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70831.22023204231

이영식교수의 이야기 가야사 여행 <31> 대가야 왕릉-중
왕이 숨지면 시중 들던 100여명이 함께 묻혀
사후의 내세관과 무자비 권력 보여줘
고대국가 사회 미달 신라는 6C에 금지
국제신문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2007-08-30 20:46:32/ 본지 23면

고령 지산동 44호 고분 발굴 전경. 5세기 후반 대가야 왕의 묘로 추정되며 여러 기의 순장묘가 함께 나타났다.

순장을 아십니까

가야의 피라미드 고령 지산동44호분에는 중앙에 주인공의 대형 석실이 자리하고, 그 둘레에는 순장자를 위한 많은 소형 석실들이 배치되었습니다. 순장(殉葬)이란 생전에 주인공을 모시던 사람들이 따라 죽어 함께 매장되는 것을 말합니다. 중앙 석실에서도 주인공의 발 아래쪽에 함께 묻혔던 순장인골이 확인되었고, 둘러싸고 있는 32기의 석실들은 순장자와 부장품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었습니다. 순장자 들을 매장하기 위한 석실을 순장곽이라 부릅니다. 순장곽 하나에는 대개 3~5인이 순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32기에 3~5명을 곱하면, 모두 96~16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주인공을 따라 매장되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여기에 주인공의 석실에 순장된 숫자를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수가 되어야 하지만, 발굴조사자들은 60여 명을 약간 넘는 숫자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의 주인공을 따라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왕이 돌아가셨다." "생전에 왕을 모시던 사람들은 은혜에 감사하며 따라 죽어야 한다." "왕은 저 세상에 가서도 이들의 시중을 받으며 생전과 다름없는 생활을 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대가야인들의 상식이었고, 그러한 상식은 대가야 왕의 초월적인 정치권력에서 비롯되었을 겁니다.

44호분은 5세기 중 후반 경의 고분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5세기 중 후반의 대가야 왕은 바로 우륵(于勒)에게 가야금 12곡을 작곡시켰던 가실왕(嘉實王)이었습니다. 가야금 12곡에 얽힌 사연은 다 다음 주에 다시 얘기하겠습니다만, 가야금 12곡도 서부경남 일대를 석권했던 대가야 왕의 정치적 위세를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물론 44호분의 주인공을 알려주는 기록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우리 연구자들끼리는 가실왕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수군거리는 중입니다. 주인공의 석실을 방사선형으로 둘러싼 소형 석실들에는 가실왕을 모시던 여러 신하들이 순장되었을 겁니다.

순장과 권력

그런데 32기의 순장곽 들에 부장된 유물이나 인골들에서는 몇 가지 특징적인 사실들이 발견됩니다. 세 사람이 포개져 있었는가 하면, 남녀 어린이가 머리를 마주 대고 눕혀졌던 방도 있었습니다. 철제갑옷과 무기만 나오는 석실에는 왕의 호위무사 쯤이 순장되었을 것이고, 닭 뼈·생선 뼈·바다고둥과 같은 음식물이 주로 있는 방에는 왕의 식사를 책임지던 '가야의 대장금'이 묻혔을 겁니다. 옷감 같은 많은 섬유질이 확인되는 방에는 왕에게 의복을 제공하던 사람들이 순장되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런 특징들은 사후에도 왕의 생활을 계속하겠다는 내세관(來世觀)과 함께, 왕이 돌아갔다고 6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강제로 잡아 죽였던 대가야 왕권의 무자비한 통치력을 보여줍니다. 한편 '삼국사기' 직관지는 신라 조정에 각각의 업무를 관장하는 전문부서가 존재했음을 보여줍니다. 임무나 병기의 종류에 따라 편성된 각종 부대(幢), 신발 만들던 화전(靴典), 기와 만들던 와전(瓦典), 직물 염색하던 염궁(染宮), 식사 담당하던 육전(肉洗) 등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가야가 고대국가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5세기 후반 대가야 왕의 휘하에는 여러 전문 집단이 국가의 기구처럼 조직되어가고 있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반면에 수많은 사람의 순장은 사회발전의 후진성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을 순장시키고 엄청난 무덤을 만들어 왕의 권력을 과시하여 왕권을 유지하려는 것은 저급한 단계의 사회입니다. 율령(律令)이란 법 질서에 의해 통치되고 왕권이 계승될 수 있는 고대국가 사회에는 도달하지 못한 단계입니다. 신라 지증왕 3년(502)이 되면 순장은 법으로 금지됩니다. 

신라의 순장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만, 신라 왕권은 더 이상 거대한 고분이나 생사람 잡는 순장으로 통치자의 위엄을 강조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대가야는 아직 아니었습니다.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박물관장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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