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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義慈王,?~660]
백제의 제31대 왕(재위 641∼660). 재위 초기에는 친히 신라를 공격하여 신라에 큰 타격을 주고 국위의 만회에 힘썼으나, 만년에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나 ·당 연합군의 침공을 맞았으며, 끝내 항복하였다.
재위기간 : 641년∼660년
별칭 : 해동증자(海東曾子)
의자(義慈)는 휘(諱)로서, 그는 왕의 시호가 없다. 무왕의 맏아들로 태어나 632년(무왕33) 태자로 책봉되었다. 효성과 형제애가 지극하여 해동증자(海東曾子)라 일컬었다. 642년 친히 신라를 공격하여 미후성(獼猴城) 등 40여 성을 빼앗았고, 이어 윤충(允忠)으로 대야성(大耶城:경남 합천)을 함락시켜 성주인 품석(品釋)을 죽이는 등 신라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듬해에도 당항성(黨項城:남양)을 빼앗아 신라가 당(唐)나라로 가는 입조(入朝)의 길을 막는 등 국위의 만회에 힘썼다.
그러나 만년에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성충(成忠) ·흥수(興首) 등 충신의 간(諫)을 듣지 않고 국정을 돌보지 않다가 660년 나 ·당(羅唐) 연합군의 침공을 맞게 되었다. 계백(階伯)의 황산벌싸움을 마지막으로 백제의 방어선이 모두 무너져 수도 사비성(泗沘城:충남 부여)이 나 ·당 연합군에 포위되자 의자왕은 태자와 함께 웅진성(熊津城:충남 공주)에 피신하였으나 끝내 항복하였다. 그는 태자 등 1만 2000여 명과 함께 소정방(蘇定方)에게 끌려 당나라에 압송되었다가 그곳에서 병사하였다.
의자왕 가묘
2000년 9월 중국 화남성에서 의자왕의 유해를 가져와 이곳에 단비를 세우고 왕릉을 만들다.
의자왕과 부여융의 가묘
백제국 부여융 단비와 백제국 의자대왕 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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