관의 금속파편과 금동장신구.
비파산에서 나리분지 방향으로 험한 산길을 600m 정도 올라가면 38기의 고분이 모여있는 '남서리 고분군'이 나타난다.
비파산 일대는 우산국과 신라가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란 것을 증명하듯 투구바위와 사자바위 등 다양한 설화가 담긴 유적이 있다.
그러나 울릉도 전역에서 발견된 100여기의 고분 중 상당수가 관심부족과 관리 소홀, 도굴 등으로 그 흔적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승진 독도박물관장은 "우산국의 기원을 증명할 울릉도의 유적· 유물은 앞으로 정밀한 조사와 발굴을 통해 심층적인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통해 울릉도에 3세기경 이미 사람이 살고 있었음은 물론, 어디서 와서 정착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궁금증이 풀어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공동기획:영남일보·영천시·경북고도읍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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