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joongboo.com/news/articleView.html?idxno=393140  (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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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 때 축조..수.당 침략 가로막은 고구려 내륙 거점

역사의 숨결어린 요동- 고구려 유적 답사기행<44>

중부일보 2010.12.20  남도일보 2012.11.07 19:04

 

<평양으로 가는 관문 오골성 1>

봉황산에 위치…수·당 침략막은 고구려 전략 거점

웅장한 산봉우리·험준한 산세·기암괴석 등 명승지 



고구려와 수·당 두 나라 사이의 전쟁을 기록한 역사자료에 오골성(烏骨城)이란 산성이 여러 차례 언급되어 있다. 옛날 수나라와 당나라 군대가 요하강을 건너 요동평원을 지나 천산산맥을 넘을 때, 압록강과 평양성으로 향하는 전진로를 가로막고 있던 산성이 바로 고구려의 중요한 전략거점이자 내륙 근거지인 오골성이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요동을 차지한 후에 축조된 이 산성은 그 규모가 요동뿐만 아니라 현재 중국 전 지역에서도 제일 크다. 오골성은 중국 남북조시기에 웅산성(熊山城)으로 불렸고, 요나라 때에는 산음성(山蔭城)이라고도 불렀다. 당나라 때 봉황산산성이라 개칭한 이 산성은 현재 단동(丹東)시에서 서북쪽으로 6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오골성을 품은 봉황산풍경구 


오골성은 단동시에서 관할하는 봉성시(현급 시) 동남쪽 3km 지점에 위치한 봉황산에 자리 잡고 있다. 수천 리 뻗어 나온 장백산맥과 이어진 봉황산은 면적이 216여k㎡며 주봉 전운봉(鑽雲峰)은 해발 836.4m다. 오래전부터 천산(千山), 의무려산(醫巫閭山), 약산(藥山)과 함께 요령의 4대 명산으로 이름난 봉황산은 현재 국가급 풍경구로 지정되어 있다.

 

봉황산은 그 주봉의 모양이 ‘봉황새가 머리를 쳐든 듯하고 양쪽의 봉우리가 날개를 펼친 것 같다’ 하여 그렇게 이름 지었다. 봉황산은 웅장한 산봉우리, 험준한 산세, 천태만상의 기암괴석, 깊숙한 계곡, 기이한 동굴, 맑은 개울과 폭포, 무성한 산림, 아름다운 들꽃과 단풍, 몇 백 년 된 고대 사찰, 유서 깊은 암벽석각 등 자연풍광과 인문경관, 역사유적들로 유명한 관광명승지다. 이곳의 경치는 그야말로 중국의 명산 ‘태산(泰山)처럼 웅장하고 화산(華山)처럼 험준하며 여산(慮山)처럼 그윽하고 아미산(峨眉山)처럼 아름답다’고 할 정도다.



봉황산풍경구는 서산(西山), 동산(東山), 묘구(廟溝), 고성(古城) 등 4대 풍경구역으로 나눈다. 고성은 고구려의 옛 성 오골성을 말하는 것이고, 묘구는 절이 많은 골짜기 절골을 말하는 것이며, 동산은 오골성 동벽이 있는 옛날의 고려산을 가리키는 것이고, 서산은 주봉 찬운봉, 제2고봉 전안봉(箭眼峰·해발 822m), 제3고봉 신마봉(神馬峰·해발 814m) 등이 이어져 있는 봉황산을 일컫는다. 이 4구역 중 서산에 경물이 가장 많고 산세도 가장 험하다. 산중턱 자양관(紫陽觀; 이곳까지 승용차가 올라갈 수 있음)에서 서산 정상에 올라가려면 중로, 동로, 서로 등 3갈래의 등산로가 있다. 그중 중간길(中路)은 두모궁(斗母宮), 벽하궁(碧霞宮), 관음동(觀音洞), 봉황동(鳳凰洞), 잠낭조(蠶娘祚), 봉루(鳳淚), 영선동(靈仙洞), 납조련리(臘祚連理) 등 주요 경물을 지나 나한봉(羅漢峰)을 거쳐 전안(箭眼)에 이르며, 동쪽길(東路)은 조진교(朝眞橋), 삼교당(三敎堂), 일품동천(一品洞天), 송경대(誦經臺), 관음각(觀音閣), 취선대(聚仙臺), 쌍용배(雙龍背), 선인좌(仙人座) 등 주요 경물을 거쳐 봉화대(烽火臺)에 이른 후 서쪽으로 전안봉에 도착하며, 서쪽길(西路)로는 두모궁(斗母宮)을 거쳐 쿠빌라이탑(忽必烈塔), 열석송(裂石松), 점장대(點將臺), 용동(甬洞), 봉무송(鳳舞松) 등 주요 경물을 지나 장군봉(將軍峰)에 이른 후 전안봉에 도착할 수 있다. 나한봉에서 전안봉으로 가는 길에서는 선인과(仙人過), 봉무송, 장군봉, 토이봉(兎耳峰), 삼낭망부(參娘望夫), 삼낭동(參娘洞), 첩취봉(疊翠峰), 자매송(姉妹松), 노우배(老牛背), 백보긴(百步緊), 삼운대(三雲臺), 천하절(天下絶) 등 경물을 구경할 수 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괴석릉공(怪石凌空), 기반정(棋盤頂), 신성영귀(神聖靈龜), 통천교(通天橋), 회봉구(匯峰口) 등 주요 경물을 계속하여 구경하고 진운봉(進雲峰)에 이른 후 하산할 수도 있다.


봉황산은 등반을 목적으로 하는 등산객과 산악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왜냐하면 주변의 비교적 낮은 구릉지에 해발 800m가 넘는 산봉우리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날카롭게 우뚝 솟아있는 이 산은 우람한 거석과 웅장한 암벽으로 험준한 산세를 이루고 있어 담력과 의지력을 도전하는 산악등반의 적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등산객들은 이 산 저 산을 오르고 내리는데 힘겨워 땀을 흘리는가 하면 가파른 봉우리를 넘고 아름찬 암벽을 돌며 무시무시한 동굴로 들어가 화살로 뚫었다는 구멍으로 나오는 순간순간의 아찔한 광경에 놀라 싸늘하게 식은땀도 흘러야 한다.


가장 위험한 코스는 망부석과 첩취봉을 거쳐 노우배를 타고 지나는 것이다. 노우배는 길이가 40m고, 너비가 10~30cm 되는 소 등과 같은 좁고 번번한 산등성이다. 이 산등성이는 산 정상으로 가는 과정에서 필히 넘어야 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현재 여기에 쇠 난간이 설치되어 넘어가는 것이 큰 문제 될 것은 없지만 1980년대만 하더라도 이곳에는 아무런 안전시설도 없었으므로 짐승처럼 엎드려서 네발걸음을 하며 천천히 조심스레 기어 넘어야 했다. 그 당시 노우배를 보기만 해도 질겁하며 물러서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노우배를 비롯한 몇 개의 ‘고비’를 넘어 산 정상에 이르면 까마득한 산 아래 아물거리는 사람들, 아득하게 사방으로 뻗어나간 도로와 그 위에서 마치 벌레인양 꿈틀거리고 있는 차량들, 창공에 유유히 떠돌아다니는 흰 뭉게구름, 그리고 주변 백리산천의 들녘과 마을… 기막힌 경관이 천상에서 인간세상을 굽어보는 듯한 황홀한 느낌을 자아낸다.



봉황산은 험준한 산악으로 손꼽힐 뿐만 아니라 기암괴석과 아름다운 경치로도 이름을 날린다. 봉황산에 금두꺼비가 달을 쳐다보는 듯한 금섬망월(金蟾望月), 금거북이 봉황새에게 구애하는 듯한 금귀구봉(金龜求鳳), 인삼아낙네가 남편을 바라고 있는 것 같은 삼낭망부(蔘娘望夫) 등 돌 바위가 있는가 하면 산위 암석에 얹혀 허공에 떠있는 듯한 비래석(飛來石), 두루미가 벼랑 벽에 붙어있는 듯한 석벽학영(石壁鶴影) 등 기이한 자연석도 많이 있다. 봉황산의 경치는 계절 따라 변한다. 여기에 중점 경관만 하더라도 100곳이 넘는다. 그중에 동지영주(東地瀛洲), 첩장류운(疊障留雲), 천지재망(天池在望), 창송저월(蒼松佇月), 간수비도(澗水飛濤), 석붕피서(石棚避暑), 운산보해(云山鋪海), 송경심추(松徑尋秋) 등 경관이 풍경구 내 ‘10대 아름다운 자연 경치’로 꼽힌다.


종교 분위기가 짙은 것은 봉황산의 또 하나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산속에 사찰건축물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 500여년 역사를 지닌 사찰이 두 개나 된다. 하나는 봉황산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조양사(朝陽寺)인데 명나라 교종홍치 초년(明敎宗弘治初年·1488년)에 건설하였다. 원래 대안사(大安寺)라고 불렀는데 몇 차례의 중수와 확장을 거쳐 현재 이름으로 개칭하였다. 전각 안에 여래부처와 관세음, 미륵 등 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다른 하나는 자양관(紫陽觀)이다. 자양관에는 삼궁전(三宮殿), 충현전(忠賢殿), 자인전(慈仁殿), 순양전(純陽殿), 두모궁(斗母宮), 벽하궁(碧霞宮) 등 사찰건축물들이 무리지어 있다. 그 안에 모시고 있는 것은 천(天), 지(地), 수(水) 삼관(三官) 요(堯), 순(舜), 우(禹) 세 임금이 있는가 하면 도교의 여신(女神) 두모(斗母)와 여덟 신선(八仙) 중 하나인 여동빈(呂洞賓)도 있다. 이밖에 산속에는 또 천수관음(千手觀音)을 모시는 관음각 등 다른 사찰들도 있다. 이런 유명한 사찰들이 제각기 법사(法事)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으므로 1년 내내 신도와 향객(香客)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장광섭/중국문화전문기자  윤재윤/요령조선문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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