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72538

'월급인상 요구' 무시하다 망한 고종... 남 일 같죠?
[역사, 그 밖의 이야기들 23편] 조선왕조 붕괴 원인은 서민경제 파탄
11.12.19 16:02 l 최종 업데이트 11.12.19 16:02 l 김종성(qqqkim2000)

서민경제가 암울했던 1960년대 초반. 서민들이 "못 살겠다!"며 절규하는 데다가 자유당의 부정선거까지 겹쳐 이승만 정권이 몰락한 그때. 이 틈을 타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던 바로 그때.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63년에 가수 도민호가 발표한 노래 한 곡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안희진 작사, 백영호 작곡인 이 노래의 제목은 <월급 올려 주세요>다. 

"이것 참 미안하지만
월급을 올려 주세요 박 사장
황소 같은 자식 놈이 여덟 명인데
부모님 합쳐서 열두 식구입니다
물가는 비싸지고 자식들은 커져서
정말로 살아가기 힘드니 어찌합니까
사장님 사장님 미안하지만
월급을 올려 주세요 박 사장 박 사장"

물가상승과 실질임금 하락으로 인한 서민들의 생활고를 담은 이 노래는 발표되자마자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동시에 정부 당국의 탄압도 불러일으켰다. 

음반을 펴낸 레코드사 대표와 악보를 펴낸 출판사 대표는 치안국(경찰청의 전신)에 연행됐다. 또 이 노래는 방송윤리위원회 산하 가요자문위원회에서 선정한 첫 번째 금지곡이 되었다. 박정희 정권 최초의 금지곡이 된 셈이다. 

이 노래가 탄압을 받은 것은 가사 속의 두 부분 때문이다. 하나는 '박 사장'이란 표현이다. '김씨·이씨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박 사장이냐, 박정희 장군을 겨냥한 것은 아니냐'는 게 정권의 시각이었다. 또 하나는 '황소'라는 표현이다. 황소는 박정희의 여당인 민주공화당의 로고였다. 

박정희 정권으로서는 이 노래가 자신들을 겨냥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서민경제 파탄의 원인을 자신들에게 돌리고 있다는 이유로 박정희 정권은 이 노래를 금지한 것이다. 

1960년대에는 박정희 정권이 군부를 확실히 장악한 데다가 이들을 지지하는 미국의 패권이 견고했다. 그 때문에, 민생고로 인한 서민의 불만이 정권을 붕괴시키는 단계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물가상승 및 실질임금 하락을 계속해서 내버려둘 경우, 이것은 외세의 침략보다도 훨씬 더 위협적인 재앙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서민경제의 붕괴는 인체의 세포조직이 와해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 남한테 몇 대 얻어맞는 것과 세포조직이 붕괴하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위험한지는 두말할 필요 없을 것이다. 

고종도 인정한 동학 농민전쟁의 원인은... 서민 경제 파탄

▲  동학농민군. 고등학교 <한국사>에 수록된 그림. ⓒ 삼화출판사

계속되는 물가상승 및 실질임금 하락이 얼마나 무서운 재앙으로 연결되는가는 동학 농민전쟁(1894년) 직전의 조선 사회에서도 잘 나타났다. 흔히 동학농민전쟁은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을 비롯한 지방관들의 부정부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민중혁명의 본질적 원인은 서민경제의 파탄에 있었다. 

만약 동학농민전쟁의 결과로 조선왕조가 전복됐다면, 국가의 무능으로 인한 서민경제의 붕괴가 문제의 근본 원인이었다는 인식이 확산됐을 것이다. 하지만, 고종 임금 즉, 이명복 주상이 외세의 도움을 빌려 그럭저럭 농민군을 꺾었기에 민란의 책임을 지방관들에게라도 돌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명복 주상 역시 문제의 본질이 서민경제에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점은 농민전쟁 발발 직후인 고종 31년 4월 27일(1894년 5월 31일)에 발포된 교서에서도 잘 나타난다. 

"내가 밤낮으로 근심하고 애쓰는 것은 백성을 위하는 일뿐인데, 백성들이 갈수록 쪼들리고 곳곳에서 소요를 일으키니 이 어찌된 연고인가?"

이렇게 시작하는 이 교서에서, 이명복 주상은 문제의 책임을 지방관들에게 돌리면서도 공공요금 인상 및 물가상승으로 인한 실질소득 인하가 민생고와 민란을 부추겼다는 점을 시인했다. 

"간혹 정부가 모르는 곳에서 제 마음대로 세금을 징수해, 토지 1결(結, 토지측정 단위)에서 거두는 양이 규정액보다 몇 배나 더 많으니, 농민들은 1년 내내 고생하고도 창고에 저축이 없다. 풍년에도 세금 바칠 돈이 모자라서 재산을 탕진하고 떠돌아다니니, 지방관들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백성을 학대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그들이 과연 나라의 법을 알고 있기나 하는가?

이른바 무명잡세(법규에도 없는 조세)를 허다하게 착취한다는 것은, 물건 하나가 시장에 들어오면 (과세) 항목을 수없이 부과하고, 배 한 척이 경계를 통과하면 항구마다 세금을 거두는 것을 가리킨다. (이 때문에) 상인과 백성들이 모두 괴로워하고 물건 살 원천이 고갈되어 물자 교역이 지장을 받고 물가가 날로 뛰니, 이런 것들은 모두 철저하게 혁파해야 한다."

민란의 원인이 물가상승과 실질소득 인하라는 점을 인정한 뒤, 이명복 주상은 "지금까지 (내게는) 이런 보고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며 다시 한 번 문제의 책임을 지방관들에게 전가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민생고에 허덕이는 서민들의 반란이 이명복 주상의 재위기간 내내 끊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농민전쟁 직전의 몇 년 동안에도 민란이 전국적으로 쉴 틈 없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들릴 법한 <월급 올려 주세요>... 사장님의 선택은?


▲  동학농민운동이 시작된 곳인 만석보 터.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에 있다. ⓒ 문화재 지리정보 서비스

예컨대, 1888년에는 고산·영흥·북청·길주에서, 1889년에는 전주·정선·통천·인제·광양·고성·수원에서, 1890년에는 안성·함창에서, 1891년에는 제주·수원에서, 1892년에는 고성·함흥·덕원·낭천·풍천·회령·종성·성천·강계·한성·청풍·황간에서, 1893년에는 함종·재령·인천·중화·개성에서 서민들이 생활고를 호소하며 민란을 일으켰다. 

계속되는 민란 끝에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발발했으니, "나는 민생고에 관한 보고를 전혀 받은 적이 없다"는 이명복 주상의 교서는 거짓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보통 정도의 관심과 주의력만 갖고 있었어도, 생활고로 인한 민란이 대규모 혁명전쟁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다. 이명복 주상은 물가상승과 실질임금 하락을 지켜보면서도 그것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주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도민호의 노래 <월급 올려 주세요>는 농민전쟁 발발 69년 뒤인 1963년에 나왔지만, 농민전쟁 직전의 서민들도 이명복 주상, 아니 '이명복 사장'을 상대로 그런 절규를 외쳤을 것이다. 그들 역시 "월급을 올려 주세요 이 사장 / 물가는 비싸지고 자식들은 커져서 / 정말로 살아가기 힘드니 어찌합니까 / 이 사장 이 사장"이라고 외쳤을 것이다. 

이명복 주상은 서민경제 파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탓에 동학농민전쟁이라는 조선왕조 최대의 민란을 자초했다. 이런 현상을 틈타 조선을 삼킨 것은 결국 외세였다. 1882년에 미국에 시장을 개방한 이래 이명복 주상은 외세를 끌어들여 도움을 얻고자 했지만, 외국 열강은 조선 시장을 계속해서 잠식했을 뿐만 아니라 농민전쟁이 발발한 틈을 타서 조선을 집어삼키려 했다. 

동학농민전쟁이 발발하자 이것을 빌미로 청·일 양국이 조선 땅에서 전쟁을 벌였고, 여기서 승리한 일본이 최종적으로 러시아마저 꺾고 조선을 강점했다. 그러니 물가상승 및 실질소득 하락으로 인한 서민경제 파탄이 결국 외세에 나라를 바치는 결과를 초래한 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조선이 국권을 빼앗긴 것은 일본이 사악하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조선 서민경제의 붕괴 역시 결정적 요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체력(서민경제)이 튼튼한 나라가 외세에게 얻어맞아서 죽는 경우는 흔치 않다. 체력이 약해졌기에 외세와의 경쟁에서 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요 <월급 올려 주세요>에서는 여덟 자식과 부모님을 모시기 힘들어하는 1960년대 서민들의 생활고가 반영돼 있다. 자식이 여덟도 아니고 하나나 둘밖에 안 되는데도, 또 부모님을 모시지 않는데도 서민들이 "물가는 비싸지고 자식들은 커져서 정말로 살아가기 힘드니 어찌합니까"라며 외친다면 어떨까. 당연히 우리 '사장님'들은 서민경제의 위기가 국운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예의주시해야 하지 않을까.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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