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it.ly/1p8igA1 , http://blog.daum.net/kkt1594/16144048
[잃어버린 왕국을 찾아서 10 끝] 음즙벌국과 小國들
전설 따라 숨결 좇아 찾아 본 그곳. 피고 지고 사라져 핏줄에 남은 왕국.
사로국의 주변 소국 합병 촉매제 역할. 삼국사기外 발견된 기록·유물은 없어
경주 안강~동해안 일대 음즙벌국。
대구 장악했던 달구벌국。
변진 國 중 성주·고령의 반로국。
포항 북구 흥해읍 다벌국。
글·사진= 임호기자 tiger35@yeongnam.com 2007-05-25 07:46:44AD 102년 8월. 음즙벌국과 실직곡국의 영토분쟁이 발생하자 두 나라는 사로국의 파사이사금 왕에게 판결을 요청했다. 왕이 난처히 여겨 '금관국 수로왕이 연로해 아는 것이 많다'고 불러 물었다. 이에 수로왕이 음즙벌국의 영토라고 하자 이사금이 6부에 명해 수로왕을 위한 향연을 베풀도록 했다. 그러나 한기부만이 지위가 낮은 이가 접대하니, 수로왕이 노하여 종인 탐하리를 시켜, 한기부주 보제를 죽이고 돌아갔다. 탐하리는 달아나 음즙벌국 타추간의 집에 숨었다. 이사금이 사람을 시켜 그 종을 찾았으나, 타추가 보내지 않자 군사를 보내 음즙벌국을 멸했다. 이 소식을 들은 실직과 압독 두 나라 왕은 두려움을 느껴 사로국에 항복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경주시 안강읍 어래산 등산로 중턱에 위치한 높이 5m, 둘레 10m의 고인돌
경주시 안강읍 어래산 등산로 중턱에 위치한 높이 5m, 둘레 10m의 고인돌
음즙벌국은 BC 3∼2세기 이후 경주 안강과 동해안 일대에 형성된 소국으로 추측된다. 별다른 기록이나 유적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음즙벌국의 멸망은 사로국이 동해안 진출뿐만 아니라 경북지역 소국들을 합병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음즐벌국 영역도
음즐벌국 영역도
경주시 안강읍 어래산(해발 572m) 정상에서 내려다 보면 안강들과 안강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2천년전 농경사회의 읍락국가를 형성했던 음즙벌국의 곡창지가 아니었을까. 지금도 안강들은 경북 3대 미곡산지 중 하나이며, 경주지역 제일의 쌀 주산지다.
현재 경주시에 속해 있는 고인돌 분포 상황을 보면 안강·강동지역의 60여기와 옛 영일군 내의 200여기가 확인된 바 있다. 이처럼 형산강 유역에 분포한 고인돌 축조집단의 성격에 관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기계천 유역의 인비리와 곡강천 하류인 흥해 칠포리에 위치한 고인돌의 개석에 새겨진 일종의 암각화가 음즙벌국이 고대도시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경주시 안강읍 노당1리 주택가에 고인돌 2기가 놓여 있다. 주민들은 노당리 일대에 10여개의 고인돌과 수십개의 고분이 있어 삼한시대 음즙벌국이 실존했을 것으로 믿고 있다.
경주시 안강읍 노당1리 주택가에 고인돌 2기가 놓여 있다. 주민들은 노당리 일대에 10여개의 고인돌과 수십개의 고분이 있어 삼한시대 음즙벌국이 실존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음즙벌국의 흔적을 찾아 안강 일대를 돌아다녔지만 가슴만 답답할 뿐이었다. 수소문 끝에 고인돌이 많이 분포해 있다는 안강읍 노당1리를 찾았다. 이 마을 주민 유병욱씨(64)의 안내를 받아 주택에 남아 있는 3기의 고인돌을 볼 수 있었다. 이중 제일 큰 것은 높이 1.8m, 둘레 5m정도의 고인돌이었다. 유씨의 안내로 어래산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던 중 2기의 고인돌을 발견했다. 그러나 등산로를 20여분 더 오르자 중턱에 거대한 사각형의 고인돌 2기가 더 있었다. 높이 5m, 둘레는 10m 넘어 보였다. 고인돌 아래에는 굄돌 4개가 고인돌을 받들고 있었고, 그 아래에는 어른 서너명이 누워도 넉넉할 정도의 공간이 있다. 유씨는 이 산뿐만 아니라 이 일대에 고인돌과 고분군이 많다고 설명했다.
현재 안강읍 양월리 창마을과 구강마을 사이에 높이 2∼5m, 길이 1.5㎞규모의 토성 흔적이 있으나 음즙벌국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장병화 안강문화원장도 "삼국사기를 제외하면 음즙벌국에 대한 기록이나 유물이 없고, 학술적 조사나 연구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하루 빨리 안강지역의 고인돌과 고분군을 발굴해 음즙벌국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름만 남아 있는 소국들
경북도내에는 기원전 형성되었다가 신라에 의해 복속되거나 멸망해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소국들이 적지 않다.
대구지역을 장악했던 달구벌국은 대구 중구 달성동 달성공원 일대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게 역사학계의 중론이다. 달성은 200∼300년대 쌓은 삼한시대 토성이다. 1968년 경북대박물관이 달성공원 입구에서 남쪽 약 150m 지점의 바깥쪽 성벽 일부를 조사한 결과, 기원전에 사용된 회흑(灰黑)색 와질(瓦質)토기와 초기 철기시대 조개더미, 나무 울타리(木柵) 등이 출토됐다.
삼한시대 변진 12국중 하나인 반로국은 위치가 성주와 고령군 일대로 추정된다. 일본학자는 반로국의 노(路)자를 피(跛)의 오자(誤字)로 보고 반피국(半跛國)이라고 주장한다. 변한연맹체의 일원으로서 맹주국과의 결속관계를 성립하고, 토착적인 세력기반을 유지하면서 6세기 이후까지 개별적인 성장을 하다가 신라에 멸망당했다. 대가야가 형성되기 전 읍락국가 형태를 띤 것이 바로 반로국이다.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 위치한 다벌국은 AD 108년 파사 이사금에 의해 비지국(경남 창원), 초팔국(경남 합천)과 함께 사로국에 복속됐다는 기록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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