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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은 잠그고, 귀를 열어야 소통이 된다”
<박종평 이순신 이야기⑬>"가이드라인 제시하는 리더, 귀머거리"
<혼돈의 시대, 리더십을 말하다>
홍준철 기자 | mariocap@ilyoseoul.co.kr [1026호] 승인 2013.12.30 10:32:35
“입은 잠그고, 귀를 열어야 소통이 된다”
성공한 사람들은 잘 듣는 사람이다. 듣지 않는 사람들은 실패를 한다. 역사는 그런 리더들의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잘 듣는 사람의 대표자는 이순신과 징기즈칸이다. 징기즈칸이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얻을 수 있었던 힘의 하나가 "듣기"이다. 반면 잘 듣던 사람이 위치가 바뀌면서 귀머거리가 되어 실패한 사례도 있다. 장군 아이젠하워는 듣기의 명수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자 듣기 보다 죽은 문장에 갇혀 보고서에 연연해 하다가 실패한 대통령이 되었다고 한다.
죽은 보고서 대신, 산사람 얘기를 들어라
성공한 사람들은 겸손이라는 갑옷과 경청이라는 무기를 지니고 있다. 자신의 말보다 다른 이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는 귀 기울이기에 특별한 재능을 발휘했다. 자신의 생각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먼저 들었다. 그 점에서 이순신은 듣기의 명수이다. 서애 유성룡은 이순신이 한산도에 있을 때 운주당(運籌堂)이라는 집을 짓고 밤낮으로 그 안에 거처하면서 여러 장수들과 전쟁에 관한 일을 함께 의논했고, 지위가 낮은 군졸일지라도 전쟁에 관한 일에 대해서는 누구든 찾아와 자신의 의견을 말하게 했다고 한다. 이순신의 듣기가 군중(軍中)의 사정을 통달할 수 있는 방법이었고, 지지 않을 수밖에 없는 지혜의 원천이었다. 우리에게 이순신은 무엇을 어떻게 들었을까.
▲ 진해루에 앉아 방답 첨사(이순신), 흥양 현감(배흥립), 녹도 만호(정운) 등을 불러들였다. 모두 격분하여 자기 한 몸의 안위도 생각치 않았다. 참으로 의로운 선비들이다. (1592년 5월 1일)
▲ 여러 장수들과 약속을 할 때 모두들 즐거이 나아가 싸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낙안 군수만은 피하려는 생각을 가진듯하다. 한탄스럽다. 그러나 군법이 있으니, 비록 물러나 회피하려고 해도 그렇게는 될 수 없을 것이다.
(1592년 5월 2일)
(1592년 5월 2일)
▲ 광양 현감과 흥양 현감을 불러 함께 이야기 했다. 모두 분한 마음을 나타냈다. … 조금 뒤에 녹도 만호가 면담을 청하기에 불러들여 물었더니, “우수사(전라우수사 이억기)는 오지 않고 왜적은 점점 서울에 근접해 가고 있습니다. 통분한 마음을 참을 수 없습니다. 만약 이 기회를 놓치면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바로 중위장을 불러 내일 새벽에 떠날 것을 약속하고 장계를 써 보냈다. 이날 여도 수군 황옥천이 왜적의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도망갔는데, 잡아다가 목을 베어 군중 앞에 내다 걸었다. (1592년 5월 3일)
이 일기의 배경은 4월 13일 일본군이 부산 상륙이다. 일본군의 침략으로 부산과 동래성이 연이어 함락되었다는 정보가 이순신에 전해졌다. 경상 감사와 경상우수사 원균은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이순신은 긴급사태에 따라 출전 여부를 장수들과 회의를 통해 의견을 모았다. 위의 5월 1일 부터 5월 3일까지의 일기와 옥포해전 승첩 장계는 이순신과 장수들이 어떻게 회의를 했고, 무엇을 고민했는지를 보여준다. 이순신은 침략소식을 듣고는 장수들을 불러 전쟁 발발 상황을 설명하고, 경상도 지원 출전 문제를 들었다.
5월 1일 일기에는 방답 첨사, 흥양 현감, 녹도 만호 등이 강력하게 출전을 주장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러나 자신의 의견은 표명하지 않은 모습니다. 다만, 출전론자들에 대한 평가로 자신의 생각을 언급했다. “모두 격분하여 자기 한 몸의 안위도 생각치 않았다. 참으로 의로운 선비들이다." 그러나 2일과 3일의 일기를 자세히 추측해 보면 낙안 군수를 비롯한 출전 반대론도 많았던 듯하다.
2일 일기에서는 낙안 군수를 구체적으로 거명하면서 “낙안 군수만은 피하려는 생각을 가진듯하다. 한탄스럽다. 그러나 군법이 있으니, 비록 물러나 회피하려고 해도 그렇게는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자신의 입장을 표현했다. 3일에 다시 회의를 했지만, 여전히 찬반양론으로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녹도 만호 정운은 “왜적은 점점 서울에 근접해 가고 있습니다. 통분한 마음을 참을 수 없습니다. 만약 이 기회를 놓치면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입니다”고 주장했다. 정운의 주장에 따라 이순신은 결단의 순간을 미루지 않고 단호히 결심하고 출전 명령을 내렸다.
이 3일 동안의 일기 속에는 경청하는 이순신, 상대의 속마음까지 들으려는 이순신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의견(출전론)을 먼저 말해 부하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찬성론과 반대론을 충분히 들었다. 그는 토론 과정에서 장수들의 출전 의지를 붙래웠고, 명분을 만들었다. 출전반대론자들의 주장과 그들의 문제제기도 검토했다. 그러면서 출전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출전 계획을 알리는 장계를 쓰고, 탈영병인 여도 수군 황옥천을 체포해 효시했다. 이 과정에서 이순신의 모습은 하나의 입 마저 봉하고 오직 귀만 연 경청하는 리더의 모습 그 자체이다.
반대론자에겐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이순신과 그의 전라좌수영의 수군들도 자신들이 방어하는 지역에 일본군이 침략해 올 가능성이 높았고, 자신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경상도로 전투를 하려 가야하는 입장에서 우선순위 논쟁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국방을 책임진 리더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도 없다. 침략자를 응징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강요로 승리를 얻을 수 없고, 적의 상황을 알지 못하고, 경상도 지리도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이순신 스스로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부하들의 자발적 참여 효과와 자신들이 직면한 문제점을 확인하고, 대비하기 위해 ‘잘 듣기’를 적극 활용했다. 이순신이 출전론자들을 일일이 거명한 이유는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한 것이지만, 겉으로 드러내놓고 표현하지 않는 모습은 반대론자들의 주장도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관할 지역 방어 임무와 적군에 대한 정보 부족, 지리 정보 부족이 반대론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순신의 입장에서는 반대론자의 주장이 바로 당장에 해결해야 할 출전론자들의 숙제이기 때문이다. 대장인 이순신은 찬반논쟁 속에서 명분을 만들고, 단결을 이루어야 하고,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찾아야 했다. 이순신은 논쟁의 중심에서 양쪽의 이야기를 최대한 집중해서 잘 듣고 승리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그 결과가 1차 옥포해전의 승리로 나타났다.
이순신은 출전하자마자 경상 우수사 원균에게 가장 핵심적인 세 가지 문제점을 확인했다. 첫째, 적선의 수, 둘째, 적이 머물고 있는 곳, 셋째, 싸울 방법 등이다. 왜적의 배가 수백 척이 쳐들어왔다고 들었던 이순신의 입장에서는 소수의 전선으로 싸워 이길 수 있는 왜적의 전선 규모를 파악해야 했다.
적진과 본영과의 거리 등을 파악해 군사들의 전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투지점을 찾아야 했다. 또한 파죽지세로 국토를 유린하는 힘을 가진 적군들의 무장 상태나 전투방법, 기습의 위험 등을 알아야 했다. 이순신이 원균에게 물었던 것이 바로 이순신 진영에서의 출전반대론자들이 제기했던 문제점이기도 했다. 때문에 이순신은 출전 즉시 원균으로부터 정보를 얻고 불패 전략을 세워 전투를 했다.
당시 이순신이 자신의 속마음과 전혀 다른 출전반대론자들의 이야기를 감정적으로 거부했거나, 출전반대론자들의 반대론을 잘 듣지 않고 귀를 닫았다면 이순신은 용기와 분노만으로 무모한 출전해서 패전했을 것이다. 이순신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주장들도 판단을 할 때는 감정을 배제했다. 반대론에도 귀를 활짝 열어 위험을 확인하고 대책을 세웠다.
※ 이 칼럼은 <그는 어떻게 이순신이 되었나>(스타북스, 2011)에 썼던 원고를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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