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독립전쟁 
 
1) 3·1운동 후 독립군무장투쟁의 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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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한국의 국권을 빼앗아 간 후, 한국민족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국경 부근의 만주(滿洲) 등지에 독립군기지를 건설하고 독립군을 창건하여 독립전쟁을 전개하려는 전략을 세운 독립운동 단체는 구한말의 신민회(新民會)였다. 신민회의 독립전쟁전략 채택과 국외 독립군기지 창건운동에 따라, 신민회 회원들은 1910년부터 만주와 노령 연해주로 망명하여 독립군 창설의 근거지로서 무관학교 설립을 중심으로 한 독립군기지 창건운동을 정력적으로 전개하였다.
 
그 결과 신민회 회원들은 1911년 만주의 펑톈/봉천성(奉天省) 뤼허/유하현(柳河县/縣) 산위엔바오/삼원보(三源堡)에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 처음 이름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를 설립하고, 뒤이어 1913년에 지린/길림성(吉林省) 왕칭/왕청현(汪淸县/縣) 루오즈고우/나자구(罗子沟/羅子溝) 다뎬즈/대전자(大甸子)에 동림무관학교(東林武官學校)와 미샨/밀산현(密山县/縣) 펑미샨즈/봉밀산자(蜂蜜山子)에 밀산무관학교(密山武官學校)를 설립하는 데 성공하였다.註 001
 
그러나 이러한 무관학교들은 처음에는 재정궁핍과 사관생도 및 병사들의 모집이 어려워 졸업생을 배출한 경우에도 독립군다운 독립군부대를 편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러한 무관학교들에 의하여 3·1운동 이전에 독립군장교들을 다수 양성해 놓고, 무장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지만 독립군단체를 준비해 놓고 있었기 때문에 3·1운동 직후 상황이 변하자 일시에 수많은 독립군 부대들 을 창설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고 간도(間島)와 노령 연해주 지방에도 3·1운동이 파급되자 상황은 급변하였다. 독립운동의 기세와 독립운동의 역량은 그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비약적으로 성장하였고, 간도·연해주 지방에서는 무엇보다도 무장투쟁의 기세가 고조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조건의 변화 속에서 이전에 양성해 놓은 무관학교 졸업생들과 구(舊) 의병들과 간도·연해주 지방 한국민족의 청소년들과 국내에서 밀려 온 청소년들을 규합하고, 한국인 교민단체들의 적극적 재정지원에 힘입어, 3·1운동 후에는 우후죽순격으로 다수의 독립군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조직되기 시작하였다.
 
1920년 말경까지 조직된 독립군 단체들의 이름을 들면, 
북간도 지방의 
①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② 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 
③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④ 국민회군(國民會軍) 
⑤ 의군부(義軍府 ; 의군단/義軍團) 
⑥ 대한정의군정사(大韓正義軍政司) 
⑦ 한민회군(韓民會軍) 
⑧ 조선독립군(朝鮮獨立軍) 
⑨ 의단(義團) 
⑩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 
⑪ 광복단(光復團 ; 광복회/光復會) 
⑫ 의민단(義民團) 
⑬ 흥업단(興業團) 
⑭ 신민단(新民團) 
⑮ 광정단(匡正團 ; 光正團) 
⑯ 야단(野團) 
⑰ 혼한군무부(渾韓軍務部) 
⑱ 국민의사부(國民議事部) 
⑲ 대진단(大震團) 
⑳ 백산무사단(白山武士團) 
㉑ 혈성단(血誠團) 
㉒ 태극단(太極團) 
㉓ 노농회(勞農會) 
㉔ 광영단(光榮團)……등과, 
 
서간도 지방의 
㉕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㉖ 신흥학우단(新興學友團) 
㉗ 광한단(光韓團) 
㉘ 대한독립의용단(大韓獨立義勇團) 
㉙ 대한독립청년연합회(大韓獨立靑年聯合會) 
㉚ 광복군사령부(光復軍司令部) 
㉛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 
㉜ 천마산대(天麻山隊) 
㉝ 보합단(普合團) 
㉞ 의성단(義成團)……등과, 
 
노령 지방의 
㉟ 대한독립군결사대(大韓獨立軍決死,隊) 
㊱ 대한신민단(大韓新民團) 
㊲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등 30 여 개 단체에 달하였다.
 
이러한 독립군단체들은 그 숫자는 많고 무장투쟁의 의욕도 높았으나, 반드시 잘 무장되어 있거나 군사훈련을 잘 받은 병사들로 조직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독립군단체들 중에서 비교적 잘 무장되어 있고 전투능력이 큰 독립군단체들은 한국민족 교민단체들에 의하여 재정적으로 잘 뒷받침되고 있던 독립군부대들이었다.
 
3·1운동 후에 급속히 성장한 국외 독립군부대들은, 1919년 8월 홍범도(洪範圖)가 인솔하는 대한독립군이 선도하여 독립운동가들의 오랜 꿈의 하나였던 국내진입작전을 대담하게 감행하기 시작하였다. 대한독립군은 1919년 8월 두만강(豆滿江)을 건너 함경남도 혜산진(惠山鎭) 세 진공을 감행하여 일본군수비대를 습격해서 섬멸하고註 002 3·1운동 후 처음으로 국내진입작전을 단행했으며, 1919년 9월에는 함경남도 갑산군(甲山郡)에 진입하여 금정주재소(金井駐在所) 등 일제식민지 통치기관을 습격했고, 1919년 10월에는 평안북도 강계(江界)의 만포진(滿浦鎭)에 진입하여 이를 점령하고 자성군(慈城郡)으로 진출하여 일본군과 교전해서 일본군 70여 명을 살상시키고 일본군을 패주시켰다.註 003 이에 크게 고무된 여러 독립군 부대들이 이듬해부터는 실력과 기회만 있으면 끊임없이 크고 작은 국내진입유격전을 감행하였다.註 004
 
일본군측 자료에 의하면, 1920년 1월부터 3월까지의 3개월 동안에 독립군부대들의 국내진공이 24회에 달하였다.註 005 상해 임시정부의 통계에 의하면, 1920년 3월 1일부터 6월 초까지 독립군부대들의 국내진입 유격전이 32회에 달했으며, 일제관공서와 경찰관주재소를 파괴한 것이 34개소에 달하였다.註 006
 
1920년 3월 15일부터 3월 27일까지 13일 동안의 사례만 보아도, 독립군부대들이 8회나 국내에 진입하여 일본군수비대를 습격해서 섬멸하였다.註 007 특히 1920년 3월 18일 새벽 6시에 한 독립군부대가 함경북도 온성(穩城)의 일제 미산(美山) 헌병주재소를 습격하여 섬멸한 것은 일본군에게 상당히 큰 충격을 주었다.註 008
 
이와 같이 1920년에 들어서면서부터 만주의 한국민족 독립군부대들의 국내진입 무장활동이 매우 활발하게 되었으며, 국경선 일대에 배치된 일본군수비대가 수세(守勢)에 몰리었고, 한국 독립군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 통치를 무장투쟁으로 크게 위협하기 시작하였다.
 
 
 
 
 
註 001  신용하(愼鏞廈),「신민회(新民會)의 창건(創建)과 그 국권회복운동(國權恢復運動)」(상/上·하/下), 『한국학보(韓國學報)』 제8·9집(일지사/一志社, 1977) ; 신용하(愼鏞廈) 「신민회(新民會)의 독립군기지(獨立軍基地) 창건운동(創建運動)」,『한국문화(韓國文化)」 제4집(1983) 참조.
 
註 002 애국동지원호회 편(愛國同志援護會編),『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史)』(1956), p. 305 참조.
 
註 003  「조선민족운동연감(朝鮮民族運動年鑑)」, 1919年 10월(月) 24일조(日條), 김정명 편(金正明編), 『조선독립운동(朝鮮獨立運動)』Ⅱ(도쿄/東京 : 하라쇼보/原書房, 1976), p. 208 참조
 
註 004  신용하(愼鏞廈),「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의 항일무장투쟁(抗日武裝鬪爭)」, 『한국학보(韓國學報)』제43집(1986) 참조.
 
註 005 「대안불령선인의 강안침입정황일람표(對岸不逞鮮人ノ江岸侵入情況一覽表)」(1920년/年 1월부터3월까지/自1月 至3月), 1920년(年) 3월(月) 29일자(日字), 강덕상 편(姜德相編),『현대사자료(現代史資料)』27(도쿄/東京 : 미스즈서방/みすず書房, 1977), pp. 647~648 참조.
 
註 006  『독립신문(獨立新聞)』(제88호/第88호號), 1920년(年) 12월(月) 25일자(日字),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군무부 발표(大韓民國臨時政府軍務部 發表),「북간도(北墾島)에 재(在)한 아독립군(我獨立軍)의 전투정보(戰鬪情報)」참조.
 
註 007  국사편찬위원회 편(國史編纂委員會編),『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史)』삼(三) (1973), 함경북도지사보고(咸鏡北道知事報告), 고경(高警) 제(第)12537호(號),「은성지방침습(穩城地方侵襲)에 관(關)한 상보(詳報)」, pp.712~716 참조.
* 상보(詳報) : 자세한 보도
 
註 008  「불령선인단국경헌병감시소내습상황의 건보고(不逞鮮人團國境憲兵監視所來襲狀況ノ件報告)」조헌경기(朝憲警機) 제(第)560호(號), 1920년(年) 4월(月) 10일자(日字), 강덕상 편(姜德相編), 앞 책, pp. 619~624 참조.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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