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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평 이순신 이야기⑮>"약속을 지키지 않는 리더, 양치기소년일뿐"
<혼돈의 시대, 리더십을 말하다>
홍준철 기자  |  mariocap@ilyoseoul.co.kr  [1028호] 승인 2014.01.13  11:18:29

 ▲ 이순신 장검 삼척서천

약속은 구성원과 함께 만든 것, 일방적 폐기 안돼
지키지 못할 약속의 반복은 자멸의 길

이순신은 의사결정 방식은 오늘날의 리더들에게도 시사하는 것이 많다. 그는 자신이 먼저 결정한 후 일방적 지시를 하거나, 사후약방문격으로 허겁지겁 의견을 수렴하는 형태가 아니다. 동료나 부하들로부터 먼저 듣고, 묻고, 의논한 뒤에야 무겁게 결정을 했다. 이순신은 그와 같은 단계를 밟아 나온 결과물을 ‘약속(約束)’이라고 표현했다. 약속의 한자 본래의 뜻은 ‘맺고 묶는다’이다.
 
다른 사람에게 듣고, 묻고, 함께 의논한 뒤 합의된 결과를 서로 실천하기 위해 맺고 묶었다. 그런 방식은 상의하달식 단방향 결정이 아니라 쌍방향 소통의 결과였기에 ‘약속’이란 표현을 쓸 수 있었다. 이순신은 장수들과 군사들과 끊임없이 약속했다. 관련자들이 참여해 동의한 결과로 만들어진 약속이었기에 누구도 약속을 위반하기 어려웠다.

끊임없이 약속하고, 약속은 반드시 실천하라

그의 약속은 한번의 실행으로 끝난 경우도 있지만, 그는 언제나 약속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반복해 강조했다. 그래서 그의 약속 표현에는 약속을 강조하는 ‘다시(경, 更)’, 또는 ‘사실을 거듭 밝힌다(신명, 申明)’는 표현을 넣은 재확인의 표현이 들어있다.

▲ 미조항 앞바다에 이르러 다시 약속했다(更爲約束). 1592년 5월 4일.
▲ (전라우수영의 군사들과) 군사를 합치고 거듭 약속한 것을 밝히고(申明約束), 착포량에서 밤을 지냈다. 1592년 6월 4일.
▲ 여러 장수를 불러 거듭 약속한 것을 밝히고(申明約束)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가니, 적선 133척이 우리의 배를 에워쌌다. 1597년 9월 16일.
▲ 아침 식사 후 삼도의 군사들을 모아 약속(約束)할 때에 영남 수사는 병들어 오지 못해  전라좌우도의 장수들만이 모여 약속했다(約束). 1593년 2월 14일.

또한 그는 그가 상급자로서 하급자에게 보내는 공문문서 형식의 하나인 ‘감결(甘結)’조차 약속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자신이 지시를 하면서도 문서를 받는 사람들도 함께 결정하고 약속한 것처럼 표현했다. 공감을 통한 설득의 기술이다. 《난중일기》에 기록된 감결 초안을 보면, “약속하는 일” 또는 “거듭 약속하는 일”로 시작한 공문 사례가 나온다.

▲ 약속하는 일(爲約束事). 아주 오랜 옛적부터 들어 보지 못한 흉변이 우리 동방예의지국에 갑자기 닥쳐왔다. 영남 바다의 여러 성들은 적의 위세만 보고도 달아나 무너져, 적이 석권하는 형세가 되었다. 임금의 수레는 서쪽으로 옮겨가고, 백성은 짓밟히고 살육을 당했으며, 연이어 삼경이 함락되어 종사가 폐허가 되었다. 우리 삼도 수군은 의리를 떨쳐 죽음을 바치려 하지 않은 이가 없지만 때가 알맞지 않아 뜻한 바람을 펴지 못했다. … 그러나 어제 적을 만나 지휘할 때 교묘히 피하여 머물러 있는 자들이 많았는데 너무도 통분했다. 즉시 마땅히 규율에 따라 처벌하려 했으나 이전 일이 오히려 많고 또한 삼령(三令)의 군법이 있을 뿐 아니라, 더욱 힘을 내어 병가(兵家)의 일에 힘쓰라고 분부하셨기에 우선 그 죄를 용서하고 적발하지 않았으니 감결(甘結) 안에 갖춘 사연대로 일일이 받들어 행하라. (1593년 3월 22일 일기 이후의 메모 중 감결 초안)

▲ 거듭 약속하는 일(爲申約事). … 지난해 늦가을부터 지금까지 여러 장수들이 명령을 내리는데 마음을 다했는지의 여부를 기회와 사정에 따라 자세히 살펴보면, 혹은 먼저 진격을 외쳐 서로 다투어 돌진하여 싸우게 되는 때가 되면, 사랑하는 처자를 돌아보고 살기를 탐하여 중도에서 빠지는 자가 있었고, 혹은 공로와 이익을 탐하여 승패를 헤아리지 않고 돌진하다가 적의 손에 걸려들어 마침 나라를 욕되게 하고 몸을 죽게 하는 재앙을 만든 자가 있었다. (1593년 9월 15일 일기 이후 메모 글)

이들 감결 초안은 이순신의 명령 방식과 목적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결정과 명령조차 약속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명령을 한 이유와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설득했다. 이순신의 명령서를 읽는 부하의 입장에서는 명령이나 지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이순신과 함께 약속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리더는 결단할 때 결단하나, 다른 의견도 존중한다. 이순신은 스스로 어떤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했을까. 임진왜란이 일어나, 원균의 지원요청이 왔을 때, 그는 출전 문제에 대한 의사결정을 최대한 지연시켰다. 그 사이에 그는 조정의 의견, 부하들의 의견, 정보 파악 등을 집요하게 했다. 그런 뒤 조정의 출전 명령, 부하들의 문제제기, 일본군의 동태를 파악한 뒤 50 대 50의 순간을 60 대 40 혹은 70 대 30으로 바꿀 수 있다는 확신으로 출전을 밀어붙였다.

리더는 신이 아니다! 위임하라

▲ 난중일기중 약속 메모

일부 헛똑똑이 리더들은 자신의 경험과 지혜, 인맥을 과신해, 자신을 신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리더는 신이 아니다. 마음만 연다면, 바보에게도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세상살이이다. 크던 작던 조직을 이끄는 리더라면, 그 누구에게든 지혜를 구하려고 하고, 도움을 받으려고 해야 한다. 도움을 받는 방법 중의 하나가 위임의 기술이다. 리더가 모든 것을 다 결정하고 모든 일을 다 하려 한다면, 구성원은 들러리가 될 수밖에 없고, 성과는 리더 자신의 능력 그 이상은 얻을 수 없다. 시너지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임할 일은 위임하고, 위임해도 될 의사결정은 위임해야 한다. 훌륭한 위임의 기술은 리더의 시간과 능력을 확장시켜준다. 그 뿐만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잠재능력도 키워준다. 리더의 일은 핵심에 집중해 시간 낭비를 막고, 미래를 준비하고, 구성원의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리더가 아주 세심하게, 모든 일에 다 간여하면 단기간의 성과는 있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조직 쇠퇴의 치명적 원인이 될 뿐이다.

다른 한 편으로 리더는 의사결정이 우연의 게임이라는 것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마키아벨리가 지적하듯이 어떤 대담한 사업도 결과의 절반을 약간 넘는 부분에 운이 따른다. 좋은 운을 만드는 것도 리더의 능력이다. 리더는 항상 현장에서 정보를 모으고 상황을 감독해야한다. 현장은 의사전달체계에서 발생하는 지시-보고 왜곡에 의한 오류를 방지하는 최적의 장소이다. 또한 리더는 기회비용을 무시해야 한다.

이미 소요된 비용이나 실수를 무시해야 한다. 이미 행해진 것은 되돌릴 수 없고, 구성원의 위축을 막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말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리더는 자기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종교를 가졌다면 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귀 기울인다’이다. 기도를 통해서든 사색을 통해서든, 내면의 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것은 흔히 최종적으로 훌륭한 의사결정을 하는데 핵심요소이다.

훌륭한 의사결정이란 장점들을 결합시키는 일이다. 그 장점들은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을 열고, 다른 사람의 말은 물론 자신의 내면의 소리까지 주의 깊게 들으며, 권한을 위임하고, 최대한 시간을 벌어 판단을 깊게 하고, 운까지 고려해야 한다.

※ 이 칼럼은 <그는 어떻게 이순신이 되었나>(스타북스, 2011)에 썼던 원고를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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