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영의 출신에 대해서는 고구려인이라는 의견과 말갈인이란 의견이 각기 있지만, 유득공이 저서인 발해고에 다음과 같이 나왔다.
걸걸중상(대조영의 아버지)은 성이 대씨로 속말말갈인이었다. 속말말갈은 고구려에 신하가 되었던 자들이다. 어떤 사람은 대씨가 대정씨에서 나왔고, 배달족에 대씨가 있게 된 것은 대련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말갈인에 대해 잠깐 언급하자면 고구려 와 전혀 다른민족이 아니라, 고구려내에 유목생활을 하면서 고구려인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나누었던 부족이었다. 현대의 시점으로 보자면 같은나라 국민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말갈인들과 고구려인들은 깊은 유대감과 애국심을 공유할 수 있었고, 이러한 점은 새나라 탄생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이 연합전선의 주축세력이 대조영과 걸사비우였던 것이다.
다시 옛 고구려 땅으로
서기 696년 영주지방을 중심으로 점점 세력을 키우던 거란족은, 추장 이진충(李盡忠)과 그 사위 손만영(孫萬榮)을 중심으로 영주를 함락시키고 영주도독 조문홰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때까지 다소 소극적으로 고구려 부흥을 꿈꾸던 대조영 일행에게 이사건은 매우 큰 동기를 부여하였다. 더욱이 거란족이 영주지방에서 반란을 일으킨 이상, 당나라의 대규모 토벌군이 곧 올 것은 분명하였다. 따라서 대조영일행은 당나라와 거란족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곳을 떠나 새로운 곳을 개척할 필요가 있었다.
말갈 추장 걸사비우 및 고구려 유민과 함께 동쪽으로 요하를 건너 태백산 동북 지역을 근거지로 삼았고, 오루하에 의지하여 성을 쌓고 수비를 굳건히 하였다.
즉 걸걸중상은 당나라군의 대규모 침공에 준비해 옛 고구려의 유민과 무장출신들을 규합하여, 철저하게 수비태세를 갖추어 나갔던 것이다.
생과 사의 갈림길 천문령 전투
696년 이진충에 이어 손만영은 거란황제에 올랐지만, 당나라의 대규모 공세에 의외로 쉽사리 무너지고 말았다. 또 건란국 건설의 주동인물이었던 이해고 (李楷固)역시, 당나라에 포로로 잡힌 후 귀하하였다. 하지만 이미 요하강 상류지역에서 상당을 세력을 쌓은 대조영은 그리 쉽게 공략할 수 없는 상대였다. 특히 대조영이 이끈 주력군대가 여전히 당나라에 여전히 항쟁을 멈추지 않고 있던 고구려인이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따라서 당나라는 대조영에게 벼슬을 내려 회유하여 복속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대조영은 이를 당당하게 거부 하였다. 고구려를 계승할 새로운 나라를 꿈꾸고 있었던 원대한 포부에 비해 당나라의 회유책은 너무도 보잘것 없는 것이었다. 이에 당나라는 무력으로 대조영의 세력을 진압할 것을 결정하고 (698~699)거란족 출신의 장군 이해고 (李楷固)를 옥검위대장군으로 삼아 총공세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때 쯤 걸걸중상은 이미 사망하였는데, 고령으로 인한 자연사였는지 아니면 전투로 인한 전사였는지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그의 사인이 무엇이든 정신적 지주역할을 하던 걸걸중상을 잃은 것은 대조영과 고구려인들에게 크나큰 손실이었다. 또한 걸사비우 역시 말갈족을 이끌고 이해고의 부대와 일전을 벌였지만, 결국 병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전사하고 말았다.
그리고 천문령(天門嶺)에 먼저 도착하여 진지를 구축한 대조영은 더이상 물러서지 않고 총 반격을 하였다. 전쟁에서 고지를 선점하는 것은 전술상 대단히 유리한 이점을 차지하는 것이다. 더구나 상대방은 오랜 추격으로 인해 상당히 지쳐 있는 상대였다.
이 전투에 대해 발해고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이해고가 그를 뒤쫓아 천문령을 넘자, 대조영이 고구려와 말갈 병사를 이끌고 크게 격파하여 이해고는 겨우 몸만 빼서 탈출하였다. 대조영이 걸사비우의 무리를 병합하여 읍루족이 살았던 동모산을 거점으로 삼으니, 말갈과 고구려 유민들이 모두 그에게 돌아갔다.
대조영은 이 한번의 대승으로 인해, 고구려 땅 전체를 영토적으로 점령하려던 당나라의 야욕을 완벽하게 꺽었으며, 이후 대조영은 발해고에 의하면 사방 오천리에 달하는 광할한 영토를 개척하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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