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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지 않았던 ‘착한’ 집회, 대통령이 “잠이 보약”이라 말하는 이유
[기자수첩] 길들여진 국민들, 권력이 허용한 경계 넘지 못해…경계를 넘는 국민만이 권력에게 위협이다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2016년 11월 15일 화요일
       
분노한 국민 100만명이 모였는데 평화로웠다. 광화문 일대는 대규모 인파가 모였던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성숙한 시민들의 비폭력 평화시위였다’는 칭찬이 언론을 뒤덮었다. 12일 촛불집회는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을 뿐이다. 민심은 권력이 허용한 범위를 넘지 못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대통령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기 직전인 지난달 21일 경찰의날 기념행사에서 박 대통령은 “법 위에 군림하는 떼법 문화와 도로 위 난폭운전, 불법 파업과 불법시위, 온라인상 난무하는 악성댓글과 괴담 등 일상 속에서 법질서 경시 풍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며 “그 어떤 불법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심기를 건들지 않은 집회에 불편해하지 않았다. 13일 중앙선데이 보도에 따르면 “밖은 영하 10도인데, 청와대는 영상10도”로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뜻대로 물러날 생각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 시국을 돌파할 대책을 세우는 중이고 공동책임자인 여당은 탄핵을 외치며 대통령과 선을 그었다.


▲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에는 100만명의 시민이 참가했다. 사진=최창호 way PD

국민이 할 수 있는 건 없는가? 국민은 대통령을 내보내고 싶은데 국민의 뜻을 대리한다는 국회는 탄핵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지 않는다. 물론 탄핵도 절차상 수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하야를 원한다는 메시지는 청와대에 전달됐지만 하야의 주체는 국민이 아닌 대통령이다. 국민은 대통령을 찾아가 직접 묻고 싶은 것도 많다. 하지만 ‘성숙한 시민’은 법을 지켜야 한다.

지난 5일 서울 한복판에 20만명의 시민이 모였다. 12일 민중총궐기에 100만명이 모일 것이란 보도가 집회 전부터 나왔다. 1960년 4·19혁명과 1987년 6월항쟁에 버금가는 진보를 기대했다. 두 혁명은 최근 집회와 어떤 차이가 있었나?

권력이 허용한 경계를 넘었나

1960년 5월11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앞으로 모든 집회는 예정일 일주일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발표했다. 4·19혁명 전후에도 정권에 항거하는 집회는 금지됐다. 3·15부정선거 이후 이승만 정권 총에 맞아 사망한 시민은 185명, 부상자는 1500명이 넘었다. 시민들은 ‘집회에 참가하면 죽일 것’이란 경계마저 넘었다.


▲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이 왼쪽눈에 최루탄을 직격으로 맞은 모습. 사진=연합뉴스

그럼에도 4·19혁명 결과 이승만이 물러났을 뿐이다. 외무장관이었던 허정의 과도정부는 5월3일 “반공주의 정책을 진전시킨다. 부정선거 처벌은 고위책임자와 잔학행위자로 한정한다. 혁명적 정치개혁을 비혁명적 방법으로 단행한다. 미국의 행위를 내정간섭이라 운운하는 건 이적행위다. 한일관계를 정상화한다.” 등 다섯 가지 정책을 발표했다.

4·19혁명은 기존 룰을 바꾸자고 요구하지 못했다. 정해진 룰을 잘 지키면 새 세상이 올 거라 믿었다. 억압적인 체제가 바뀌지 않는다면 규칙 자체가 국민의 뜻과 무관하게 만들어질 수 있다.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원칙은 헌법 책에만 있다. 사회가 합의해 권력을 대표자에게 양도했다고 전제했지만 국민은 이에 합의한 적이 없다.

1987년 분위기도 비슷하다. 고문으로 숨진 대학생 박종철 추도대회를 앞둔 2월6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경찰은 해당 집회를 ‘불법집회’라고 경고했다. 같은달 5일 법무부장관은 폭력집회를 경고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6·10국민규탄대회’를 앞두고 시민들이 모이는 걸 막으려는 전두환 정권의 의지는 전방위로 표출됐다.

당시 문교부는 각 대학에 학사일정 준수와 시위용품 사전 수거 등을 지시했고, 각 학교는 학부모들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내 집회참석에 따른 불이익을 경고했다. 검찰은 해당 집회를 불법집회로 규정했고, 주동자와 적극가담자를 의법조치할 방침이라 발표했다. 검찰과 경찰은 단순가담자까지 연행해 A·B·C·D 4등급으로 나눴다. 지방원정가담자, 주동자 등 A급은 전원 구속하기로 했다.

모이지 말라는 정권의 방침을 시민들은 어겼다. 6월11일자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6·10국민규탄대회를 봉쇄했지만 전국에서 10일 오후 6시부터 산발적인 가두시위가 계속됐다. 학생들이 한국은행을 지키던 전경 40여명을 폭행하고, 불을 지르는 등 충돌도 있었다. 이날 경찰은 화염병 등 22만여 점의 시위용품을 압수했고 3000명 이상을 연행했다.

6월항쟁으로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는 새 시대를 열 것이라고 기대됐다. 그런 분위기에서도 대선을 두 달 앞둔 10월 권복경 치안본부장은 “정치집회에서 불순세력 등에 의한 폭력행위는 관련자를 모두 검거, 전원 구속을 원칙으로 수사하겠다”고 발표했다.(동아일보 1987년 10월23일자) 경계를 넘는 국민만이 권력에게 위협이었다.


▲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경찰 차벽에 가로막혀있다. 사진=최창호 way PD

털끝하나 건들지 못한 집회

박근혜 하야를 촉구하는 12일 집회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은 청와대 800m 앞까지 행진을 허용했다. 재판부는 “집회를 조건없이 허용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4·19혁명이나 6월항쟁과 다르다. 집회 자체를 금지한 상황에서도 100만명이나 모인 과거를 청와대 앞까지 행진을 허용한 현재와 같게 볼 수 없다.

정치(Politic)는 사라지고 치안(Police)만 남은 이번 집회를 성숙하다고만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시민들은 권력자의 눈으로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한다. 법은 위정자들이 전혀 위협으로 느끼지 않는 1인 시위만 자유롭게 허용한다. 특히 이명박 정부 이후 차벽밖에 멈춘 집회를 대통령은 그저 감상할 뿐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비폭력 집회를 주장하는 이들이 인도의 지도자 간디를 거론하기도 한다. 핵심은 불복종이다. 경찰이 폭력을 쓰더라도 시민들은 권력의 요구에 복종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청와대에 갈수도 있고 가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안 간 것이 아니다. 대통령을 왕의 변형된 이미지로 이해하는 한국사회 분위기가 더 우려스럽다.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던 경찰벽 100여m 뒤에는 평화시위만이 옳다고 믿는 국민들이 노래하고 춤추고 있었다. 평화시위를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광장마저 평등하지 않고, 평화시위엔 무기력한 외면도 있다는 뜻이다. 소박한 삶을 지켜내는데 사용하는 폭력은 공격적이고 살인적인 폭력과 같지 않다.

‘준법의식이 투철한 순수한 시민’을 위축시키는 것은 ‘집회에서 폭력과 불법을 사용하지 않았느냐’다. 프락치가 폭력을 조장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면 시민들은 더욱 위축된다. 집회가 평화롭다고 정부가 칼날을 거두는 것도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에 따르면 2012년 이후 불법폭력집회는 줄어들었는데 검거된 집회 참가자 수는 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해 폭발적으로 분노하는 이면에는 내가 뽑은 대통령은 뭘 해도 용인되지만 사실 어떤 민간인이 했다는 배신감도 있다. 박근혜를 뽑았던 이들이 더욱 분노한데 이런 배경이 있는 건 사실이다. 누구도 지배하지 않고 누구도 지배받지 않는다는 민주주의 원리와 완전히 배치된다.

후퇴해있는 국민들에겐 카드조차 없다. 국민들은 대통령을 세울 수도 있고 내 손으로 끌어내릴 수도 있는 주권자의 위치에 있지 않다. 청와대를 막는 경찰에게 폭력을 쓸 수 있거나 평화로운 문화제 형식으로 집회를 할 수 있는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평화를 택한 게 아니다.


▲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에는 100만명의 시민이 참가했다. 사진=최창호 way PD

분노한 100만 명이 모였다면 경찰과 충돌이 아니더라도 시민들끼리 다툼도 발생할 수 있다. 파편화된 대중이 아닌, 갈등과 불화를 녹여낸 시민들이 끈끈한 연대의 힘을 갖는다. 그 때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에게 위임한 권력을 끌어낼 방법도 상상할 수 있다. 지난 5일 중·고등학생들이 “혁명정권 세워내자”고 주장했다. 혁명은 새로운 상상력이다.

“기성 육법전서를 기준으로 하고/ 혁명을 바라는 자는 바보다/ 혁명이란/ 방법부터가 혁명적이어야 할 터인데/ 자유당이 감행한 정도의 불법을/ 혁명정부가 구육법전서를 떠나서/ 합법적으로 불법을 해도 될까 말까 한/혁명을—/ 불쌍한 것은 이래저래 그대들뿐이다”(김수영, 육법전서와 혁명, 60년 5월25일)

이 싸움은 ‘나쁜 왕(박근혜)’을 끌어내리는 데 있지 않다. 대리인을 왕의 변형된 형태로 머무르게 하지 않고 국민 뜻에 복종하게 하는데 있다. 권력자가 허용한 민주주의는 언제 철회될지 모른다. 시민들의 요구는 영영 대통령을 겨눌 수 없는가? 이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한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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