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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80년 5·18 출동헬기 조종사 “기관총 실탄 2천발 싣고 작전”
등록 :2017-08-28 21:41 수정 :2017-08-28 22:46

당시 헬기 조종사 등의 검찰 고소장 입수 “벌컨포·기관총 무장…지상군 엄호”진술
“새로 5·18진상규명위원회 구성되면 조종사 등 불러 사격 여부 재조사해야”


1989년 <광주문화방송>이 80년 5월을 다룬 <어머니의 노래>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뒤 검찰에 고 조비오 신부와 제작진을 고소한 헬기 조종사들의 검찰 진술 조서.

1980년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된 군 헬기들이 벌컨포나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2000발의 실탄을 싣고 작전 임무를 수행했다는 육군 헬기 조종사들의 진술이 확인됐다. 지금까지 무장헬기 군 관련 자료나 항공단장 등 지휘관, 전역한 병사들의 관련 발언은 공개됐지만, 헬기 조종사의 신원과 무장 상태 등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28일 <한겨레>가 확보한 5·18 당시 광주에 출동했던 헬기 조종사 16명과 무장사 1명 등 17명이 1989년 서울지검에 낸 고소장을 보면, 육군 61항공단과 31항공단 헬기 조종사들이 벌컨포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채 실탄 2000발을 싣고 광주로 출동했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모두 헬기 사격 사실은 부인했다. 당시 출동한 헬기들은 수송 헬기인 UH-1H, 공격 헬기인 AH-1J(일명 코브라), 500MD 등 3개 기종이다. 군 자료인 <광주소요사태분석(교훈집)-항공 작전지원 내용>에는 80년 5월29일까지 광주 일원에 헬기 31대가 운용됐다고 기록돼 있다.


80년 5월 당시 광주에 출동한 헬기 조종사들의 검찰 진술 조서.

31항공단 소속 500MD 부조종사(당시 준위) ㄱ씨는 “5월22일부터 28일까지 광주비행장에 주둔하면서 전투교육사령부(전교사)의 지시에 따라 공수여단장을 탑승시켜 전교사와 광주교도소를 왕래했다”며 ”7.62㎜ 기관총 2000발로 무장했다”고 진술했다. 코브라 헬기를 조종했던 31항공단 소속 부조종사(당시 대위) ㄴ씨는 “5월21일부터 28일까지 지상군 이동 시 공중엄호 비행 임무를 맡았다”며 “20㎜ 벌컨 고폭탄을 적재했다”고 주장했다. 61항공단 소속 500엠디 정조정사(당시 대위)도 “최초 7.62㎜ 기관총 무장을 하고 광주 도착했다”고 말했다. 세 사람은 모두 “사격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헬기에 각종 무기 장착을 맡은 무장사(당시 중사) ㄷ씨는 “5월20일부터 철수 시까지 작전에 참가한 코브라 2대에 20㎜ 무장을 장전하였다”며 “사격은 실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위대에게 최루가스를 뿌렸다는 500MD 조종사의 증언도 있다. 제1항공여단 소속 500MD 부조종사(당시 소위)는 “5월 17일 오후 1시부터 오후 2시30분까지 전남대 상공에서 가스 살포했다”고 진술했다.


‘광주소요사태분석(교훈집)-항공 작전지원 내용’

이들의 진술은 89년 2월 <광주문화방송>이 만든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을 다룬 첫 방송 프로그램 <어머니의 노래>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 등을 검찰에 고소하면서 이뤄졌다. 고소인은 당시 광주에서 헬기를 지휘했다는 송진원(1항공여단장), 방영제(31항공단장), 이정부(103항공단장)씨 등 3명이지만, 검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광주시 5·18진실규명지원단 안길정 연구원(박사)은 “80년 5월 무장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광주시민의 주장은 매우 구체적인데, 검찰이 헬기 사격 수사를 무성의하게 종결했다”며 “향후 조사권이 있는 5·18 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되면 이들의 명단을 확인해 헬기 사격 여부를 재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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