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349446
"진실 외면할 수 없어서" 힌츠페터가 남긴 취재기 '뭉클'
[기획] "죽으면 망월동에 묻어 주오" 광주를 사랑한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글 김윤정(cascade) 편집 곽우신(gorapakr) 17.08.10 18:10 최종업데이트 17.08.10 19:09
▲5·18 취재 당시의 위르겐 힌츠페터와, 배우 토마스 크레취만이 연기한 영화 <택시 운전사> 속 힌츠페터.ⓒ 위르겐 힌츠페터/쇼박스
영화 <택시 운전사>가 개봉 만 6일 만에 5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영화는 1980년 5월, 세상과 단절돼 있던 광주로 들어가 진실을 알린 독일의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싣고 광주로 달린 서울의 택시 운전사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날의 광주와, 광주 시민들의 이야기는 언제 어떤 식으로 만나도 가슴 속에 뜨거운 울림을 준다. <택시 운전사>는, 여기에 새로운 한 사람을 소개했다. 그날의 광주를 목격한 푸른 눈의 목격자,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다.
위르겐 힌츠페터는 독일 제1공영방송의 기자로, 일본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중 우연히 '계엄령 하의 광주에서 시민과 계엄군 충돌'이라는 짤막한 뉴스를 접하게 된다. 그리고 5·18 이튿날인 19일,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황석영, 이재의, 전용호가 쓴 광주 5월 민주항쟁 기록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대부분의 외신 기자들이 21일에야 광주로 향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힌츠페터의 육감은 남달랐다. 당시 외국 기자가 국내에서 취재하려면 국가홍보원에 신고해야 했지만, 그는 광주 취재 허가를 받는 것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해 아예 신고를 하지 않고 광주로 잠입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가 5·18 민주화 운동을 취재한 기자들의 글을 엮어 발간한 <5·18 특파원리포트>에는 힌츠페터가 직접 쓴 당시 취재기가 담겨있다. '카메라에 담은 5·18 광주 현장' 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그때 한국 상황은 기묘해서 우리 일행의 입국 사실을 정부의 외국인 취급기관 공무원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계엄령이 선포된 뒤 엄중한 언론 통제가 한반도 전역에서 이뤄지기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통제를 받고 싶지 않았다"고 당시 기자 신분을 감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연락이 끊긴 직장 상사를 찾으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광주에 잠입한 그는 자신을 열렬히 환영하는 광주 시민들과 만나게 된다. 세상과 단절된 채 섬처럼 고립돼 있던 광주시민들은 외신 기자들을 진실을 광주 밖으로 알려줄 수 있는 희망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는 곧 보고도 차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힌츠페터의 기록, 광주 진실 밝히는 '증거' 됐다
▲힌츠페터가 촬영한 1980년 5월 광주의 모습.ⓒ KBS
"병원 안에 줄줄이 놓여 있던 많은 관을 열어 그들의 사랑하는 친구와 가족을 내게 보여주었다. 대부분 어린 학생들의 시체였는데 몽둥이에 맞아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머리는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간신히 참으며 이 비참한 광경을 필름에 담았다."
"내 생에 한 번도 이런 비슷한 상황을 목격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베트남 전쟁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할 때도 이렇듯 비참한 광경은 본 적이 없었다. 가슴이 너무 꽉 막혀서 사진 찍는 것을 잠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로 돌아온 뒤, 아침 일찍 일본항공 일등석을 예매했다. 일등석 승객이 되면 의심받지 않고 내 물건이 손가방처럼 쉽게 통과돼 안전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 예상은 적중했다. 나는 필름을 큰 금속 캔에 담긴 과자 더미 속에 숨겼다. 또 필름을 단단한 금속 포장과 파란색 리본으로 화려하게 꾸며 선물처럼 보이려고 노력했다."
- 한국기자협회, < 5·18 특파원리포트 > 중에서
▲힌츠페터는 해외 신문을 가져와 시민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전세계가 광주의 진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시민들과 언론인들에게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KBS
과자 더미 속에 묻혀있던 광주의 진실은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독일로 보내졌고, 바로 독일 제1공영방송 뉴스를 통해 전 세계로 방송됐다. 광주의 참상이 알려지자,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곧 ABC, CBS, 뉴욕타임스 등 세계 유수 언론의 기자들이 광주로 모여들었고, 광주로 돌아온 힌츠페터 역시, 그들과 함께 계속해서 진실을 기록했다. 오늘날 광주의 참상을 증언하고 있는 영상 자료의 대부분은 힌츠페터가 촬영한 것이다.
힌츠페터는 1980년 9월, '기로에 선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것은 물론, 국내 언론의 침묵과 왜곡 보도로 광주를 '폭동'으로만 알고 있던 많은 이들에게 광주의 진실을 전하는 '결정적 증거'가 되어 주었다. 전두환 정권의 철통같은 통제에도 전국의 대학가와 성당 등에서 비밀리에 상영됐고, 많은 대학생들을 민주화운동으로 이끄는 역할을 했다.
▲광주에서 나오며 군인들의 검문 검색을 받고 있는 힌츠페터 일행. 이렇게 무사히 광주를 빠져나온 힌츠페터는 필름을 쿠키 깡통 속에 숨겨 일본으로 가져갔다.ⓒ KBS
힌츠페터는 1980년 광주항쟁 이후에도, 1989년 일본 특파원 생활을 마칠 때까지 지속적으로 한국 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갖고 취재를 이어갔다. 1986년에는 광화문 시위를 취재하다 사복 경찰에게 구타당해 목과 척추에 중상을 입기도 했다고. 이때 얻은 부상의 후유증과 심장병으로 은퇴 후 오랫동안 고생했다.
그리고 2003년. 힌츠페터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현장을 지켰던 치열한 기자정신이 국민의 양심을 깨워 이 땅의 민주화를 앞당겼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제2회 송건호 언론상을 받았다. 당시 그는 "오로지 내 눈으로 진실을 보고 전하려는 생각뿐이었다"면서 "용감한 한국인 택시기사 김사복과, 헌신적으로 도와준 광주의 젊은이들이 없었다면 다큐멘터리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라는 수상소감을 전하며, 공을 한국인들에게 돌렸다. 그리고 이 수상소감은 영화 <택시 운전사>의 모티브가 됐다.
힌츠페터가 기록한 그날의 영웅들
▲힌츠페터가 기록한 광주의 진실은, 곧바로 독일 제1공영방송을 통해 전세계로 전해졌다. 그의 보도를 접한 여러 외신 기자들도 광주로 향해 진실을 기록했다.ⓒ KBS
"나는 그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를 모두 들었다. 너무 슬퍼 눈물을 흘리면서도 나는 기록했다. 한국 언론에서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진실이 얼마나 위험한 가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내 필름에 기록된 모든 것은 내 눈앞에서 일어났던 일. 피할 수 없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 KBS 1TV <푸른 눈의 목격자> 중에서
계엄령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외친 시민들, 부상자들을 실어 나른 택시 운전사들, 집에 있는 거즈와 재봉틀로 시민군의 마스크를 만든 부녀회원들, 무료로 음식을 내어준 시장 상인들... 1980년 광주에는 많은 영웅들이 있었다. '폭도'로 내몰릴 뻔했던 그들이 영웅으로 기억될 수 있었던 데는, 갖은 위협에도 기록을 멈추지 않은 용감한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있었다.
▲ 처음으로 80년 광주 5월의 참상을 타전한 독일 언론인 위르켄 힌츠페터씨가 추모제에 참석해 상념에 젖기도 했다. 바로 옆 그의 부인은 시종 눈시울을 붉혔다.ⓒ <광주드림> 안현주
그는 2005년 광주민주화운동 2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회고록을 집필하는 등 2016년 1월 25일 사망할 때까지 광주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았다. 2005년 내한 당시 "한국민들은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를 위해 숨진 사람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사망 후에는 "광주 망월동에 묻히고 싶다"던 그의 생전 소망에 따라, 손톱과 머리카락 등 그의 신체 일부가 광주 망월동 묘지에 안장됐다. 망월동 옛 5·18 묘역 한편에 자리한 그의 무덤에는 최근 영화 <택시 운전사>를 통해 힌츠페터를 알게 된 많은 이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광주시 역시 추모비 정비를 시작했다고. 지난 8일 한국을 찾은 아내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도 영화 <택시 운전사> 관람 후 광주 묘역을 방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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