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60706.html?_fr=mt2

환풍구 올라선 사람들 탓이라고? 
‘공공디자인’ 관점에서 보면…
등록 : 2014.10.21 10:35수정 : 2014.10.21 15:20 

경기소방본부 소방관들이 17일 밤 주변을 통제한 채 손전등으로 판교 테크노밸리 공연장 환풍구 붕괴 사고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성남/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판교 공연장에 있었다면, 당신도 혹시…’
“그러게 뭐하러 올라가?” 판교 사망자 비판이 놓치고 있는 것들
‘행동유도성’ 염두에 둔 공공 구조물 디자인의 사회적 공론화 필요

경기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 환풍구 추락사고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와 포털의 기사 댓글을 중심으로 개인의 과실 책임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애초 사람이 올라가는 곳이 아닌 곳에 무분별하게 올라가 공연을 관람한 사람의 책임이 크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20일 한 커뮤니티(▶관련 링크 바로가기)에는 “시설파괴비용을 물어내도 모자랄 판에 보상금, 치료비, 장례비 지원하려고 하고 있으니 기막히고 한심하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은 곧바로 ‘최다 댓글’ 게시물이 되면서 뜨거운 논쟁 대상이 됐다. 같은 날 오후 2시 기준 네이버 주요기사의 댓글엔 “사망자들의 과실도 만만치 않다”, “보상이 아니라 벌금을 먹여야”, “세월호는 선장과 선원이 나가라고 하지 않아 희생된 거지만 이 사건은 올라가지 말라고 해도 올라가서 떨어진 거다” 등의 댓글이 추천 수 상위에 올랐다.

이런 온라인 ‘악성 댓글’은 사고 피해자들에게 상처가 되고 있다. 부상자 가족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본인들 부주의로 당한 사고라고 비판하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을 아끼기도 했다. 사고 4일 만에 보상 관련 협상이 마무리된 것도 여론 악화에 기인한바 크다.

현재 인터넷 여론은 한쪽에선 올라간 사람들을 비판하고 있는 반면, 다른 쪽에선 안전요원 하나 두지 않은 주최 쪽과 환풍구 시설 규정을 철저히 하지 않은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를 두고 어느 한쪽만의 책임을 묻기는 어려워 보인다.


환풍구 덮개 붕괴 사고로 16명이 숨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광장의 다른 환풍구 주변에 18일 오전 ‘추락위험’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인근 상인은 사고 직후 환풍구에 안내판이 설치됐다고 밝혔다. 2014.10.18 /성남=연합뉴스
 
일부 누리꾼의 냉소적 반응은 사고 뒤 언론들이 일제히 ‘안전불감증’ 관련 기사를 쏟아낸 것과 맞닿아 있다. “환풍구 높이가 규정대로 지어지든 말든 환풍구 위로 올라가지 말아야 하는 것은 기본 상식”, “올라가지 말아야 할 곳에 올라간 사람에게 네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건 상식”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합리적인 개인’을 대상으로 둔 책임론이다. 부적절한 공연 관람 문화도 문제로 지적됐다. 공공장소에서 공중도덕이나 통제를 따르지 않고 안전선 밖으로 나가는 ‘밉상’에 대한 문제의식이 이번 사고를 계기로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환풍구 사고의 경우 ‘위험한 곳에 가지 말아야 한다’, ‘안전 통제를 따라야 한다’는 합리적인 상식만으로 책임을 개인에게 한정 지을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어떤 물건이나 구조물이 공공 환경에 놓일 때는 쓰임새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된다. 예를 들면, 문의 손잡이는 어떻게 열어야 할지(돌리거나, 밀어서)를 지시하는 형태로 디자인된다. 전등 스위치는 누르기 쉬운 위치에 누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게끔 디자인된다. 구멍이 있다면 뭐가 있나 들여다보고 싶어지고, 적당한 높이의 구조물은 위에 앉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킨다. 복슬복슬하고 귀여운 인형이 있다면 쓰다듬고 싶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처럼 어떤 사물의 생김새가 사람들에게 특정한 행동을 유발하는 것을 디자인 용어로 ‘행동유도성’(affordance, 도널드 노먼)이라고 부른다.

2차 세계대전 중 소련군이 사용했던 자동소총은 자주 고장이 났다. 이 자동소총은 탄창이 방석처럼 평평하게 생겼다. 군인들은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종종 깔고 앉았다가 소총을 고장냈다. 여객기가 처음 도입됐던 당시엔 에어컨 구멍이 우체통 구멍과 비슷해 자꾸 편지를 집어넣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Designing for People, 1955) 유명 관광지의 동상 등을 보면 튀어나온 코 같은 부분은 손을 타서 반짝거린다. 이런 심리가 이미 널리 퍼져 있기 때문에 동상을 만지지 않는 개인이 합리적 개인임에도 불구하고 ‘만지지 마시오’ 라는 경고문이 붙게 된다.

이런 내용을 종합해볼 때, 해당 환풍구는 화단과 연결돼 있었고, 허리 높이여서 원한다면 언제든 올라설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평소라면 이 정도 높이만으로도 사람들이 잘 올라갈 마음이 들지 않았겠지만, 공연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는 잘 볼 수 있는 높은 장소가 있다면 올라가서 보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들게 된다. 한두 명이 먼저 올라가서 문제없이 공연을 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면, 그 뒤로는 군중심리가 작용해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리게 된다. “나라도 회사 앞에서 공연하면 어디라도 올라가서 구경하고 싶었을 것”(@LG_g****)이라는 고백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이 한국인들은 인도에 존재하는 수많은 지하철 환풍구 위를 통행해 온 경험이 지배적이다. 지하철 환풍구는 안전 하중을 계산하기 때문에, 건물 주차장 배기구보다 비교적 안전한 편이다. 경험적으로 큰 위험이 없다고 생각하면 경계심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사고 현장에는 제지하는 안전요원이 아무도 없었지만, 설사 안전요원이 존재했더라도 사람들이 올라섰을 가능성이 큰 것도 이같은 경험적 판단으로 위험성 여부를 재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안전요원이 내려오라고 해도 잘 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ddae****, 네이트)는 비판도 마찬가지 맥락에서다.


19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정자역 신분당선 6번 출구 뒤쪽 인도 20여m 전체에 설치된 환풍구를 피해 시민들이 도로 쪽으로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다. 성남 / 이정아 기자

반면 ‘건물 배기구로 쓰이는 환풍구는 지하철 환풍구와 달라 붕괴 위험이 크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면, 사람들은 올라가기 좋게 되어 있어도 올라서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자신에게 구체적인 피해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사람들은 그 행위를 굳이 선택하지 않는다(사진). 벤치에 ‘페인트 주의’라고 쓰여 있는 것이 ‘앉지 마시오’라고 쓰여 있는 것보다 효과가 큰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공공디자인 측면에선 아직 어떤 사물에 대한 경험적 인식이 널리 퍼지지 않은 상태라면, 첫눈에 봐도 올라갈 마음이 들만한 ‘행동유도성’ 단서를 남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비슷한 구조물에 문제없이 올라 본 경험이 있을수록, 디자인 면에서 차이는 더욱 선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올라갈 수 없는 5m의 높이의 환풍구(사진)나, 구부러진 형태의 환풍구, 아예 올라갈 수 없는 유리벽으로 된 외국의 환풍구 사례 등이 주목받고 있다. 20일 조원철 연세대 교수는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전화 인터뷰에서 “아예 5m로 높이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유리 등으로 장식해 높게 돋워 올린 서울 마포구 합정역의 환풍구 벽에 각종 광고지가 붙어 있다. 성남 /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일본 신주쿠 지하철 환풍구.

이번 사고에선 건물주의 책임만을 따지기도 어렵다. 상식적으로 1.2~1.5m 높이의 환풍구 위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올라가게 될 것을 가정한 설계란, 이번 사고 이전에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공연 주최 쪽에서 무대 앞이 아닌 뒤에 환풍구가 위치하게끔 무대를 배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주최 쪽도 환풍구 위로 사람들이 그토록 많이 몰릴 것을 예측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다소 격한 누리꾼들의 반응에는 해당 행사 실무 담당자인 오아무개(37)씨가 SNS에 마지막 글을 남긴 채 행사 주최의 책임을 혼자 지고 목숨을 끊은 데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도 존재한다.


교보타워 옆 환풍구(도보가능).

환풍구에는 사람이 올라서도 되는가? 올라설 수 있다면, 왜 안전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올라설 수 없다면, 왜 아무도 올라가지 못하도록 그 위험성을 널리 알리지 않았을까? 참사 다음에 우선 뒤따라야할 질문은 이러한 구조에 대한 의문과 사회적 공론화 아닐까. 하지만 ‘합리적 개인의 판단’만이 생명을 구하는 사회, 스스로 안전을 알아서 찾아야 하는 사회는 사회의 역할보다 개인에게 지워진 ‘자기방어의 책임’만을 점점 더 무겁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사회보단 조금 합리성이 미숙한 개인이라도 시스템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가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정유경기자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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