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811264.html?_fr=mt1
최순실 특종 1년…“목표는 단 하나 ‘최찾사’였어요”
등록 :2017-09-17 09:53
[토요판] 뉴스분석
‘최순실 특종’ 1년 인터뷰, ‘최순실이 K재단 배후’ 첫 보도
‘정유라 이대 비리’ 안민석 특종, 기자-정치인 협력에 촛불 활활, ‘JTBC’ 태블릿 보도로 더 위력
김의겸 전 ‘한겨레’ 기자 “처음부터 팀 목표는 최순실” “민주정부는 실력으로 승부해야”
안민석 민주당 의원 “국정농단 뿌리인 돈 찾아내야 검찰 수사 왜 안 하는지 의아”
▶ 신임을 잃은 최고 권력자는 평화적으로 쫓겨나고, 새 정부는 합법적으로 출범했습니다. 세계 민주주의 역사의 새 장을 연 대한민국의 ‘2016 촛불혁명’입니다. 그 시작은 지난해 9월20일 <한겨레>의 ‘최순실 보도’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후 이화여대 입시 비리 사건과 태블릿 피시의 등장은 촛불을 확산하는 기폭제가 됐습니다. 처음 불을 댕긴 김의겸 전 <한겨레> 선임기자와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지난 12일 국회 안 의원 사무실에서 만났습니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과 김의겸 전 <한겨레> 선임기자가 12일 국회 안 의원 사무실에서 만나 1년 전 시작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안 의원은 “<한겨레>와 김 기자가 역사를 바꿨다”고 말했으며, 김 전 기자는 “안 의원이 특종한 정유라의 이대 비리 문제가 촛불혁명의 기폭제가 됐다”고 평가했다. 두 사람 앞에 당시 상황을 기록한 책 <끝나지 않은 전쟁>(안민석 지음)과 <최순실 게이트-기자들, 대통령을 끌어내리다>(한겨레 특별취재반 지음)이 놓여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겨레>와 김의겸 기자가 역사를 바꿨다.” “안민석 의원님이 끈질기게 최순실 문제를 파고들어 피부에 와닿는 이대 입시 비리 등을 밝혀냈기에 촛불이 확 타올랐다.”
안민석 의원(51·경기 오산)과 김의겸(54) 전 <한겨레> 선임기자는 만나자마자 서로 상대에게 공을 미뤘다. 실제로 두 사람은 대한민국사에 기록될 ‘2016년 촛불혁명’을 불붙인 대표적 주역이다. 김의겸은 지난해 9월20일 ‘대기업 돈 288억 걷은 K스포츠재단 이사장은 최순실 단골 마사지 센터장’이라는 <한겨레> 1면 기사를 통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문을 열었다. 안민석은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문제를 찾아내 게이트 확산의 불쏘시개를 제공했다.
-꼭꼭 숨겨져 있던 최순실의 이름을 어떻게 지면에 끄집어낼 수 있었나?
김의겸(김) “특별취재팀을 구성한 게 9월2일이었다. 나와 류이근, 방준호 기자 3명(이후 강희철, 송호진, 하어영 기자 합류)으로 시작했다. 미르재단 및 케이(K)스포츠재단 이사 등 10여명의 명단을 놓고 검토하던 중에 케이스포츠 정동춘 이사장이 눈에 띄었다. 서울 압구정동에서 ‘시아르시(CRC)운동기능회복센터’라는 스포츠 마사지 센터를 운영하는 사람이 청와대가 나서서 만든 재단의 이사장이 된 게 너무 이상했다. 틀림없이 최순실과의 연결 고리가 있다는 느낌이 와서 방준호 기자한테 현장에 가서 알아보라고 했다. 막상 찾아간 센터는 5월에 이미 폐업한 상태였다. 며칠 동안 성과가 없어서 팀을 해체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던 차에 방 기자가 구글링으로 운동기능회복센터의 공동 창업자였던 이아무개씨 연락처를 찾았다. 전화 연결이 된 이씨는 경계심 없이 최순실이 센터의 고객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발로 뛰고 구글링해 얻은 특종
-특별 취재의 출발점은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관심이었다고 하던데?
김 “지난해 7월과 8월 조선일보사와 청와대가 전면전을 벌였다. <조선일보>와 <티브이(TV)조선>은 우병우 수석과 박근혜 정부에 대해 맹공을 퍼붓고, 청와대는 <조선일보>에 대해 ‘부패 기득권 세력’이라고 역공했다. 가장 긴밀한 관계에 있던 사람들이 왜 저러나 궁금증이 생겨서 여기저기 탐문했다. 내막을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검찰의 한 고위 인사가 ‘김 기자가 지금 잘못 짚고 있다. 우병우는 헛다리다. 본질은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이며, 그 뒤에는 최순실이 있다고 하더라. 그게 8월19일이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정신이 확 깼다. 보통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특별취재반 구성을 편집국장한테 건의했다.”
강희철도 비슷한 시점에 이 문제에 대한 특별 취재를 별도로 제안했다. <한겨레>가 특별취재팀을 구성할 당시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에 대한 각종 의혹은 <티브이조선>에서 이미 상당히 많은 내용을 보도한 상태였다. 이 방송은 지난해 7월6일부터 김종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의 전횡에 대한 기사를 시작으로 지난해 8월18일까지 한달 이상 두 재단에 대한 고발성 기사를 잇따라 보도했다. 2014년 10월부터 최순실의 측근이었던 고영태의 제보로 단독 취재를 해왔던 이 방송은 재단 설립에 관여한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이름까지 보도했다. 하지만, 최순실의 의상실 동영상(2014년 12월 말)과 주차장 동영상(2016년 7월)을 확보해 놓고도 8월 중순 이후에는 침묵하고 있었다.
-<티브이조선>에서 대부분 훑고 간 상태여서 처음에 막막했을 것 같다.
김 “<티브이조선>이 안종범만 끄집어냈지 최순실 얘기까지는 안 한 채, 외압 때문인지 뭔지 몰라도 보도를 중단했다. 그래서 우리는 핵심인 최순실만 찾으면 된다고 봤다. 다행히 <티브이조선>은 주로 미르재단을 취재하고 케이스포츠 쪽은 거의 안 건드렸다. 케이스포츠를 우리가 집중해서 파면 최순실과의 연결 고리가 나올 것이라고 보고 뛰어들었는데 운 좋게 맞았다.”
-그래서 특별취재팀 이름을 ‘최찾사’(최순실을 찾는 사람들)라고 지었나?
김 “그렇다. 3명이 만난 첫날 ‘우리 목적은 분명하다, 최순실을 찾는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처음부터 그걸 목표로 하고 출발했다.”
안민석(안) “<한겨레> 보도 전에도 케이스포츠재단하고 최순실이 관계가 있다는 의심을 갖고 있었는데 기사를 보고는 퍼즐이 맞춰졌다. 그때부터 나도 정유라 뒤쫓기에 다시 뛰어들었다.”
안민석은 첫 보도가 나간 직후 김의겸에게 “기사 잘 봤다. 서로 같이 할 부분이 있으면 같이 하자”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2014년 4월 임시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최순실의 이름을 최초로 꺼냈다. 전해인 2013년 봄 상주 승마대회에서 정유라가 2등을 하자 경찰들이 나서 심판을 조사하고, 문체부를 동원해 승마협회를 뒤지고 일방적인 조치를 반대한 문체부 간부(노태강 국장, 진재수 과장)를 경질한 사실을 폭로했다. 그는 당시 “보이지 않는 검은 손이 작용한 거 아니냐. 문제가 된 정아무개(정유라)는 대통령 최측근으로 불리는 정윤회씨의 딸이며, 어머니는 최태민 목사의 딸 최순실”이라고 언급했다. 그 뒤 그는 두번의 검찰 수사(둘 다 무혐의 처분)를 받고, 2016년 20대 총선 때에는 당시 새누리당의 공천심사위원장인 이한구로부터 ‘떨어뜨려야 할 5인방’ 중 한명으로 지목받는 등 정치적 탄압을 당했다.
기자보다 뛰어난 안민석의 취재력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 및 학점 특혜 보도는 9월27일 <한겨레>가 했지만, 특종은 안 의원이 하지 않았나.
안 “우연이 겹쳐서 필연을 만들었다. 전문가들과 함께 발족시키기로 한 ‘수영교육연구회’ 첫 준비 모임이 지난해 9월22일 오후 서울교육대학교에서 있었다. 먼저 도착한 참석자들이 날도 더우니 아이스크림이나 먹자면서 학교 앞 아이스크림 전문점에 갔다. 나는 아이스크림 가게는 처음이었는데 속으로 ‘회의나 빨리 하지 무슨 아이스크림이냐’고 툴툴댔다. 가게 앞 의자에 앉아 환담을 하는 중에 한 대학교 교수가 ‘최순실이 이대에 찾아가서 딸의 지도교수한테 행패를 부렸다더라’라고 얘기했다. 그 순간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2년 동안 찾아다닌 정유라의 행적을 마침내 찾은 것이다. 그 자리에서는 그 최순실이 대통령과 가까운 최순실이 맞다는 것만 확인하고는 더 묻지 않았다. 모임이 끝난 뒤에 그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이대 지도교수(함정혜)가 누군지를 알아냈다. 다음날 함 교수와 친한 중앙대 전선혜 교수한테 그런 일이 있었는지를 슬쩍 물어보라고 부탁했다. 돌아온 답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들은 내용 그대로였다. 당시 윤동주 시낭송회 행사 때문에 중국 용정(룽징)에 가 있었는데 바로 류이근 기자한테 전화해서 취재를 부탁했다.” 김 “아이스크림 가게 건은 안 의원이 기자보다 훨씬 더 기자다웠다. 단서를 잡았으나 무식하게 들이대지 않고 내밀하게 접근하면서 거의 완벽하게 초벌 취재를 끝낸 솜씨가 보통 아니다. 류 기자가 함 교수를 만나 확인 취재함으로써 기사화가 가능했지만, 안 의원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안 “이런 일은 언론과 정치인이 협력하면 시너지 효과가 매우 크다. 기자는 상대가 누구든 취재할 수가 있고, 정치인은 공적 자료 등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화여대 건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김 “후배한테 얘기를 들었을 때는 본질은 미르와 케이재단이고, 이건 곁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이대 사건은 촛불에 나온 10대와 20대의 가슴에 불을 지른 기폭제였다. 또, 다른 언론들이 최순실 건을 보도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다. 9월20일부터 며칠 동안 계속 <한겨레>가 미르와 케이재단 문제를 보도했지만 <경향신문> 빼고 다른 언론은 권력의 눈치를 보는 건지 전혀 안 따라왔다. 정유라 문제가 터지고, 28일 이화여대에서 현장 국정감사가 열리자 그때부터 모든 언론이 취재 경쟁에 뛰어들었다.”
안 “국정감사가 원래 26일 월요일부터 시작됐어야 하는데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국감을 보이콧하면서 28일로 연기된 것도 절묘했다. 국감장에서 우리 방 비서관과 전재수 의원이 이대 학칙을 살피다가 각각 우연하게 정유라를 위한 특혜 조항(국외 훈련이나 시합도 수업 참석으로 인정)을 찾아냈다. 대학을 쥐고 흔든 최순실의 농단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10월24일 <제이티비시>(JTBC)가 최순실의 태블릿 피시 보도로 국정농단 사건은 또다른 국면으로 넘어갔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상황 반전을 위해 그날 낮에 국회에서 띄운 개헌론도 맥을 못 췄다.
안 “지난해 촛불혁명을 돌아보면 두차례 화산 폭발이 있었다. 1차 화산은 최순실과 이대였고, 2차 화산이 태블릿이었다. 1차가 없었더라면 2차 화산도 터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김 “맞다. 흐름을 보면 9월20일 최순실 이름에 이어 이대 문제가 터지니까 <제이티비시>도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갔다. <제이티비시>가 특별취재반을 만든 게 아마 10월3일이었던 걸로 안다. 그들이 열심히 한 결과 더블루케이 사무실 관리인의 도움으로 결정적 물증인 태블릿 피시를 확보했다. 방송이 신문보다 직접 피부에 와닿는 매체라는 점에서 보도의 위력이 더 있었다. 대특종을 놓쳐서 허탈한 심정이 없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역사의 간지가 작용한 것 같다.”
“추 대표, 최순실재산특위 요구에 묵묵부답”
-1년 동안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 출범 등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감회가 어떤가.
김 “<티브이조선>과 <한겨레>, <제이티비시> 등 언론이 촛불을 점화시킨 것은 맞는데 연인원 2천만명이 나오는 혁명으로 진화한 것은 국민의 힘이었다고 본다. 촛불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가 보수-진보가 아닌 정의와 불의의 문제로 개념이 바뀌고, 국민들이 최소한의 정의 관념을 갖게 된 것 같다. 역사의 흐름이 촛불로 크게 바뀌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등장이 상층부에서의 권력 교체였다면 지난 촛불은 밑바닥 토양부터 바꾼 아래로부터의 정권 교체였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와 앞으로 올 민주정부는 이제 남 탓을 할 수 없다. 오로지 자기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안 “북핵 문제와 여소야대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많이 몰리고 있다. 야당에 끌려다니는 답답한 상황을 보면서 국민들은 이러려고 지난겨울에 촛불을 들었나 싶은 심정일 거다. 아래로부터 변화를 이뤄서 만든 정권이기에 지금부터라도 문 정부는 야당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런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미국에 대해서도 한-미 동맹을 지키되 국민을 믿고 더 당당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계획은 뭔가.
안 “박근혜-최순실 문제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핵심은 돈이다. 국정농단의 뿌리인 돈을 찾아내서 환수해야 한다. 내가 그동안 독일을 다섯차례나 방문해서 최순실 등이 숨겨놓은 은닉재산의 단서를 많이 찾았다. 검찰이 수사를 하면 되는데 이걸 안 하고 있다. 일개 국회의원도 했는데 왜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 당도 마찬가지다. 최순실재산찾기특위를 만들자고 추미애 대표에게 몇달 전부터 요청했는데 응답이 없다.” 지난 7월 <한겨레>를 그만둔 뒤 쉬고 있는 김의겸은 “현재로선 아무런 계획이 없다”며 “촛불 민심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천천히 찾아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5월 청와대 대변인 제의를 받았으나 독립적 언론인의 위상을 훼손할 수 있다는 동료들의 만류를 수용해 청와대행을 사양한 바 있다.
진행·정리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문을 여는 데 큰 역할을 한 김의겸 전 <한겨레> 선임기자(오른쪽)와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2일 오후 국회 앞 잔디밭에서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014년 4월 임시국회에서 최초로 최순실의 승마계 농단 의혹을 제기한 뒤 최순실 모녀의 행적을 추적해 왔으며, 지난해 9월 하순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시 비리 문제를 밝혀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김의겸 전 <한겨레> 선임기자는 지난해 9월 특별취재팀(최순실을 찾는 사람들)을 이끌면서 ‘최순실이 케이(K)스포츠재단의 배후’라는 첫 보도를 시작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점화시키는 데 큰 구실을 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최순실이란 이름을 최초로 세상에 알린 <한겨레> 2016년 9월20일치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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