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70420.22016210536
이영식교수의 이야기 가야사 여행 <13> 가야의 성형수술-상
가야시대 두개골 성형 유행 세기 성형 열풍의 원조
국제신문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2007-04-19 21:06:40/ 본지 16면
김해 예안리 고분군 전경
오늘부터는 두차례에 걸쳐 낙동강 가에 있는 김해 예안리고분군을 찾아 두개골 성형이라는 가야 사회의 독특한 풍습에 대해 나름대로 해석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부터는 두차례에 걸쳐 낙동강 가에 있는 김해 예안리고분군을 찾아 두개골 성형이라는 가야 사회의 독특한 풍습에 대해 나름대로 해석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의 얼굴
거리에는 높은 코에 쌍꺼풀 진 커다란 눈의 얼굴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담당하고 있는 강의 중에는 '한민족의 기원과 형성' 이란 과목도 있습니다. 이 강의는 형질(체질)에서 보이는 우리 민족의 특징부터 시작합니다. 우리 선사인의 두개골 측정치를 제시하면서, 큰 머리에 발달한 턱, 앞뒤가 짧고 좌우가 긴 건빵같이 생긴 두개골, 북방의 추운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쌍꺼풀도 없고, 코도 높지 않은 얼굴 등을 우리의 특징으로 늘어놓곤 합니다. 지금의 미적 기준에서 본다면 전혀 달갑지 않은 특징들일 겁니다. 강의실의 학생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그럴듯한 얼굴을 발견하면 서로 키득대곤 합니다. 그러나 요즈음에 이런 특징을 가진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 네모네
김해 예안리 고분 고분 인골 출토 모습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예전에 우리 학과에는 '아! 네모네!'라는 별명을 가진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여학생 이름만 대면 우리 민족의 형질적 특징은 쉽게 이해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졸업하고도 가끔씩 학교를 찾아옵니다만, 그럴 때면 "선생님 교재 사용료 주세요!"라는 농담을 잊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강의에 사용하기 적합한 교재(?)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마도 성형수술이 일반화된 탓이 아닐까 합니다. 가끔 아내와 길을 걷다가 어린이를 데리고 가는 여인네를 만나 서로 의미 있는(?) 눈을 맞추고 어느 정도 멀어지면 히죽거리는 일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주 높은 코에 쌍꺼풀 진 커다란 눈입니다만, 아이가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입니다. 아무튼 일반화되는 성형수술 덕분에 우리 민족의 형질적 특징을 설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가야의 성형수술
이러한 성형수술은 가야시대에도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삼국지'는 가야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머리를 돌로 눌러 한 쪽을 찌그러뜨려 편두(偏頭)를 만드는 풍습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물론 편두의 풍습이 가야만의 특수한 것은 아닙니다. 고대의 인도·시베리아·중남미 등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상당히 유행하던 풍습이었음이 민족지적 사례에서 곧 잘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야인들이 정작 머리의 어느 부분을 눌렀을까? 어떤 사람들이 두개골 성형을 했을까? 왜 했을까? 등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근년에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고고학 자료가 발견되었습니다. 김해 예안리 고분군에서 발견된 200여구의 인골이 그것입니다.
김해 예안리 고분군
1976~1980년에 부산대박물관은 4회에 걸쳐 김해시 대동면 예안리 시례마을에서 약 190여 평 정도 넓이의 가야 고분군을 발굴하였습니다. 부산에서 김해로 서낙동강의 선암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장어골목을 헤치고 차로 약 10여분 정도 가면, 도로 오른 쪽에 낮은 철책이 둘러쳐진 사각형의 잔디밭을 만나게 됩니다. 발굴조사 후에 흙과 잔디로 덮어 보존한 김해 예안리 고분군입니다. 덧널무덤(木槨墓) 59기, 돌덧널무덤(竪穴式石室墓) 93기, 독무덤(甕棺墓) 17기, 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 13기 등 총 182기의 고분에서 토기류 1,100점, 철기류 660점, 구슬류 180점, 귀걸이 41쌍, 뼈화살촉 60점 등 총 2,0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예안리 고분군은 4~7세기의 약 300년 동안 지속적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가야고분의 모든 스타일이 중복되어 있어, 그 선후 관계에 따라 덧널무덤⇒돌덧널무덤⇒돌방무덤으로 변해갔던 모습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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