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70504.22015203932
이영식교수의 이야기 가야사 여행 <15> 가야의 부뚜막 귀신 (상)
가야에서 日 규슈북부로 건너간 부뚜막、신앙처럼 여겨
국제신문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2007-05-03 20:41:29/ 본지 15면
가야시대의 이동식 부뚜막(김해 봉황대유적 출토·왼쪽)과 고정식 부뚜막 복원 모습.
오늘부터 약 3회 정도는 가야의 부뚜막이 발견되었던 김해 부원동유적과 진주 평거동유적 등을 찾아 보고, 대한해협을 건넜던 가야의 부뚜막 귀신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부뚜막이 뭐예요?
이제 도회에서 부뚜막을 찾아보기란 참 어렵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아마 부뚜막이 무언지도 잘 모를 겁니다. 아파트가 솟아나고, 단독주택에서도 가스레인지가 사용되는 지금, 부뚜막은 물론 부엌이란 말조차도 잘 모릅니다. 현대의 거주공간에서 부엌과 응접실의 구분이 없어진 지금, 도회의 아이들이 부뚜막을 알 리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선 먹어야 하고, 먹으려면 조리해야 하니, 선사시대 이래 불을 다루는 부뚜막과 부엌은 소중한 공간이었습니다. 더구나 부뚜막은 추위를 이겨낼 수 있게 하는 난방시설이기도 했습니다. 취사와 추위를 해결해 주던 부뚜막의 불은 집안의 생명이기도 했지요. 부뚜막 불이 꺼지는 것을 집안의 망조로 여겨왔던 전통사회에서는 신앙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부뚜막 신앙, 즉 조왕신앙( 王神仰)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집안의 제사 때는 부뚜막에도 음식이 차려졌고, 절기에 따라 부뚜막 신에 대한 별도의 제사도 바쳐졌습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부뚜막을 모르지만, 우리 민족이 걸어왔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해 왔었습니다.
부뚜막의 등장
쌀 같은 곡물이 주식인 우리 민족에게 부뚜막은 참 소중한 시설이었습니다. 부뚜막에는 토기 솥이 걸쳐지고, 솥 밑에는 돌 받침의 지각(支脚)이나 점토를 채운 토기가 거꾸로 세워졌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되고 있는 선사시대의 부뚜막은 100여기 이상을 헤아리지만, 그 구조가 제대로 살펴지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었습니다. 고대의 부뚜막에는 움집 내부 한 쪽 벽에 만들어지는 고정식과 토기나 철기로 만들어진 이동식의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고정식 부뚜막은 철기문화와 함께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동식 부뚜막은 조금 늦게 고분의 부장품으로 등장합니다. 실생활에서 이동식 부뚜막이 사용되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만, 주로 고정식이 사용되었을 겁니다. 지금까지 출토된 이동식 부뚜막이 많지도 않지만, 이동식 부뚜막에 걸쳐진 토기에서 그슬린 자국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이동식 부뚜막은 저 세상 가서 굶지 말라고 넣어 주던 물건, 즉 명기(冥器)였습니다. 박물관에 가시면 진열되어 있는 토기들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불에 그슬린 자국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어떤 부분이 그슬렸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겁니다.
그건 그렇고,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부뚜막은 한강 유역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부뚜막이 벽 안쪽에 설치된다는 차이가 있지만, 기원전 1세기가 되면 지금과 거의 비슷한 형태의 부뚜막이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부뚜막은 기원전 108년 한(漢)에게 멸망당한 고조선 유민들의 이주과정에서 철기문화와 함께 남쪽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남해안의 가야지역에서 부뚜막이 등장하는 것도 이 때입니다.
가야와 일본의 부뚜막
기원 전후, 그러니까 약 2000년 전이 되면 가야지역에서도 부뚜막을 갖춘 움집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합천 저포리유적, 진주 대야리유적, 김해 부원동유적 등이 이에 해당할 겁니다. 가야지역의 부뚜막은 다시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 열도로 전해집니다. 기원후 1세기 말경이 되면 규슈북부지역에 부뚜막이 출현하기 시작합니다. 부뚜막이 혼자 걸어갔을 리는 없었을 테니까, 부뚜막 문화를 가지고 일본 열도로 이주했던 가야인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자료가 됩니다. 가야의 부뚜막 문화는 고대일본의 심장부인 아스카(飛鳥) 나라(奈良) 오사카(大阪)까지 전파되어, 5세기경이 되면 고대일본의 취사와 난방을 책임지게 됩니다. 고대에서 현재까지 나라 오사카 등에서는 부뚜막에서 집 밖으로 연기가 빠져나가는 굴뚝을 '구도'라 부르는데, 우리말의 '굴뚝'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부뚜막의 부뚜막신( 神)과 굴뚝의 구도신(久度神)은 가야를 비롯한 한(韓)계통의 이주민들과 함께 대한해협을 건넜던 신앙이었습니다. 따라서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일본요리의 시작은 가야에서 전해진 부뚜막과 부엌, 그리고 굴뚝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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