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joongboo.com/news/articleView.html?idxno=395783 (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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丹東, 고구려 200년간 다스린 주옥같은 도시

역사의 숨결어린 요동- 고구려 유적 답사기행<47>

중부일보 2011.01.10, 남도일보 2012.11.28 18:49


<평양으로 가는 관문 오골성 4>

‘붉은 동방’ 단동…고구려 200년간 다스린 아름다운 도시 

압록강 풍경명승구 등 유명 자연풍경구만 10여 곳

지하자원 풍부·자동차 산업 발달…농수산업도 번창

압록강다리옆 부두서 유람선으로 북한 신의주 구경


압록강철교 = 조중우의교


백두산에서 서남쪽으로 이어진 산줄기를 따라 내려오다가 압록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고장에 주옥같이 아름다운 도시가 하나 있다. 그곳이 바로 오골성 소재지 단동(丹東)이다.


단동은 중국에서 제일 크고 가장 아름다운 변경 도시다. 이곳은 고대 청주(靑州), 영주(營州)와 요동군의 관할지역이다. 한나라는 여기에 무차현(武次縣)과 서안평현(西安平縣)을 설치하였는데, 후에 고구려가 모두 차지하여 200여년 다스려왔다. 그 후 당나라는 이곳을 안동도호부에 예속시켰고, 요(遼)나라는 이곳에다 개주(開州), 염주(鹽州)와 하주(賀州)를 설치하였으며, 금나라는 여기에 파속부(婆速府)를 설치하였다. 원나라 때 요양행성(遼陽行省)에 속했던 이 지역을 명나라는 요동도사(遼東都司)에 예속시켰다.


1618년 이후, 후금(後金) 통치계급이 그들의 발상지 동북동부지역에서의 경제특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참호같이 깊은 도랑둑에 버들가지로 엮어 세운 길이가 천리 넘는 울타리 유조변(柳條邊)을 조성해 놓고 그 바깥쪽은 농사와 목축업, 어업과 목재채벌, 광산개발 등을 못하도록 엄격하게 통제하는 봉금(封禁地)정책을 실행하였다. 그 당시 이 유조변이 단동지역의 굴륭산(窟륭山: 현재 동항시에 속함)부터 봉황성변문과 애하변문(애河邊門)을 거쳐 북쪽으로 개원(開原: 현재 철령시에 속함)지역까지 죽 뻗어나갔는데 그 동쪽은 모두 봉금지로 되었다. 이리하여 이 봉금지에 속하는 단동지역은 사회와 경제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되었다. 200여년이 지난 뒤에야 청나라는 비로소 그 봉금령을 해제하고 변강지역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청나라는 변강지역개발사업을 격려하는가 하면 광서2년(光緖二年·1876년)에 이르러서는 단동지역에 봉황청(봉성진에)을 세워놓았으며 또 안동현, 관전현, 수암주(岫岩州: 현재 안산시에서 관할)를 신설하여 모두 봉황청에서 관리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것은 안동(단동)이 도시로 형성되는 좋은 여건이 되었다. 사방에 사람들이 물 밀리듯 모여들어 이 지역에 선착장이 개설되고 시장과 점포도 많이 생겨났다. 압록강 수로운송사업의 개발에 따라 이곳은 점차적으로 동북지역의 목재, 곡식, 산간지대 산물, 산누에 집산지로 거듭났다. 19세기 말기와 20세기 초반, 이 지역에 기름 짜는 기업, 목재가공업, 견직(絹織)업을 3대 기둥으로 하는 공업이 형성되었고 산누에, 곡식과 식용유, 산간지대 산물, 약재 등 장사를 위주로 하는 20여 종류의 사업이 나타났으며, 여러 가지 전문시장도 이루어졌다. 1927년 이 도시의 인구는 10여만으로 불어났다. 후에 안동은 선후로 안동성과 요동성의 성도로 되었다. 1954년 9월에 요동, 요서 두 성이 통합되어 요령성으로 변했는데 이때부터 안동시는 요령성에서 관할하게 되었다. 1965년에 안동시는 지명이 단동시로 바뀌어 지금까지 그대로 불리고 있다.


단동, 이 두 한자의 뜻은 붉은 동방, 바꾸어 말하면 해가 솟는 곳이란 뜻이다. 이름만 들어도 사람의 마음을 끈다. 현재 단동시는 동서로 제일 넓은 폭이 195.8km고, 남북으로 가장 긴 곳이 160.2km며 총 면적은 1만5천200k㎡다. 한족, 만족, 몽골족, 회족, 조선족 등 36개 민족이 모여 사는데 총 인구는 243만이고 산하에 진흥(振興), 원보(元寶), 진안(振安) 3개 구, 1개 국가급 변경경제협력구와 동항(東港), 봉성 두개 현급시 및 관전(寬甸)만족자치현이 있다. 몇 해 전에 단동은 국가에서 중점으로 발전시키는 ‘요령연해경제벨트’의 소속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동북아 중심지대에 있는 단동은 동북아경제권과 환발해경제권의 교차점에 위치해 있는데 한반도를 중국 및 유라시아대륙과 이어주는 주요육상통로이자 중국 명나라 시기 만리장성의 최동단 기점과 만리해안선의 최북단 기점으로 강과 국경선을 낀 연해지방의 특이한 지리적 장점을 지니고 있다. 철도로 평양과 220km, 서울과 420km 거리를 둔 동북아철도 대동맥의 중요한 중추이고, 고속도로로 대도시 심양과 220km, 대련과 252km 거리를 두고 있다. 단동항에서 인천항까지 거리는 245해리(海里)로 한국과 일본을 이어주는 편리한 해상통로이기도 하다. 지금 한창 공사 중인 단동~해성, 단동~통화 간 고속도로, 동북동부지역을 남북으로 꿰뚫는 동부철도간선, 그리고 앞으로 이북 땅과 이어질 압록강 새 다리, 부두를 지금보다 크게 건설하고 있는 단동항구와 이미 건설해 놓은 대동항(大東港: 동항시에 있음)은 단동으로 하여금 동북동부지역에서 제일 편리한 출해구와 물류집산지로 부상하고 있다.


단동지역에 금, 은, 동, 연, 아연, 붕사, 마그네슘, 흑연, 석면, 활석 등 지하자원이 50여 가지 있다. 여기서 붕사는 중국 전 지역 매장량의 94%를 차지하고 금, 은, 연, 아연의 매장량도 전국적으로 손꼽힌다. 단동의 공업은 자동차와 그 부품을 위주로 하는 장비제조업, 광산물가공업, 농산품가공업, 방직업과 의류생산, 전력에너지공업 등이 이미 우세산업으로 형성되었고, 대형버스, 화학섬유 등 제품이 브랜드로 이름났다. 단동의 농업과 수산업도 매우 발달되었다. 여기에 해산물 출산기지와 압록강진품(珍品) 어업 지대가 있을 뿐만 아니라 곡식, 밤, 딸기, 블루베리 생산 등 특성이 있는 농업기지와 패류양식기지가 이루어졌다. 여기서 나는 밤, 딸기, 패류가 이름을 떨쳐 외국으로도 수출된다.


단동의 북부는 산간지대다. 거기에 해발 1천m가 넘는 높은 산봉우리만 14개나 된다. 단동의 남부는 일망무제한 평야가 황해바다까지 죽 펼쳐져 있다. 1천여 갈래 하천과 50여개의 크고 작은 저수지들이 광활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산지, 구릉, 평원, 강, 호수, 저수지, 바다 그리고 화산, 폭포, 온천, 강 복판의 섬, 여러 가지의 동물과 식물… 다채로운 대자연이 단동에서 서로 어우러져 수많은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어 주었다. 산세가 험준한 황의산(黃椅山)풍경구, 도연명(陶淵明)의 무릉도원(武陵桃園) 같은 청산구(靑山溝)풍경구, 단풍이 절경을 이룬 천화산(天華山)풍경구… 이곳의 유명한 자연풍경구만 10개가 넘는다. 단동에는 또 고구려의 다른 옛 성을 포함한 역사유적지와 인문경관도 많이 있고 ‘6·25’전쟁, 즉 중국에서 일컫는 ‘항미원조전쟁기념관’도 있다.


단동


여기서 가장 소개하고 싶은 것이 압록강풍경명승구다. 이 풍경구는 록강(綠江: 압록강 하류의 상단 부분), 수풍호(水豊湖), 태평만(太平灣), 호산(虎山), 압록강다리, 압록강 입해구 6대 풍경구역의 100여개 경관으로 구성되었다. 압록강 하류에 속하는 이 풍경구는 혼강이 흘러드는 강어귀에서 대동항 입구까지 길이가 210km인데 그 중간에 한반도 북녘의 벽동(碧潼), 청수(淸水), 의주(義州), 신의주와 인접해 있다. 이 풍경구는 압록강 연안 두 나라의 풍경을 한꺼번에 구경할 수 있어 외국여행관광지역라고도 할 수 있다. 압록강은 중국과 한반도 북녘의 국경선이 되는 강이다. 전 세계에서 국경선이 되는 강은 대부분 주항로가 국경선이다. 압록강도 주항로가 있지만 실은 섬이나 강기슭을 국경선으로 삼기 때문에 배를 타고 관광할 때 그 주항로를 넘어도 상대방의 땅에 상륙만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므로 단동시내 압록강다리 옆의 관광부두에서 유람선을 타고 강을 따라 내려 갈 때, 선박 주인은 언제나 배를 이북 쪽 강기슭과 가깝게 운항해 간다.


그 기슭은 신의주시에 속한다. 강다리 옆에는 그쪽 강변공원이다. 공원 서남쪽에는 규모가 크지 않은 선박정비공장과 수산물가공공장이 이어져 있다. 그곳 선대(船臺) 위에서 일하는 선원들이나 흰 김이 모락모락 나는 큰 솥을 둘러싸고 한창 수산물가공작업을 하고 있는 여성들, 그리고 그 강변공원에서 노닐고 있는 사람들은 중국유람선의 관광객이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기만 하면 역시 반갑게 손을 흔들어 친선의 뜻을 표시하곤 한다. 이곳을 지나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농촌의 정경이 펼쳐진다. 이따금 오래도록 못 본 ‘그림’도 볼 수 있다. 그것은 풀들이 가득 자란 들녘의 흙길에서 황소 한 마리가 큰 마차를 끌고 가는데, 테두리에 양철판을 박아 놓은 커다란 나무바퀴가 삐거덕 삐거덕 소리를 내며 굴러가는 모습이다. 정말로 원시(原始)적이고 현대 젊은이들이 보기 드문 장면이다. 강을 따라 더 내려가면 압록강 입해구로서 봄철이 되면 거기에는 철새들이 새까맣게 모여들어 그것들의 천국으로 된다.


단동시내와 신의주 사이의 압록강 위에 다리가 두 개 나란히 놓여 있다. 하나는 기차와 자동차가 오고 갈 수 있는 철교 중조친선교(中朝友誼橋)이고 다른 하나는 ‘6·25 전쟁’ 때 이북 쪽으로 절반 끊어진 철교인데 중국에서는 단교(斷橋)라고 부르고 있다. 중국 측의 이 두 다리는 벌써 개방되어 압록강풍경구의 관광코스가 되었다. 이 강 다리 옆에서 유람선을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주 항로가 강 복판의 몇 개 섬 사이로 나있다. 이곳을 지날 때, 가이드가 소개하지 않는다면 유람객들은 자신이 이미 다른 나라에 있다는 것을 상상치 못한다. 배가 관전(寬甸) 경내 애하(애河)강이 압록강으로 흘러드는 곳에 이르면 고구려의 박작성이 있었던 호산(虎山)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옛 성터에 복원해놓은 명나라 때 중국 만리장성의 최동단이라고 하는 호산장성을 구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 발자국만 디뎌도 이북 땅에 넘어간다는 ‘일보과(一步跨)’의 정경도 볼 수 있다. 여기서 보초를 서고 있는 북한 군인들과 서로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기념물품도 건네줄 수 있다.


압록강풍경명승구


이 지역을 지나 계속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더 아름다운 경치들이 번갈아 나타난다. 시퍼렇고 울창한 양안의 산들은 산마다 수려하여 강물에 비친 그 그림자만 보아도 도취된다. 유람선이 이르는 다음 풍경구역은 태평만이다. 발전소의 큰 댐으로 압록강 물을 막아 저수지가 된 태평만은 중국 장강 남쪽의 물고장과 같은 특유한 풍광을 이루고 있어 ‘동북지역의 작은 강남’으로 불린다. 태평만 상류에 있는 수풍호는 압록강 풍경구에서 자연풍경이 으뜸으로 꼽힌다. 양측에 굴곡을 이루며 기다랗게 분포된 이 호수는 전부 국경선에 자리 잡고 있어 여기서 양안의 풍광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고 양쪽의 풍정(風情)도 느껴볼 수 있다. 여기는 또 천연적인 좋은 야외목욕장소로서 산수 간에 놀며 즐기는 피서승지이기도 하다. 멀리서 바라보면 양안에는 고목이 우거진 산들이 푸름으로 어우러지고 물에 잠기었던 산들의 밑 부분은 모두 칼로 깎아놓은 듯한 암벽이다. 호수 위의 이 기이한 풍경과 산중의 비경, 이 지역의 아늑한 전원풍광, 이국의 색다른 정취, 저마다 깊숙한 물굽이와 모양세가 각이한 섬… 천혜의 대자연이 수풍호로 하여금 국경선의 특이한 산수풍정화의 갤러리로 변하였다. 압록강의 수질은 맑고도 달콤하다. 본색과 제 맛을 제일 잘 드러낼 수 있는 곳은 녹강(綠江) 유역과 그 상류이다. 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고 공장도 보이지 않는 이 유역의 강물이 유난히 맑고도 짙은 녹색을 띠였는데 그 색깔이 마치 오리 목 부위의 윤기가 나는 깃털의 색상과 비슷하다 하여 이 강을 압록강(鴨綠江)이라 불렀다고 한다.


 장광섭/중국문화전문기자  윤재윤/요령조선문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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