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46533

"'고구려 유민' 고선지 장군, 나폴레옹보다 낫다"
[한국 고대사 속속들이 17편] 고선지의 소발율국 정복기
11.04.04 13:07 l 최종 업데이트 11.04.04 15:43 l 김종성(qqqkim2000)


▲  한·중 합작 드라마 <양귀비 비사>의 고선지(이승현 분). ⓒ 중국 북경경도세기문화발전유한공사 

망국 고구려의 유민으로서 당나라는 물론, 저 멀리 중앙아시아까지 명성을 날린 고선지(?~755년). 

그는 한민족의 DNA에 내장된 대륙에의 욕구를 맘껏 분출한 인물이다. 고구려라는 틀에 갇혀 있었다면, 그가 그런 족적을 남길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고선지가 활약한 서기 8세기. 이 시기에는 이슬람권과 당나라의 대결이 격렬했다. 문명의 충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세기의 접전이 벌어졌다. 서아시아를 장악한 이슬람권은 자신의 문명을 동쪽으로 전파하려 했고, 동아시아를 제패한 당나라는 자기의 문명을 서쪽으로 전파하려 했다. 

이런 상황에서 티베트가 이슬람권과 제휴했다. 또 중앙아시아는 이슬람권과 티베트 편에 가세했다. 이슬람권과 당나라의 중간 지역이 대거 이슬람 편을 지지함에 따라 당나라의 안보는 위협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동시에, 그것은 동아시아 문명권의 위기이기도 했다.  

이런 국면에서 그야말로 혜성처럼 출현한 인물이 바로 고선지였다. 당나라 역사서인 <구당서> '고선지 열전'에 따르면,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로 끌려간 것으로 보이는 고사계(高舍鷄)의 아들로 태어난 고선지는, 20대 초반에 중국 서북부에서 유격장군에 특채되어 장군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중앙아시아에 인접한 지역에서 장군의 반열에 오른 탓에, 그는 중앙아시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의 책임은 중앙아시아에 대한 이슬람권 및 티베트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냈다. 이슬람권 및 티베트와 동맹을 맺은 70여 나라로부터 항복을 받아냈으니, 그렇게 평가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고구려 유민' 고선지의 성공 비결은?

고선지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고선지 열전'에서는 "고선지는 용모가 수려하고, 말 타기와 활쏘기를 잘했으며, 날래고 용감하고 과단성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의 성공을 일군 또 다른 특성이 있다. 그것은 1999년 미국 영화 <식스 센스>에 못지않은 '반전(反轉)의 연출력'이다.

서기 747년, 고선지는 티베트 편에 가세한 소발율국을 응징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 소발율국은 지금의 카슈미르 서북부에 있었다. 이 나라를 치기 위해 그는 1만 병력을 꾸렸다. 또 소발율국 언어를 구사하는 병사들도 확보했으며, 특수 작전에 사태에 대비해 소발율국 군복도 확보했다. 그뿐 아니라, 사령관 자신만이 아는 특수요원들도 부대 안에 잠입시켰다.  


▲  인도대륙 서북부에 있는 카슈미르. 검정 사각형 위쪽에 ‘카슈미르’란 글자가 쓰여 있다. 출처는 고등학교 <지리부도>. ⓒ 지학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행군에 나선 고선지 부대는 약 3개월 만에 사막을 가로지르고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을 넘었다. 소발율국 수도 아노월성으로 가자면, 티베트 군사기지인 연운보(連雲堡)를 먼저 공략해야 했다. 이곳을 지키는 티베트군은 여유만만이었다. 고선지 부대가 자신들을 공격하려면 파륵천(婆勒川)이라는 급류를 건너야 했기 때문이다. 

고선지가 도착한 시점은 우기였다. 물이 엄청나게 불어나 있었던지라, 대규모 부대가 파륵천을 건너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상대편이 건너오지 못할 것이라 확신한 티베트군은 마치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고선지 부대를 구경했을 것이다. 

"안 될 거야!"라며 부대 전체가 낙담하고 있을 때, 고선지는 파륵천 앞에서 한가롭게 제사를 올렸다. 티베트 병사들은 이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보며 "무슨 마술이라도 부리려나 보다" 하며 비웃었을 것이다. 제사를 마친 고선지는 부대원들에게 "3일치 식량만 챙겨서 이른 새벽에 하천에 집결하라"고 지시했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파륵천 앞에 도열한 부하들에게 그는 '무조건 도강하라!'고 명령했다. 

병졸들에게 명령을 전달할 휘하 장교들마저 다들 황당해 했지만, 누구도 군령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목숨을 거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도강에 성공한 이 부대는 자신들이 강을 건넜다는 사실에 감격한 나머지, 사기충천해서 함성을 지르며 적진으로 달려들었다. '고선지 열전'에 따르면, 고선지 부대는 적군 5천 명을 죽이고 1천 명을 생포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도, 하천에서 솟아오르는 물도 막지 못한 고선지의 집념이 낳은 결과였다. 

고선지의 아노월성 점령, 정말 우연이었을까

이제 남은 일은 아노월성으로 진격하는 것이었다. 고선지는 허약한 병사 3천 명을 남겨두고 7천 명 정도를 이끌고 다음 단계 작전에 돌입했다. 

아노월성으로 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거기로 가자면 힌두쿠시산맥을 넘어야 했고 그중 한 봉우리인 탄구령(다르호트 고개)을 넘어야 했다. 탄구령은 해발 4600미터가 넘는다. 백설과 빙하로 덮인 곳이었다. 그런 곳을 7천 병력과 함께 오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설령 탄구령에 오른다 해도, 그 다음이 더 큰 문제였다. 탄구령에서 아노월성 쪽으로 하산하려면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따라 내려가야 했다. 혼자 해도 쉽지 않은 일을,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수행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애당초 시도도 하지 않을 일이었다. 


▲  A는 파미르 고원, B는 힌두쿠시산맥. 출처는 고등학교 <지리부도>. ⓒ 보진재

이번에도 고선지는 등정을 강행했다. 고선지 부대는 파륵천을 건널 때처럼 또다시 목숨을 걸고 산을 올랐다. 산을 오르면서 고선지는 부하들을 수없이 독려하고 다독였을 것이다. 

사료 속 정황을 볼 때, 이 과정에서 고선지는 무척 바쁘게 움직였다. 산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서 죽을 지경인데, 어디서 힘이 샘솟는지 고선지는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가 측근 장교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적도 있을 정도다. 딴 때 같으면 사령관의 소재를 파악하느라 바빴을 그들은, 산을 오르기도 쉽지 않은 터라 고선지를 일일이 따라다닐 겨를이 없었다. 

고선지는 몸만 바쁜 게 아니라 입도 무척 바빴다. 측근들이 있는 데서, 그는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고선지 열전'에 따르면, 그는 "아노월성 사람들이 항복해준다면 그거 참 좋을 텐데!"라며 중얼거렸다. 숨이 벅찬 측근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뿐이었다. '본래 낙천적인 장군이니, 이런 상황에서까지 적의 항복을 기대하나 보다' 했을 것이다. '정말 그런 일이 생긴다면' 하고 일말의 기대감을 가진 측근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고선지 부대는 겨우겨우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접근한 부대원들이 성취감에 빠졌으리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성취감은 잠시였다. 아노월성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 길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던 것이다. 

산은 오르기보다 내려가기가 더 힘든 법. 그냥 내려가는 것도 아니고 절벽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으니, 그들의 절망감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절망감이 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고선지가 그런 사실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저 산만 넘으면 아노월성으로 갈 수 있으니, 다들 힘내자!"고 말했던 것으로 보인다. 병사들 사이에서 "장군에게 속았다!"는 탄식이 나왔을 법도 하다. 

부대원들은 고선지의 명령을 따르려 하지 않았다. 이제까지는 고선지를 믿고 따라왔지만, 더 이상은 도리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들이 두 눈으로 목격한 상황은 천하의 고선지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병졸들만 그랬던 게 아니다. 심지어 장교들까지 불평을 늘어놓았다. '고선지 열전'에 의하면, 측근들은 "장군께서는 도대체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라며 항의했다. 고선지가 어딘가 이상한 데로 자신들을 데리고 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저 고구려 놈이 우리를 다 죽이겠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부대원들이 하나같이 고선지를 욕하는 이 순간. 고선지의 리더십이 땅에 떨어지려는 이 순간. 정말로 기적 같은 일이 발생했다. 20명의 소발율국 기병들이 탄구령에 나타나서 "우리 아노월성은 진심으로 당신들을 환영합니다"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소발율국에서 문제가 생겨 항복을 선택했다고 판단한 부대원들은 갑자기 힘이 용솟음쳤다. 그들은 "아노월성 사람들이 항복해준다면 그거 참 좋을 텐데!"라고 중얼거리던 고선지의 선견지명을 갑작스레 찬양하기 시작했다. 

'탄구령의 기적'을 보고 고선지에게 다시금 확신을 가진 부대원들은 두려움 없이 하산했고, 그 길로 맹렬히 진격해서 아노월성을 점령하고 소발율국 왕과 공주를 생포했다. 이로써 고선지는 이 지역에 대한 이슬람권 및 티베트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탄구령 정상에서 부대원들이 집단적으로 항명하고 있을 때 소발율국 병사들이 등장해서 항복 사실을 통지해주지 않았다면, 고선지 부대는 아노월성을 점령하기는커녕 내분으로 붕괴되었을지도 모른다. 부대원들은 하늘이 고선지 장군을 돕는다고 판단했기에, 그 같은 최악의 상황에서 최대의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은 정말로 우연이었을까? '되감기 버튼'을 눌러 '동영상 파일'을 앞으로 되돌려보자. 

탄구령의 기적은 고선지의 작품이었다


▲  힌두쿠시산맥. ⓒ 위키페디아 백과사전

탄구령에 오르는 동안, 고선지는 병사들을 독려하느라 무척 바빴을 것이다. 그 사이 그는 잠시 측근들의 시야에서 이탈했다. 그는 20명의 병사들과 은밀한 접촉을 가졌다. 그들은 특수 임무를 위해 고선지가 부대 안에 심어둔 비밀요원들이었다. 이중에는 소발율국 언어에 능숙한 병사들도 있었다. 

고선지는 그들에게 소발율국 군복을 입고 남몰래 부대에서 이탈하도록 했다. 본진을 이탈한 그들은 말을 타고 다른 길을 따라 은밀히 탄구령으로 이동했다. 이 20명은 본진보다 먼저 탄구령에 도착한 뒤 그 근처에 숨어 있었다. 

얼마 안 있어 본진이 탄구령에 나타났다. 처음에는 환호하던 본진이 나중에는 불평하는 장면을 이들은 목격했다. 장교들이 고선지에게 "장군께서는 도대체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라고 불평하는 모습도 지켜보았다. 

고선지가 부대원들로부터 고립되려는 순간, 이 20명은 부대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소발율국 언어로 "우리 아노월성은 진심으로 당신들을 환영합니다"라고 외쳤다. 고선지가 사전에 준비해둔 각본을 그들은 충실히 이행했다. 


▲  반전 영화의 대표작인 <식스 센스>. ⓒ 미국 스파이글래스 엔터테인먼트 

탄구령의 기적은 고선지의 작품이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각본에 따라 준비된 쇼였다. 이런 쇼가 아니고서는 7천 병력을 이끌고 탄구령을 넘을 수 없다고 판단한 고선지의 선견지명이 낳은 결과였다. 물론 정직한 방법은 아니지만, 그런 쇼가 없었다면 고선지 부대는 탄구령에서 그냥 되돌아가야 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탄구령의 기적을 그저 우연으로 받아들였을 부대원들은 '귀국한 연후에야' 전후 내막을 알고, 한편 씁쓸하고 한편 허탈했을 것이다. 그때 가서 고선지를 욕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 차라리 한 편의 반전 영화를 감상했다고 생각하는 게 더 편했을 것이다.  

그들이 '귀국한 연후에야' 그 사실을 알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고선지가 귀국 전까지 탄구령의 비밀을 철저히 보안에 부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대원들을 데리고 귀국하자면 탄구령을 한 번 더 넘어야 했기에, 그는 근질근질한 입을 꾹 참아야 했을 것이다. 

망국 고구려의 유민으로서 중국 서북쪽까지 흘러들어가 당나라 장군이 된 고선지. 그는 이국 땅에서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꿈을 키워나갔다. 자기 조국을 멸망시킨 당나라 사람들을 지휘하게 된 그는, 한편으로는 그들을 힘껏 격려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반전의 연출력'으로 그들을 깜빡 속이기도 하면서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 나갔다. 

영국 고고학자 오럴 스타인은 고선지가 나폴레옹보다 낫다고 했다. 그는 "고선지의 업적은 한니발과 나폴레옹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평했다. 나폴레옹이 통과한 알프스(해발 2500미터)보다 고선지가 통과한 탄구령이 훨씬 높다고 해서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다. 이슬람권으로부터 동아시아를 지켜냈다는 문명사적 공헌을 포함해서 갖가지 탁월한 역량들을 볼 때, 고선지가 나폴레옹보다 훨씬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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