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db.history.go.kr/url.jsp?ID=tc
http://people.aks.ac.kr/front/tabCon/ppl/pplView.aks?pplId=PPL_2BKJ_A9999_1_0013226
http://ko.wikipedia.org/wiki/%EC%A7%84%EC%82%AC%EC%99%95
진사왕(辰斯王)
백제 제16대왕. 근구수왕의 둘째 아들. 침류왕의 동생.
생몰 : 미상∼392년(아신왕 1).
재위 : 385∼392년.
가계
부왕 : 근구수왕
모후 : 아이부인(阿爾夫人)
형 :침류왕
조카 : 아신왕
조카 : 부여훈해
조카 : 부여설례
조카
조카 : 부여홍
왕후 : ?
아들 : 여휘(餘暉)?
용맹하고 총명하고 지략이 많았다고 한다. 즉위에 대하여 《삼국사기》에는 침류왕이 죽자 태자가 어리기 때문에 숙부인 진사가 즉위하게 되었다고 하였으나 《일본서기》에는 진사가 태자 아신(阿莘)에게 돌아가야 할 왕위를 빼앗은 것으로 되어 있다. 즉위 후 남진하여 내려오는 고구려와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386년(진사왕 2) 15세 이상의 백성을 동원하여 청목령(靑木嶺: 지금의 개성)에서 북으로는 팔곤성(八坤城)에, 서쪽으로는 바다에 이르는 관방(關防)을 쌓았다.
390년 달솔(達率) 진가모(眞嘉謨)로 하여금 고구려의 도곤성(都坤城)을 공격하게 하여 200여명을 포로로 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고구려 광개토왕의 뛰어난 용병술에는 당하지 못하여, 392년 석현성(石峴城: 지금의 개풍군 청석동?) 등 10여성과 한수(漢水: 지금의 한강) 이북의 여러 부락이 고구려군에 의하여 함락되었다.
또 천연의 요새지인 관미성(關彌城: 지금의 경기도 교동도)도 함락되었다. 이렇듯 고구려의 남진에 따른 군사적 압박으로 시종 고전을 면하지 못하였고 많은 영토를 상실하였다.
죽음에 대하여 《삼국사기》에는 구원(狗原)의 행궁(行宮)에서 사냥하다가 죽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일본서기》에 따르면 침류왕의 태자 아신의 세력에 의하여 제거된 것으로 보인다.
백제 16대왕 진사왕 관련글
진사왕 - 위키 http://tadream.tistory.com/1578
진사왕(辰斯王) - 한국역대인물,한국사DB,위키 http://tadream.tistory.com/1580
백제 진사왕과 아신왕의 올바른 이해 - 대수맥 http://tadream.tistory.com/2470
http://people.aks.ac.kr/front/tabCon/ppl/pplView.aks?pplId=PPL_2BKJ_A9999_1_0013226
http://ko.wikipedia.org/wiki/%EC%A7%84%EC%82%AC%EC%99%95
진사왕(辰斯王)
백제 제16대왕. 근구수왕의 둘째 아들. 침류왕의 동생.
생몰 : 미상∼392년(아신왕 1).
재위 : 385∼392년.
가계
부왕 : 근구수왕
모후 : 아이부인(阿爾夫人)
형 :침류왕
조카 : 아신왕
조카 : 부여훈해
조카 : 부여설례
조카
조카 : 부여홍
왕후 : ?
아들 : 여휘(餘暉)?
385년 음11월 [침류왕 2년 11월 : 진사왕 1년] 침류왕 죽음, 진사왕 즉위함.
386년 음8월 [진사왕 2년 8월] 고구려가 침입함.
386년 [진사왕 2년] 청목령에서 팔곤성까지 관방(關防)을 설치
387년 음1월 [진사왕 3년 1월] 진가모를 달솔, 두지를 은솔로 삼음.
387년 음9월 [진사왕 3년 9월] 말갈과 관미령(關彌嶺)에서 싸웠으나 이기지 못함
389년 음9월 [진사왕 5년 9월 : 고국양왕 6년 9월] 고구려의 남쪽 변방을 침략함.
390년 음7월 [진사왕 6년 7월] 혜성 나타남.
390년 음9월 [진사왕 6년 9월 : 고국양왕 7년 9월] 진가모(眞嘉謨)가 고구려를 쳐 도압성(都押城)을 함락
390년 음10월 [진사왕 6년 10월] 구원에서 사냥하다가 7일 만에 돌아옴.
391년 음1월 [진사왕 7년 1월] 궁실을 수리
391년 음4월 [진사왕 7년 4월] 말갈이 북변의 적현성(赤峴城)을 침공함.
391년 음7월 [진사왕 7년 7월] 서쪽의 큰 섬에서 사냥함.
391년 음8월 [진사왕 7년 8월] 횡악 서쪽에서 사냥함.
392년 음7월 [진사왕 8년 7월] 광개토왕 4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침공
392년 음10월 [진사왕 8년 10월] 고구려 관미성 함락
392년 음11월 [진사왕 8년 11월] 구원의 행궁에서 죽음.
용맹하고 총명하고 지략이 많았다고 한다. 즉위에 대하여 《삼국사기》에는 침류왕이 죽자 태자가 어리기 때문에 숙부인 진사가 즉위하게 되었다고 하였으나 《일본서기》에는 진사가 태자 아신(阿莘)에게 돌아가야 할 왕위를 빼앗은 것으로 되어 있다. 즉위 후 남진하여 내려오는 고구려와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386년(진사왕 2) 15세 이상의 백성을 동원하여 청목령(靑木嶺: 지금의 개성)에서 북으로는 팔곤성(八坤城)에, 서쪽으로는 바다에 이르는 관방(關防)을 쌓았다.
390년 달솔(達率) 진가모(眞嘉謨)로 하여금 고구려의 도곤성(都坤城)을 공격하게 하여 200여명을 포로로 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고구려 광개토왕의 뛰어난 용병술에는 당하지 못하여, 392년 석현성(石峴城: 지금의 개풍군 청석동?) 등 10여성과 한수(漢水: 지금의 한강) 이북의 여러 부락이 고구려군에 의하여 함락되었다.
또 천연의 요새지인 관미성(關彌城: 지금의 경기도 교동도)도 함락되었다. 이렇듯 고구려의 남진에 따른 군사적 압박으로 시종 고전을 면하지 못하였고 많은 영토를 상실하였다.
죽음에 대하여 《삼국사기》에는 구원(狗原)의 행궁(行宮)에서 사냥하다가 죽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일본서기》에 따르면 침류왕의 태자 아신의 세력에 의하여 제거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日本書紀
百濟政治史硏究(盧重國, 一潮閣, 1988)
百濟王位繼承考(李基白, 歷史學報 11, 1959)
백제 16대왕 진사왕 관련글
진사왕 - 위키 http://tadream.tistory.com/1578
진사왕(辰斯王) - 한국역대인물,한국사DB,위키 http://tadream.tistory.com/1580
백제 진사왕과 아신왕의 올바른 이해 - 대수맥 http://tadream.tistory.com/2470
'백제 > 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국사기 제25권] 백제본기 : 제16대 아신왕 - apache630 (0) | 2011.12.24 |
---|---|
아신왕(阿莘王) - 차석찬 (0) | 2011.12.24 |
아신왕(阿莘王) - 한국역대인물,한국사DB,위키 (0) | 2011.12.17 |
진사왕 - 위키 (0) | 2011.12.17 |
아신왕 - 위키 (0) | 2011.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