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플러스] 백제시대 왕궁?..풍납토성, 진위 논란으로 확대
박소연 입력 2015.03.19. 23:06 수정 2015.03.19. 23:06
[앵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풍납토성이 과연 백제시대 왕궁이었냐에 대한 진위논란까지 불거지고 있습니다. 검증 없는 발굴로 이런 논란이 확대되고 있는 셈인데요.박소연 기자가 이어서 보도합니다.
[기자]
서울 송파구의 한성백제박물관에는 화려한 백제 유물이 즐비합니다.
풍납토성을 복원한 거대한 단면도가 눈에 띱니다.
[양기석 이사장/호서문화연구원 : 널빤지를 쌓고 그 다음에 흙을 붓고 쇳덩어리로 찧습니다. 단단하게 쌓기 때문에 천 년이 지난 지금도 무너지지 않고 유지할 수 있어요.]
높이 11m, 길이 3.7km에 달하는 풍납토성을 짓기 위해 당시 동원된 작업인원은 연 138만명에 달합니다.
[이성준 연구원/국립문화재연구원 : 풍납토성 복원 연구를 하면서 흙으로 쌓은 성채 규모를 분석해 보니까 중국에 기록된 몇 배가 되거든요.]
풍납토성이 백제 왕성 위례성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건 90년대 말입니다.
[양기석 이사장/호서문화연구원 : 발굴 조사를 해서 유구와 유물이 나와서 누가 뭐라고 해도, 백제 첫번째 서울이 풍납토성하고 몽촌토성이다.]
당시 발굴된 토기 조각 등 유물이 근거로 꼽힙니다.
왕실에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동물뼈가 발견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주장합니다.
[이형구 석좌교수/선문대학교 : 이게 소뼈다귀야. 상당히 크죠. 여기 갈비뼈. 이걸로 하늘에 빌어 점치는 거야.]
문화재청은 이를 바탕으로 2004년부터 본격 발굴에 나섰습니다.
문제는 10년이 지난 아직까지 풍납토성이 백제 왕성이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풍납동 주민 : 옛날 왕궁터라면 우리도 인정하겠다, 매장된 문화재도 땅속에 있는 거라도 인정하겠다고 했는데, 뚜렷한 근거가 없잖아.]
실제 발굴된 유적 규모만 보면 왕성이라고 보기에 턱없이 작다는 지적도 나옵니다.[이희진 외래교수/한국항공대학교 : 왕성이 17만평이라는데 백제 라이벌인 고구려 장수왕이 평양 천도해 지은 안학궁은 왕궁만 10만평입니다. 왕성까지 하면 400만평 나와요.]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된 동물뼈도 벡제 이전 마한 문명 유적일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희진 외래교수/한국항공대학교 : 말뼈를 사용하는 건 초기 문화에요. 백제 흔적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싹 무시하고, 말뼈가 나왔으니 백제 것이라고 단정 짓는 건 우스운 거죠.]
풍납토성이 단순히 군사적 방어를 위한 성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제대로 된 발굴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양기석 이사장/호서문화연구원 : 왕궁이 어디냐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는 안 나왔어요. 그걸 다 파본 건 아니잖아요. 다 파보려면 풍납토성 안에 사람들 보상해 내보내야 하는데.]
정부와 지자체의 갈등 때문에 제대로 된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이상묵 위원장/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 : 누가 비용을 더 많이 내야 되느냐 등 실체보다 외형에 대해 이야기가 오고 가니까 실질적으로 진척된 게 별로 없다는 거예요.]
개발이냐, 보존이냐는 지리한 논란 속에 2000년 전 백제 수도의 참 모습은 어둠 속을 떠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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