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42773
경종이 죽기 3주 전 영조의 행적, 뭔가 수상하다
[사극으로 역사읽기] SBS <비밀의 문> 세 번째 이야기
14.10.13 11:15 l 최종 업데이트 14.10.13 11:15 l 김종성(qqqkim2000)
SBS 월화드라마 <비밀의 문>을 이끌어가는 원동력 중 하나는 '영조(한석규 분)의 원죄'다. 그 원죄라는 것은, 영조가 이복형이자 전임자인 경종의 죽음에 책임이 있으며, 경종이 죽은 뒤에 보수파 노론당과 밀약을 체결하고 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드라마 속의 영조는 어떻게든 원죄에서 벗어나려 하고, 노론당은 어떻게든 영조를 거기에 묶어두려 한다. 한편,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이제훈 분)는 화원 신흥복의 죽음을 계기로 그 원죄에 무심코 다가가고, 영조는 그런 세자를 보며 긴장감을 품고 있다.
영조의 원죄는 지난 7일 방영된 <비밀의 문> 6회에서 상징적으로 묘사되었다. 노론당 영수 김택(김창완 연기)의 국정 처리방식에 불만을 품은 영조는 김택 앞에 인삼탕 한 사발을 내놓으며 "지난날 우리가 환취정에서 황형(皇兄, 경종 지칭)께 정성껏 바친 그 인삼탕이야!"라고 말했다. 환취정은 창경궁 내 건물로서 경종이 숨을 거둔 곳이다.
김택은 약간 꼬인 말투로 "환취정에 드리던 탕약을 소신이 어찌 받겠습니까?"라며 사양했다. 그러자 영조는 "받기 싫으면 일처리를 똑바로 해야지"라고 쏘아붙였다. 이들의 대화에서 인삼탕은 사약을 상징한다. 이 장면은, 영조가 병석에 누운 경종에게 인삼탕을 바친 목적이 경종을 죽음으로 내몰기 위해서였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영조는 정말로 경종을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 드라마 <비밀의 문>에서 영조가 내시를 시켜 김택에게 인삼탕을 주는 장면 ⓒ SBS
이 드라마에서 암시된 것처럼 영조는 정말로 경종을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이 점에 관한 한, 어느 누구도 권위 있는 해답을 제시할 수 없다. 왜냐하면, 결정적 증거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한 판단은, 경종이 죽기 3주 전에 벌어진 객관적 상황을 통해 우리 각자가 스스로 내리는 수밖에 없다.
경종과 영조는 복잡한 인연으로 얽힌 관계였다. 경종은 장희빈(희빈 장씨)의 아들이고, 영조는 장희빈을 죽인 일등공신인 최숙빈(숙빈 최씨)의 아들이다. 어머니끼리는 원수지간이었지만, 경종과 영조는 어려서부터 사이가 좋았다. 최숙빈과 영조한테 증오심을 품을 만도 했던 경종은 따스한 마음으로 이복동생을 포용했다.
이렇게 좋은 관계였지만, 경종이 왕이 된 뒤에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경종은 소수파 정당인 소론당의 지지로 왕이 됐다. 다수파 정당인 노론당은 경종이 왕이 되기 전부터 영조(당시엔 연잉군)를 지지했다.
경종이 왕이 되자 노론당은 경종을 압박해서 영조를 후계자로 만들더니, 경종더러 "일선에서 물러나시고 연잉군에게 대리청정을 맡기라"는 황당한 요구까지 제기했다. 이를 계기로 경종과 영조의 관계는 복잡하고 미묘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태에서 경종이 병석에 눕고 영조의 살해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경종이 왕이 된 지 4년 뒤인 경종 4년 8월 2일(양력 1724년 9월 18일), 경종이 병석에 누웠다. 이전부터 병치레가 많았던 왕이다. 당시 나이는 서른여섯 살이었다. 나이는 30대이지만 병약한 왕이었다.
이때 경종의 병명은 한열(寒熱)이었다. 몸에 한기가 돌았다가 열이 나는 병이었다. 내의원에서 각종 탕약을 올렸지만, 좀처럼 차도가 생기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음력 8월 6일(양력 9월 22일), 경종은 창경궁 환취정으로 병석을 옮겼다.
병석에 있는 경종에 게장과 생감 권한 영조
▲ 창경궁 정문. 서울시 종로구 와룡동에 있다. 서울대학교병원 후문에 있다. ⓒ 김종성
창경궁으로 옮긴 뒤부터 경종의 병세는 한층 더 악화됐다. 한열에 더해 설사까지 생겼다. 소변도 잘 안 나오고, 몸은 허하고 피로했다. 여기다가 식사도 제대로 못했다. 이 때문에 의원들은 탕약을 제대로 올릴 수 없었다. 빈속에 약을 무한정 넣을 수는 없었으므로.
이런 상태로 8월 20일(양력 10월 6일)이 됐다. 조선 최고의 의료진인 내의원 의원들이 20일이 다 되도록 병을 치료하지 못하자, 왕실에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후계자인 영조다.
이날 영조는 의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자기 책임 하에 식단을 짰다. 그는 경종의 밥상에 게장을 놓았다. 탕약을 먹이기보다는 음식을 먹이는 게 낫다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게장을 입에 댄 경종은 오랜 만에 식욕을 회복했다. 그러자 영조는 후식으로 생감을 권했다.
이보다 2세기 전인 16세기에 명나라 이시진이 지은 약학 서적인 <본초강목>에서는 "게를 감과 함께 먹으면 복통이 나고 설사를 한다"고 했다. 조선 의학계는 명나라 의학계의 동향을 예의주시했다. 그렇기 때문에 16세기 명나라에서 나온 의학 지식이면, 18세기 초반인 경종 때는 조선 의학계의 상식이 되었다고 봐야 한다.
게장과 생감은 상극이라는 지식이 의학계의 상식이었기 때문에, 내의원 의원들은 영조가 짠 식단을 반대했다. 안 그래도 설사를 하는 환자한테 설사를 유발할 수 있는 게장·생감을 먹이는 행동이니, 의원들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연잉군은 후계자의 지위를 앞세워 의원들의 주장을 압살했다.
게장을 먹은 경종은 잠시 기운을 차렸지만, 그것은 잠깐이었다. 그날 밤부터 경종은 가슴과 복부의 통증까지 호소했다. 상태가 한층 더 악화된 것이다. 의원들은 "게장과 생감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서 각종 탕약을 먹였지만, 상황은 더욱 더 나빠졌다. 복통과 설사는 점점 더 심해지고 정신마저 혼미해졌다.
영조가 권한 인삼탕 먹은 뒤 하루만에 눈 감은 경종
▲ 창덕궁에 있는 내의원 건물. 서울시 종로구 와룡동에 있다. ⓒ 김종성
이렇게 병세가 악화된 상태에서 8월 24일(양력 10월 10일) 영조는 또 한번 의원들과 충돌했다. 긴급처방으로 인삼탕을 쓰자고 제의한 것이다. 그러자 어의는 "인삼은 제가 좀전에 올린 탕약과는 상극입니다"라며 반대했다. 게장과 생감을 먹인 뒤의 후유증이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영조는 말을 듣지 않았다. '인삼은 양기 회복에 좋은데,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가?'가 영조의 논리였다. 그는 "내가 의학 지식은 없지만 이 정도는 안다"는 식으로 어의에게 면박을 줬다. 그러고 강행했다. 경종의 입속으로 인삼탕이 들어갔다.
잠시 뒤 경종의 눈동자가 안정되고 콧등이 따스해지기 시작했다. 게장을 먹은 직후처럼, 몸이 좋아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일시적이었다. 8월 25일(양력 10월 11일) 새벽에 경종은 눈을 감고 말았다.
▲ 드라마 <비밀의 문>에 등장한 인삼탕. ⓒ SBS
이상은 경종이 죽기 전에 벌어진 일들이다. 위의 내용 중에는 영조에게 불리한 사실도 있고 유리한 사실도 있다.
불리한 사실은, 영조가 의료진의 의사결정과 치료에 혼선을 주었다는 점이다. 그는 "나는 의학 지식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의료진의 판단을 무시하고 음식과 약을 환자에게 강제로 제공했다. 이로 인해 경종은 의료진의 체계적인 치료를 받을 기회를 상실했다.
유리한 사실은, 영조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그것도 자신의 결정을 반대하는 의원들과 싸워 가면서 치료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영조가 고의로 사람을 죽이기 힘든 상황 속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정치적 암살의 일반적인 전제 조건인 비밀성·은밀성이 보장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영조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의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두 번씩이나 임의로 처방을 했다. 그때마다 경종의 병세는 한층 더 악화됐고, 그런 뒤에 경종이 숨을 거두었다. 만약 일반 의원이 이런 식으로 치료했다면 고의적인 살인이라고 판단할 수 있겠지만, 의학 상식이 없는 사람이 형을 살려보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고집을 피우다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고의적인 살인으로 몰아가기도 쉽지 않다. 이렇게 애매한 문제였기 때문에, 영조는 드라마에서처럼 세상의 눈초리를 의식하고 골머리를 앓으며 왕위를 지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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