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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왕
주석
문주왕
백제의 22대 국왕
재위 : 475년 ~ 477년
문주왕(文周王, ? ~ 477년, 재위: 475년 ~ 477년)은 백제의 제22대 국왕이다. 문주(汶洲), 문원왕(文園王), 문연왕(文淵王) 또는 문연왕(汶淵王)이라고도 하며 개로왕의 아들이다. 일본서기 유랴쿠기(雄略紀)에는 개로왕의 모제(母弟, 동생)로 기록되어 있다. 이름은 남제서(南齊書) 백제전과, 양서(梁書)에서는 모도(牟都)로 기록되어있고, 송서(宋書) 백제전에는 여도(餘都)로 기록되었다. 즉위 전에, 부왕(父王) 개로왕을 도와 상좌평(上佐平)을 지냈다.[1]
생애
문주왕의 성격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성품이 부드러워 결단력이 부족하였으나 백성을 사랑하였고 백성 또한 그를 사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2] 개로왕의 태자가 되었으며, 즉위하기 직전에는 부왕 개로왕으로부터 상좌평에 임명되어 정사에 참여하였다.
475년 고구려가 군사를 일으켜 한성을 공격하자 문주는 개로왕의 명을 받아서 신라에 가서 원병을 요청하였다. 군사 1만명과 함께 돌아와 고구려의 군대가 물러갔으나, 수도 한성이 파괴되었다. 일설에는 개로왕이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문주왕을 피신시킨 것이라는 설도 있다. 개로왕이 죽자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475년 음력 10월, 수도를 한성에서 웅진으로 옮겼다. 476년 여름 4월, 탐라국에서 토산물을 바쳐오자 왕이 기뻐하여, 그 탐라국 사신을 보답으로 은솔(恩率)[3]로 임명하였다. 탐라왕에게 백제의 높은 벼슬인 좌평(佐平)[4]으로 임명하였다.
부여족 계통의 지배세력들은 남쪽의 마한 세력에게 도전을 받고 귀족 통제에 실패한 문주왕은 결국에는 477년 당시 정권을 장악했던 병권좌평 해구의 쿠데타에 의해 처형을 당했다. 그의 뒤는 왕족들의 추대를 받은 아들 삼근왕이 무난히 계승하였다.
가계
부왕 혹은 형 : 개로왕
왕후 : 왕후 곽씨(王后 郭氏)
장남 : 삼근왕
동생 : 곤지, 동성왕, 무령왕의 아버지
주석
[1] 백제에서 내신좌평이나 상좌평에 임명된 왕족들은 전부 왕의 동생이었던 것으로 보아, 개로왕의 동생이라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한 듯 하다.
[2] 性柔不斷 而亦愛民 百姓愛之, 《삼국사기》권26.
[3] 삼국사기/106문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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