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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화사 - [가야] 가야 문화" 중 가야의 고분 내용을 가져왔습니다.
가야의 고분
* "한국문화사 - [가야] 가야 문화" 중 가야의 고분 내용을 가져왔습니다.
가야의 고분
가야인의 정신 세계
가야의 수장급 무덤에는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다량의 유물들이 부장되어 있다. 이들 유물은 현실적인 권력을 상징하는 것과 정신적인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구분될 수 있다. 전자가풍부한 무기, 무구류, 농공구류 등의 존재로 상징되어 진다면 후자는 이보다는 무속적인 성격이 강한 유물의 부장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데, 동래 복천동 22호분 출토 청동제 칠두령(방울)이 그 대표적 인 예이다.
또 김해 대성동 14호분 출토 거울조각 펜던트, 23호분 출토 방격규구사신경(方格規矩 四神鏡)등 동경을 귀히 여기고, 또 부장한 점 등 에서도 신앙적인 측면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경우가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이 고분들이 그 지역의 최고 수장급 무덤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볼 때, 가야 사회의 지배 논리는 군사적 강제력에 의한 권위와 아울러 종교적 권위도 중시되고 있는 사회였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야의 무덤
고령 지산동 고분군
삼한 시대 후기 후반대에 등장한 목곽묘는 가야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주묘제로 사용되는데, 일반적으로 대형분의 경우는 별도로 부곽이 딸린다. 여기에는 다종다양한 유물이 풍부하게 부장되고 무엇보다 순장(殉葬)도 행해져 강력한 지배권의 출현을 느낄 수 있다. 5세기대에는 수혈식 석곽묘가 채용되는데 석곽의 규모나 구조 등에 목곽묘의 전통이 남아 있으며 여전히 유물의 다량 부장과 순장의 습속도 지속된다.
5세기 후엽 차츰 부곽이 사라지고 길어지는데 주곽 내에 부곽을 포함시킨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때부터 가야 지역에도 고총(高塚)의 원분(圓墳)이 영조되기 시작한다. 신라 세력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는 5세기말 이후 가야의 묘제는 출입구를 마련하여 여러번 추가장이 가능한 횡구(橫口), 횡혈식 석실묘(橫穴式石室墓)로 이행되게 된다.
가야 고분 발굴 모습
가야 고분 발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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