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chosun.com/national/news/200510/200510170356.html

아! 고구려… 1300년전 唐나라에 끌려간 망국의 원혼들
연개소문 장남·후손 무덤 찾았다 
뤄양(洛陽) 들판에 나란히… 吉林 역사학誌 발표 
姓도 '천(泉)'으로 바꿔… 唐고조 이름과 같은 탓
시안(西安)서 찾은 보장王 무덤은 개발로 없어져
입력 : 2005.10.17 18:44 03' / 수정 : 2005.10.18 07:52 57' 신형준기자 hjshin@chosun.com  

▲ 연개소문 상상도

연개소문(淵蓋蘇文·?~665년)의 아들 등 직계 후손의 무덤이 중국 뤄양(洛陽)에서 1300여년 만에 확인됐다. 연개소문의 맏아들로 고구려 멸망 직전 막리지(莫離支·왕 다음의 최고실권자)를 지낸 천남생(泉男生·634~679)과 그의 동생(연개소문의 셋째 아들) 천남산(泉男産·639~701), 천남생의 둘째 아들 헌성(650~692), 연개소문의 고손자 비(毖·708~729)의 무덤이다. 고구려 마지막 왕인 보장왕(寶臧王·재위 642~668)의 무덤도 시안(西安)에서 위치를 찾았지만 이미 개발로 인해 없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은 중국 지린(吉林)성 사회과학원이 발행하는 고고·역사학 계간지 ‘둥베이스디(東北史地)’ 최근호에서 밝혀졌다. ‘둥베이스디’는 “올 4~6월 조사·발굴을 벌인 결과, 이들의 무덤을 뤄양시 링터우춘 등에서 찾았다”고 발표했다.
 


천남생과 천헌성, 천비의 무덤은 링터우춘에 나란히 있었고 천남산의 묘는 이곳으로부터 서남쪽으로 4㎞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둥베이스디’는 밝혔다. 무덤은 원형으로, 크기는 직경 16m, 높이 6m 정도였으며, 고구려 기와와 당삼채(唐三彩·다채로운 색깔로 칠한 당나라 도기) 등이 출토됐다.

‘둥베이스디’는 “1922년과 1926년 뤄양에서 이들 묘의 지석이 출토됐지만, 출토 정황이 명확하지 않아 무덤 위치는 알지 못했다”며 “그러나 지석 출토 당시, 고궁박물원 직원 궈위탕(郭玉堂·1888~1957)이 출토지점과 유물 등을 기록한 ‘뤄양출토석각시지기(洛陽出土石刻時地記)’가 지난 4월 출간되면서 이를 바탕으로 발굴·조사 활동을 벌였다”고 밝혔다.

천남생은 연개소문 사망 뒤 막리지에 올랐지만, 동생인 남건(男建·생몰년 미상)·남산이 반란을 일으키자 당으로 피신해 고구려 침공에 앞장섰다. 이로 인해 당에서 ‘우위대장군(右衛大將軍)’ 등에 올랐다. 연개소문의 둘째 아들이자 고구려 최후의 막리지 남건은 당과 끝까지 싸워 유배를 당하지만, 막내 남산은 당에 항복해 역시 관직을 받았다.


▲ 1300여 년 만에 찾은 연개소문 후손의 무덤. 왼쪽부터 천비(연개소문의 고손자) 천남생(맏아들), 천헌성(손자)의 무덤이다. 연개소문의 맏아들로 막리지였던 천남생은 친동생인 천남산 등과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뒤 당나라군과 함께 고구려를 치는 선봉장에 선다. 동북사지

이들의 성이 연(淵)에서 천씨로 바뀐 것은 당 고조(高祖) 이연(李淵·재위 618~626)의 이름(淵)을 피하 기 위해, ‘못’(淵)의 의미를 지닌 ‘천’(泉)자를 택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660년)와 고구려(668년)의 멸망으로 의자왕(義慈王·백제)과 보장왕(고구려) 등 양국의 왕과 지배층이 대거 당으로 끌려갔는데, 이들의 무덤 위치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송기호 서울대 교수(국사학)는 밝혔다.

▲ 지난 5월 천남생(연개소문 맏아들)의 무덤 앞에서 기념촬영한 중국 고고학자들. 동북사지

하지만 이번 연구는 ‘동북공정’ 차원에서 진행된 것임을 ‘둥베이스디’는 시사했다. ‘둥베이스디’는 ▲네 무덤 모두 고구려의 무덤 양식인 돌방무덤(봉토석실분·큰 돌 등으로 무덤 방을 만든 뒤 흙을 덮은 무덤)이지만 당삼채가 나오는 등 당과 고구려의 문화가 융합된 특성을 보여주었으며 ▲신·구당서(新舊唐書)의 기록처럼 고구려의 지배층이 뤄양 등 중국에서 묻혔음이 증명됐고 ▲천남생 등 3기의 무덤은 중국의 전통적 무덤 양식인 ‘좌소우목’(左昭右穆·가운데 자리에 선조를 묻은 뒤 그 앞쪽 오른쪽부터 왼쪽 방향으로 삼각형 모양이 되도록 차례대로 후손을 묻는 방식) 형태로 만드는 등 고구려 문화가 당의 문화에 융합·흡수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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