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02599.html

2천년전 낙랑군 인구 4만5천세대 28만명
[한겨레] 노형석 기자  등록 : 20070412 18:53 | 수정 : 20070413 09:38

윤용구씨, 평양 발굴 목간내용 첫 공개
한반도서 가장 오래된 인구조사 자료
“중국인-조선인 따로 집계 민족의식 뚜렷”


» 기원전 낙랑군의 인구, 호구 현황을 기록한 평양 출토 목간의 내용은 국내 학계에 민감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일제시대 평양 부근의 낙랑 무덤 발굴현장을 찍은 사진이다.

때는 한나라 원제가 중국 땅을 다스리던 초원 4년(기원전 45년). 고조선을 무너뜨리고 당시 한반도에서 가장 앞선 ‘문명 중심’이던 낙랑군의 관리들은 일종의 인구 센서스(호구 조사)사업을 벌였다. 군내 중국·조선 백성들의 호구 현황을 파악해 통계 수치를 나무쪽(목간)에 적어 넣는 작업이었다. 조사결과 군내 25개현의 인구는 28만명, 호수는 4만5천여세대로 나왔다. 각 현별 인구는 수백명에 불과한 마을부터 만명 이상의 대촌락까지 들쭉날쭉이었다. 조선인, 중국인 수는 따로 집계했다. 당시에도 뚜렷한 민족간 의식이 존재했던 것이다.

2000여년전의 이 통계 문서는 한반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인구 센서스 자료가 된다. 2005년 북한 평양 대동강 기슭 낙랑구역의 옛 유적에서 나온 나무쪽 문서(목간)를 판독한 결과 밝혀진 내용이다.

12일 낙랑사 연구자인 윤용구 인천시립박물관 학예실장은 오는 14일 열리는 한국 고대사학회 정기발표회(충남대)를 앞두고 이 목간 내용을 남한 학계에 처음 공개했다. 목간 내용은 지난해 입수한 북한 역사학자의 낙랑군 관련 논문에 포함된 것으로, 전체 내용과 수량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그러나 연대가 확실하고 출토 경위도 명확해 당대 낙랑군 사회의 실상을 보여주는 소중한 사료다.


» 낙랑기와

윤 실장은 “이 공문서 목간은 당시 ‘괴부’로 불리우던 통계 공문서의 일종”이라며 “출토지와 연대가 확실한,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인구 통계 자료”라고 밝혔다. 그는 기원후 2년 나온 중국 한서지리지가 낙랑군의 전체 인구만을 기록한 데 비해 이 공문서 목간은 낙랑군 25개 현별 세부적인 인구 분포도 기록해 고조선 말기상황까지 유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윤 실장이 주목한 것은 47년 뒤 중국 사서에 기록된 낙랑군 공식 인구와의 비교 검토 결과다. 그는 “47년 뒤 나온 기원후 2년 중국 한서 지리지의 기록을 보면 낙랑군 인구는 40여만명으로 호구수는 6만호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그 기간 사이 인구 증감을 계산해보면 연평균 증가율은 0.95%정도로 자연증가율보다 조금 높은 수치가 나온다”고 했다. 그는 “이로써 당시 한군현 사회가 낙랑군에서도 비교적 평탄하게 유지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현별 인구 통계가 중국인과 토착민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점과, 통계 기록을 토대로 25개 현을 어떤 경위로 만들었는지 유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윤 실장은 “고대 중국 행정구역에는 1만호를 기준으로 대현 소현을 나누는 등의 기본적 구분이 있었는데, 이 기록에는 같은 현 단위인데도 인구수의 편차가 매우 큰 점으로 미뤄 인위적 위계를 두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난다”고 해석했다. 여러 추정이 가능하나 어쨌든 자연군집적인 부락 단위로 행정구역을 편제한 것으로 보인다는 추정이다. 이는 낙랑군이 전대의 고조선 사회 구조를 해체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통치자들이 조선인 토착민들의 정서를 고려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그는 보았다.

이 목간 문서는 북한 학자의 논문에 소개된 내용만 확인되었을 뿐 목간의 모양이나 글자 모양, 전체 내용, 수량 등이 온전히 파악된 것은 아니다. 한편 북한이 90년대 발굴된 목간 중에서는 대나무쪽에 쓴 죽간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그 실제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발굴 내용에 대한 보고서 발간은 물론 발굴 결과 내용을 그동안 공식적으로 공개한 바 없다. 현재 남북한 및 중국 학계에서는 낙랑군 위치를 놓고 대동강 유역권을 주장하는 기존 통설과 중국 요서지방 주재설을 주장하는 학설(북한)이 엇갈리고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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