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5569
20년 전 ‘대구엔 추석 없다’ 보도 기억합니까
[비평] 20년 전 동아일보 보도로 본 보수언론… 재난에도 물불 안 가리는 ‘갈등 조장’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승인 2020.03.01 17:13
지역감정을 조장한 보도로 2000년 9월 동아일보 기사가 꼽힌다.
동아일보는 그해 9월9일 1면 머리기사로 “‘대구 부산엔 추석이 없다’”를 내보냈다. 신발과 건설업체들의 연이은 부도로 영남 경제가 매우 어렵다는 내용이다.
기사에서 이목을 끈 건 전국 도별 부도율 표였다. 추석이 없을 정도로 대구 부산 지역 경제가 엉망이라는 기사에 게재된 표를 자세히 보면, 광주 지역 부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사실을 왜곡한 보도다.
▲ 동아일보 2000년 9월9일 1면 머리기사 “대구 부산엔 추석이 없다”
동아일보는 당시 배달판에서 이 표를 삭제했다. 대신 대구 지역 대표 기업의 부도 내용을 중심으로 기사를 수정했다. 이 신문은 “경제가 안 좋은 게 영남뿐이냐”, “영남만 부각시키는 이유가 뭐냐”는 독자의 거센 항의를 받아야 했다.
당시 동아일보 에디터는 “(경제가) 다 어려운데 영남 쪽만 부각시킨 게 오해받을 소지가 있는 것은 맞지만 그게 본질은 아니며 이후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 타 지역도 다룰 생각”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동아일보가 영남 지역 구독률을 높이기 위해 정부를 비판하고 영남 민심을 달래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 중앙일보 지난 2월26일자 1면 “정부 봉쇄론에… ‘중국 안 막고 대구 막나’ 끓는 민심”
20년 전 보도를 다룬 까닭은 참 변한 게 없다는 생각에서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26일 1면에 “정부 봉쇄론에… ‘중국 안 막고 대구 막나’ 끓는 민심”이라고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홍익표 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이 대구·경북 지역을 두고 “최대한 봉쇄 정책 시행”이라고 실언한 것 등을 비판한 보도다.
중앙일보는 “대구에 사는 게 죄인 것 같다”, “정부가 대구 사람을 버렸다” 등 SNS를 인용 보도했고, “스스로 가게 문도 닫고 감염병 생활 수칙을 지킨 시민을 정부가 버렸다”는 익명의 취재원 발언도 보도했다. 자극적 멘트를 조합했다.
민주당 대변인 실언은 크게 비판 받아 마땅하지만 보수언론의 이 같은 보도가 총선을 앞두고 지역 갈등을 조장하는 데 있다는 분석도 무시할 수 없다.
정부를 비판할 수 있다면,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논리가 그 근거다. 이 신문은 지난달 24일자 1면에 “중국서 오는 외국인 입국, 전면 금지하라”는 제목으로 ‘사설’을 이례적으로 실었다. “정부는 더 큰 희생이 나기 전에 방역의 기본, 즉 유입 차단에 나서야 한다. 이제라도 중국에서 들어오는 외국인의 입국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것인데, 바로 하단 기사(“코리아 포비아… 한국인들 비행기 탄 채 쫓겨났다”)는 한국인들이 이스라엘행 비행기를 탔다가 현지 공항에 발도 딛지 못하고 되돌아왔다는 내용이다.
▲ 중앙일보 지난 2월24일자 1면.
우리 국민 입국을 막는 외국의 ‘한국 기피증’을 보도하면서 중국인의 국내 입국을 막으라는 주장을 전개한 것이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정부 비판이라면 기사의 논리적 전개는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민주당 대변인 실언이 바로 “정부가 대구를 버렸다”는 논리로 비약하는 데 일말의 주저함이 보이지 않는다.
이른바 ‘대구 품성론’도 등장했다. 노원명 매일경제 논설위원은 지난달 28일 “대구 사람들에게 미안한 생각은 가져야 한다. 대구인의 집단 아이덴티티가 정부·여당을 살렸다”며 “기호 노론에 밀려 17세기 후반 이후 200년 이상 중앙 정치로부터 차단 당했지만 모반사건 하나 일으키지 않았다. 정말 못 견디겠다 싶을 때는 만인소를 올리는 게 전부였다. 선비적 자존심이다. 자부심도 있다. 6·25 때 낙동강 전선의 보루였고 조국 근대화를 이끈 인재들을 다수 배출했다”고 주장했다.
노 위원은 “‘대구=신천지=야당’의 야비한 프레임으로 대구 사람들을 욕보이려는 시도가 인터넷에 넘쳐난다”고 지적한 뒤 “그래야 중국인 입국금지를 외면한 책임을 벗어날 수 있다. 저들이 하는 모양새를 보면 저러다 코로나19 진원지가 우한이 아니라 신천지(혹은 대구)라는 주장에 이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라며 ‘야비한 프레임’ 설정의 주체가 정부라는 비약을 선보였다. 즉, 현 정부가 코로나19에서의 실책을 대구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진영 논리에 갇힌 언론의 보도는 20년이 지나도 비판받는 이유다.
▲ 노원명 매일경제 논설위원 2월28일자 칼럼.
▲ 노원명 매일경제 논설위원 2월28일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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