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3111744001
촛불과 재판, 느린 여정이 완성한 ‘2017년 민주주의’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입력 : 2017.03.11 17:44:00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안국역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며 헌재 선고를 기다리던 시민들이 탄핵이 확정되자 환호하고 있다./정지윤기자
“촛불집회에 매주는 아니더라도 몇 번 나갔어요. 광화문광장에서 남대문(숭례문)까지 사람들로 가득 찬 장면을 보면서 굉장히 벅찼습니다.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할 때만 해도 박근혜(전 대통령)가 금방 물러날 것만 같은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되면서 지치는 느낌이었어요.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숨죽여 있던 태극기 집회나 박근혜 측 변호인의 이상한 소리로 스트레스 받고, 잘 안 풀리는 느낌이 들었달까요. 탄핵이 헌재에서 기각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면서 불안해지기도 하구요. 설마 안 되진 않겠죠?”
수도권에 거주하는 회사원 심영철씨(35)가 헌재의 탄핵심판 하루 전인 9일 털어놓은 말에는 시민으로서 ‘촛불정국’을 보내면서 쌓인 피로감이 느껴졌다. 10일 헌재가 재판관 8명 전원일치의 의견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하면서 심씨의 불안은 날아갔다. 지난해 10월 29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내건 첫 번째 촛불집회가 열린 날로부터 132일이 걸렸다. 심씨의 말마따나 지루함과 불안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던 ‘느린 혁명’이었다.
입법·사법·행정부와 시민사회가 각기 헌법적 권한을 행사하고 법률적 절차를 밟고 시스템을 준수하는 과정에서 촛불정국은 길어졌다.
■청와대 앞 200m까지 다가간 촛불
2500여개 시민사회 단체들이 모여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을 결성했고, 총 19차례의 촛불집회가 열렸다. 주최 측 추산으로 3월 4일 기준 누적 1558만명이 참여했다. 촛불집회와 관련해 사법처리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시민들은 법원 가처분신청을 인용해 청와대 앞 200m까지 다가갔다. 지난해 12월 2일 예정된 야3당의 탄핵안 발의가 새누리당 의원들의 불참을 우려해 유보되자 시민들은 새누리당사 앞에서 당기를 찢고,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문자와 카카오톡 메시지로 분노를 쏟아냈다. ‘박근핵닷컴’도 등장했다. 경찰은 시민들의 청와대 행진을 제한했으나 퇴진행동은 시민들의 집회의 자유를 제한해선 안 된다는 법원의 가처분신청을 이끌어내 당당하게 행진했다. 집회 관련 구속자 등이 없었던 이유였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9일 찬성 132명, 반대 56명, 기권 7명, 무효 2명으로 헌정 역사상 두 번째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탄핵 찬성 여부를 두고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갈라졌다. 청문회를 열어 미르·K스포츠재단의 불법모금과 관련해 재벌 총수들이 줄줄이 방청석에 불려나와 고개를 숙였다. 청문회에서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 탈퇴”를 약속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특검에 의해 구속됐다. 권력 실세였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 등으로 특검에 의해 구속됐다.
특검 수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국정농단과 관련해 언론사들은 특종을 쏟아냈다. 전경련의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 차은택씨의 광고회사 강탈 및 거래 의혹, 최순실씨의 국정개입 정황이 담긴 태블릿 PC 보도 등이었다. 검찰은 이에 더해 최순실씨(61)가 딸 정유라씨(23)의 초등학교 친구 아버지의 민원까지 해결해줬다는 등 몇 가지 사실을 더 찾아내, 박 전 대통령을 ‘피의자’로 기소했다. 검찰의 이 조치는 국회가 탄핵소추를 추진 가능하도록 한 결정적인 사법적 근거를 제공했다. 언론 보도와 검찰, 특검의 수사 결과는 헌재의 탄핵심판 과정에서 증거로 제출됐고, 결정문에 반영됐다. 헌재는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접수된 지난해 12월 9일부터 선고일까지 92일간 세 차례의 준비절차기일과 17차례의 변론에서 25명의 증인을 심문하고, 4만8000여쪽의 증거조사 자료를 검토한 끝에 마침내 파면을 결정했다.
대통령 탄핵의 첫 단추는 시민들이, 마지막 단추는 사법부가 채웠다. 촛불정국은 ‘제왕적 대통령’이기에 가능한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으로 시작됐다. 4·19와 87년 6월항쟁의 마무리는 대통령직 하야와 직선제 개헌 동의라는 대통령의 결단으로 최종 마무리됐다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시스템이 마무리했다. 입법·사법·행정·언론 시스템이 제 기능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트위터 이용자 눈썹달(@canyue_)씨는 “대한민국은 38년 만에 부당한 권력을 살해 대신 재판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고 트위터에 적었다. 1979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박정희 대통령 시해와 비교한 것이었다. 그는 <주간경향>과의 쪽지 인터뷰에서 “현 정부의 무능과 부패와 전횡에 우리가 87년에 만든 헌법적 절차를 통해 평화적이고 민주적 방식으로 승리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32일의 느린 혁명은 30년 전 마련한 헌법이 제 기능을 어떻게 발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과정이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촛불과 재판, 느린 여정이 완성한 ‘2017년 민주주의’
■입법·사법·행정·언론 시스템이 제 기능
3월 10일 오전 11시21분.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결정문 낭독이 끝나자마자 서울 안국동 헌법재판소 앞에서는 시민들의 환호가 터졌다. 서울역 대형 TV 앞에서도, 중·고등학교 교실과 대학교 강의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최순실씨 등)의 국정농단은 시스템 없이 나라가 운영되는 모습을 보여줘 국민의 공분을 샀다. 망가졌다고만 생각했던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설계 원리를 재확인하고, 또 그것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스스로 만들어낸 시민들의 기쁨은 컸다. 심씨에게 문자로 탄핵 소회를 묻자 “친구들과 오늘 치맥으로 축하할 겁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탄핵심판’을 통해 재발견한 시스템의 원리 중에는 ‘법’과 ‘정치’의 관계도 있다. 헌재의 탄핵을 통한 정권 심판은 우려도 있었다. 사법이 정치를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세 차례 촛불집회가 열린 뒤인 지난해 11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탄핵에 완전히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아직은 탄핵을 우선순위에 놓아서는 안 된다. 여전히 문제는 법이 아니라 정치로 풀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홍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실제로 잘못한 것과 범죄화될 수 있는 것과의 간극은 너무나 크다. 직권남용죄와 기밀누설죄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려는 검찰 수사라면 더욱 그렇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거대한 정치적 문제가 법의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왜곡되고 문제가 축소되는 것”이라며 탄핵심판 절차에 들어가기에 앞서 ‘법’이 아닌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헌재의 탄핵 결정문에는 최순실씨의 민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화체육관광부 노태강 전 국장, 진재수 전 과장을 해임시킨 일이나(공무원임면권 남용), 정윤회씨의 국정농단 의혹의 보복조치로 풀이되는 <세계일보> 사장 교체(언론의 자유 침해), 세월호 참사 대응은 탄핵사유에서 제외됐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이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통한 최순실씨의 국정개입을 방조하고 적극 감싼 것과 정경유착의 혐의를 중대한 탄핵 사유로 인정했다.
이는 세월호 참사 대응 등에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라, 사법절차의 특성에 헌법재판의 특성까지 고려한 것으로 봐야 한다. 헌재는 세월호와 관련해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는 규범적으로 그 이행이 관철될 수 없으므로 원칙적으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어,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 결정상의 잘못 등 직책 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그 자체로는 소추사유가 될 수 없다”며 “세월호 사고는 참혹하기 그지 없으나, 세월호 참사 당일 피청구인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였는지 여부는 탄핵심판 절차의 판단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할 것”이라고 결정문에서 밝혔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부 탄핵사유 배제 등은) 헌재의 판결이 대통령의 권한을 제어하는 ‘가이드라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부족하다고도 볼 수 있다”면서도 “헌재는 이번에 촛불민심에 승복하고, 국민 다수의 여론인 대통령 퇴진을 정당화시켜주는 역할에 충실했다”고 평가했다. 한 교수는 “만약에 세월호 문제 등에 헌재가 세세한 의견을 냈다면 또 반론이 등장하고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오히려 헌재가 판단을 유보함으로써, 검찰 수사나 별도의 진실규명을 할 여지를 열어놓았다”며 “헌재는 사법적으로 명확한 사안만을 들어 충분히 탄핵의 정당성을 설명하되, 김이수·이진성 두 재판관의 소수의견으로 남겨놓고 계속 시민사회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나갈 여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소수의견 밝혀 시민사회 과제 남겨
‘법’에 의한 빠른 해결이 아니라 ‘정치’에 의한 느린 해결은 다행히도 탄핵심판 절차에서 꾸준히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하는 날 더불어민주당은 제1당에 배정된 방청석 40석을 모두 세월호 유가족에게 배정했다.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그해 12월 5일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88년 5공 청문회와 관련된 분의 자제 여섯 분이 여기 있다”며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이번에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촛불시민들이 가장 많이 외치는 구호는 ‘박근혜 퇴진’이며, 그 다음은 ‘전경련 해체’였다”며 이재용 부회장에게 “전경련 해체에 앞장서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서 새로운 경제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약속하느냐”고 질문을 던져 “그러겠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전경련은 재정의 30%를 담당하던 삼성의 탈퇴로 사실상 와해 수준이다. 청문회 이틀 전 탄핵안 의결 보류에 분노한 시민들의 ‘문자폭탄’ 세례 이후 이어진 장면이다. 이혜훈 바른정당 의원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인터넷에 새누리당 의원들의 전화번호가 공개돼 국민들의 문자메시지가 쏟아진 것이 입장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누구 엄마, 어디 아파트 주민이라고 오는 문자들을 보니, 동원된 것이 아니라 순수한 시민의 뜻이라는 것이 느껴져 마음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헌정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은 ‘촛불’과 ‘재판’이라는 두 개의 축을 통해 돌아갔다. ‘촛불’에서 ‘재판’으로 넘어가기까지의 연결고리를 입법부와 행정부 산하 수사당국 등이 만들었다. 탄핵정국을 촉발한 제왕적 대통령은 비제왕적 방식으로 무너졌다. ‘법치의 재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석주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정치경제학 전공)는 “법치는 판사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승복하는 것으로만 오해되는데, 시민들이 정해놓은 약속으로서의 법을 정부 등 권력기관이 위반하고 제도 내에서 해결하지 못할 때, 최후의 수단으로서 시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장한다”며 “탄핵정국은 ‘법치’의 실현과정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조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특히나 두 차례의 탄핵심판은 1987년 마련한 시스템이 결정적일 때는 작동하는 것을 보여줬다”고도 밝혔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심판에서는 의회의 당파적 이유로 작은 잘못을 트집잡아 물러날 뻔한 것을 막았고, 2017년에는 촛불민심의 뜻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이 물러나도록 했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개헌’이라는 큰 그림보다 30년 동안 숙성시킨 제도와 헌정질서를 슬기롭게 활용하고 운용하는 데 달렸다는 의미다. 조 교수는 “현재의 헌법은 1987년 30년 전에 만든 헌법이 아니라 헌재 결정 등을 통해 30년 동안 계속 축적하고 바꿔온 헌법”이라고 말했다.
10일 박근혜 대통령 파면이 결정되자 퇴진행동은 “탄핵은 변화의 시작일 뿐이며, 촛불은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퇴진행동은 이날 낸 ‘촛불항쟁 승리 선언문’에서 “오늘 우리는 주권자들의 승리를 선언한다”며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를 파면한 것은 시민들의 의지를 수용한 것일 뿐, 박근혜를 물러나게 한 것은 바로 우리들”이라고 밝혔다. 퇴진행동은 “박근혜 탄핵은 변화의 시작일 뿐이고 광장의 촛불은 지속되고 더 넓게 퍼질 것”이라며 “불안정한 미래와 권리 없는 일터, 차별과 경쟁의 헬조선 등의 일상을 바꾸기 위해 일터와 사회에서도 촛불을 들 것”이라고 밝혔다.
촛불과 재판, 느린 여정이 완성한 ‘2017년 민주주의’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입력 : 2017.03.11 17:44:00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안국역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며 헌재 선고를 기다리던 시민들이 탄핵이 확정되자 환호하고 있다./정지윤기자
“촛불집회에 매주는 아니더라도 몇 번 나갔어요. 광화문광장에서 남대문(숭례문)까지 사람들로 가득 찬 장면을 보면서 굉장히 벅찼습니다.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할 때만 해도 박근혜(전 대통령)가 금방 물러날 것만 같은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되면서 지치는 느낌이었어요.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숨죽여 있던 태극기 집회나 박근혜 측 변호인의 이상한 소리로 스트레스 받고, 잘 안 풀리는 느낌이 들었달까요. 탄핵이 헌재에서 기각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면서 불안해지기도 하구요. 설마 안 되진 않겠죠?”
수도권에 거주하는 회사원 심영철씨(35)가 헌재의 탄핵심판 하루 전인 9일 털어놓은 말에는 시민으로서 ‘촛불정국’을 보내면서 쌓인 피로감이 느껴졌다. 10일 헌재가 재판관 8명 전원일치의 의견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하면서 심씨의 불안은 날아갔다. 지난해 10월 29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내건 첫 번째 촛불집회가 열린 날로부터 132일이 걸렸다. 심씨의 말마따나 지루함과 불안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던 ‘느린 혁명’이었다.
입법·사법·행정부와 시민사회가 각기 헌법적 권한을 행사하고 법률적 절차를 밟고 시스템을 준수하는 과정에서 촛불정국은 길어졌다.
■청와대 앞 200m까지 다가간 촛불
2500여개 시민사회 단체들이 모여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을 결성했고, 총 19차례의 촛불집회가 열렸다. 주최 측 추산으로 3월 4일 기준 누적 1558만명이 참여했다. 촛불집회와 관련해 사법처리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시민들은 법원 가처분신청을 인용해 청와대 앞 200m까지 다가갔다. 지난해 12월 2일 예정된 야3당의 탄핵안 발의가 새누리당 의원들의 불참을 우려해 유보되자 시민들은 새누리당사 앞에서 당기를 찢고,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문자와 카카오톡 메시지로 분노를 쏟아냈다. ‘박근핵닷컴’도 등장했다. 경찰은 시민들의 청와대 행진을 제한했으나 퇴진행동은 시민들의 집회의 자유를 제한해선 안 된다는 법원의 가처분신청을 이끌어내 당당하게 행진했다. 집회 관련 구속자 등이 없었던 이유였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9일 찬성 132명, 반대 56명, 기권 7명, 무효 2명으로 헌정 역사상 두 번째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탄핵 찬성 여부를 두고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갈라졌다. 청문회를 열어 미르·K스포츠재단의 불법모금과 관련해 재벌 총수들이 줄줄이 방청석에 불려나와 고개를 숙였다. 청문회에서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 탈퇴”를 약속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특검에 의해 구속됐다. 권력 실세였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 등으로 특검에 의해 구속됐다.
특검 수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국정농단과 관련해 언론사들은 특종을 쏟아냈다. 전경련의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 차은택씨의 광고회사 강탈 및 거래 의혹, 최순실씨의 국정개입 정황이 담긴 태블릿 PC 보도 등이었다. 검찰은 이에 더해 최순실씨(61)가 딸 정유라씨(23)의 초등학교 친구 아버지의 민원까지 해결해줬다는 등 몇 가지 사실을 더 찾아내, 박 전 대통령을 ‘피의자’로 기소했다. 검찰의 이 조치는 국회가 탄핵소추를 추진 가능하도록 한 결정적인 사법적 근거를 제공했다. 언론 보도와 검찰, 특검의 수사 결과는 헌재의 탄핵심판 과정에서 증거로 제출됐고, 결정문에 반영됐다. 헌재는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접수된 지난해 12월 9일부터 선고일까지 92일간 세 차례의 준비절차기일과 17차례의 변론에서 25명의 증인을 심문하고, 4만8000여쪽의 증거조사 자료를 검토한 끝에 마침내 파면을 결정했다.
대통령 탄핵의 첫 단추는 시민들이, 마지막 단추는 사법부가 채웠다. 촛불정국은 ‘제왕적 대통령’이기에 가능한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으로 시작됐다. 4·19와 87년 6월항쟁의 마무리는 대통령직 하야와 직선제 개헌 동의라는 대통령의 결단으로 최종 마무리됐다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시스템이 마무리했다. 입법·사법·행정·언론 시스템이 제 기능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트위터 이용자 눈썹달(@canyue_)씨는 “대한민국은 38년 만에 부당한 권력을 살해 대신 재판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고 트위터에 적었다. 1979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박정희 대통령 시해와 비교한 것이었다. 그는 <주간경향>과의 쪽지 인터뷰에서 “현 정부의 무능과 부패와 전횡에 우리가 87년에 만든 헌법적 절차를 통해 평화적이고 민주적 방식으로 승리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32일의 느린 혁명은 30년 전 마련한 헌법이 제 기능을 어떻게 발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과정이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촛불과 재판, 느린 여정이 완성한 ‘2017년 민주주의’
■입법·사법·행정·언론 시스템이 제 기능
3월 10일 오전 11시21분.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결정문 낭독이 끝나자마자 서울 안국동 헌법재판소 앞에서는 시민들의 환호가 터졌다. 서울역 대형 TV 앞에서도, 중·고등학교 교실과 대학교 강의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최순실씨 등)의 국정농단은 시스템 없이 나라가 운영되는 모습을 보여줘 국민의 공분을 샀다. 망가졌다고만 생각했던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설계 원리를 재확인하고, 또 그것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스스로 만들어낸 시민들의 기쁨은 컸다. 심씨에게 문자로 탄핵 소회를 묻자 “친구들과 오늘 치맥으로 축하할 겁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탄핵심판’을 통해 재발견한 시스템의 원리 중에는 ‘법’과 ‘정치’의 관계도 있다. 헌재의 탄핵을 통한 정권 심판은 우려도 있었다. 사법이 정치를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세 차례 촛불집회가 열린 뒤인 지난해 11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탄핵에 완전히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아직은 탄핵을 우선순위에 놓아서는 안 된다. 여전히 문제는 법이 아니라 정치로 풀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홍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실제로 잘못한 것과 범죄화될 수 있는 것과의 간극은 너무나 크다. 직권남용죄와 기밀누설죄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려는 검찰 수사라면 더욱 그렇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거대한 정치적 문제가 법의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왜곡되고 문제가 축소되는 것”이라며 탄핵심판 절차에 들어가기에 앞서 ‘법’이 아닌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헌재의 탄핵 결정문에는 최순실씨의 민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화체육관광부 노태강 전 국장, 진재수 전 과장을 해임시킨 일이나(공무원임면권 남용), 정윤회씨의 국정농단 의혹의 보복조치로 풀이되는 <세계일보> 사장 교체(언론의 자유 침해), 세월호 참사 대응은 탄핵사유에서 제외됐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이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통한 최순실씨의 국정개입을 방조하고 적극 감싼 것과 정경유착의 혐의를 중대한 탄핵 사유로 인정했다.
이는 세월호 참사 대응 등에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라, 사법절차의 특성에 헌법재판의 특성까지 고려한 것으로 봐야 한다. 헌재는 세월호와 관련해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는 규범적으로 그 이행이 관철될 수 없으므로 원칙적으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어,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 결정상의 잘못 등 직책 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그 자체로는 소추사유가 될 수 없다”며 “세월호 사고는 참혹하기 그지 없으나, 세월호 참사 당일 피청구인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였는지 여부는 탄핵심판 절차의 판단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할 것”이라고 결정문에서 밝혔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부 탄핵사유 배제 등은) 헌재의 판결이 대통령의 권한을 제어하는 ‘가이드라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부족하다고도 볼 수 있다”면서도 “헌재는 이번에 촛불민심에 승복하고, 국민 다수의 여론인 대통령 퇴진을 정당화시켜주는 역할에 충실했다”고 평가했다. 한 교수는 “만약에 세월호 문제 등에 헌재가 세세한 의견을 냈다면 또 반론이 등장하고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오히려 헌재가 판단을 유보함으로써, 검찰 수사나 별도의 진실규명을 할 여지를 열어놓았다”며 “헌재는 사법적으로 명확한 사안만을 들어 충분히 탄핵의 정당성을 설명하되, 김이수·이진성 두 재판관의 소수의견으로 남겨놓고 계속 시민사회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나갈 여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소수의견 밝혀 시민사회 과제 남겨
‘법’에 의한 빠른 해결이 아니라 ‘정치’에 의한 느린 해결은 다행히도 탄핵심판 절차에서 꾸준히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하는 날 더불어민주당은 제1당에 배정된 방청석 40석을 모두 세월호 유가족에게 배정했다.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그해 12월 5일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88년 5공 청문회와 관련된 분의 자제 여섯 분이 여기 있다”며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이번에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촛불시민들이 가장 많이 외치는 구호는 ‘박근혜 퇴진’이며, 그 다음은 ‘전경련 해체’였다”며 이재용 부회장에게 “전경련 해체에 앞장서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서 새로운 경제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약속하느냐”고 질문을 던져 “그러겠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전경련은 재정의 30%를 담당하던 삼성의 탈퇴로 사실상 와해 수준이다. 청문회 이틀 전 탄핵안 의결 보류에 분노한 시민들의 ‘문자폭탄’ 세례 이후 이어진 장면이다. 이혜훈 바른정당 의원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인터넷에 새누리당 의원들의 전화번호가 공개돼 국민들의 문자메시지가 쏟아진 것이 입장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누구 엄마, 어디 아파트 주민이라고 오는 문자들을 보니, 동원된 것이 아니라 순수한 시민의 뜻이라는 것이 느껴져 마음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헌정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은 ‘촛불’과 ‘재판’이라는 두 개의 축을 통해 돌아갔다. ‘촛불’에서 ‘재판’으로 넘어가기까지의 연결고리를 입법부와 행정부 산하 수사당국 등이 만들었다. 탄핵정국을 촉발한 제왕적 대통령은 비제왕적 방식으로 무너졌다. ‘법치의 재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석주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정치경제학 전공)는 “법치는 판사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승복하는 것으로만 오해되는데, 시민들이 정해놓은 약속으로서의 법을 정부 등 권력기관이 위반하고 제도 내에서 해결하지 못할 때, 최후의 수단으로서 시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장한다”며 “탄핵정국은 ‘법치’의 실현과정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조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특히나 두 차례의 탄핵심판은 1987년 마련한 시스템이 결정적일 때는 작동하는 것을 보여줬다”고도 밝혔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심판에서는 의회의 당파적 이유로 작은 잘못을 트집잡아 물러날 뻔한 것을 막았고, 2017년에는 촛불민심의 뜻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이 물러나도록 했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개헌’이라는 큰 그림보다 30년 동안 숙성시킨 제도와 헌정질서를 슬기롭게 활용하고 운용하는 데 달렸다는 의미다. 조 교수는 “현재의 헌법은 1987년 30년 전에 만든 헌법이 아니라 헌재 결정 등을 통해 30년 동안 계속 축적하고 바꿔온 헌법”이라고 말했다.
10일 박근혜 대통령 파면이 결정되자 퇴진행동은 “탄핵은 변화의 시작일 뿐이며, 촛불은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퇴진행동은 이날 낸 ‘촛불항쟁 승리 선언문’에서 “오늘 우리는 주권자들의 승리를 선언한다”며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를 파면한 것은 시민들의 의지를 수용한 것일 뿐, 박근혜를 물러나게 한 것은 바로 우리들”이라고 밝혔다. 퇴진행동은 “박근혜 탄핵은 변화의 시작일 뿐이고 광장의 촛불은 지속되고 더 넓게 퍼질 것”이라며 “불안정한 미래와 권리 없는 일터, 차별과 경쟁의 헬조선 등의 일상을 바꾸기 위해 일터와 사회에서도 촛불을 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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