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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림성(道臨城)
 
 
당나라 군사가 도림성을 공격하자 거시지가 맞서 싸우다 죽다 ( 676년 07월(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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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兵來攻道臨城, 拔之, 縣令居尸知死之.
 
당나라 군사가 와서 도림성(道臨城)註 001을 공격하여 빼앗았다. 현령(縣令) 거시지(居尸知)註 002가 죽임을 당하였다.
 
註 001  도림성(道臨城): 본서 권제35 잡지제4 지리2 명주 금양군(金壤郡)조에 “임도현(臨道縣)은 본래 고구려의 도림현(道臨縣)이었는데, 경덕왕이 고쳤다.”고 전한다. 임도현은 지금의 강원도 통천군 임남면 외렴성리 일대(북한의 강원도 고성군 렴성리)로 비정된다. 따라서 도림성은 북한의 강원도 고성군 렴성리 근처에 위치한 성으로 볼 수 있다. 676년 7월은 이미 당나라의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가 요동(遼東)으로 옮겨간 시점이었다. 그런데 당군이 북한 강원도 고성군의 도림성을 공격하였던 것이다. 675년 9월 이래 신라가 추진했던 북방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재진출에 당나라가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도림성을 공격하였다고 보는 견해가 제시되었다(권창혁, 2019, 「나당전쟁 시기 매소성전투와 신라의 북방전선」, 『한국고대사연구』 95, 320쪽). 이를 통해 676년 7월 무렵에 신라군이 원산만 일대와 바로 인접한 도림성지역까지 완전히 장악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금양군
한국사DB > 고대사료DB > 삼국사기 > 잡지 제4 > 지리(地理)二 신라(新羅) > 금양군
 
금양군(金壤郡)註 600은 본래 고구려(高句麗) 휴양군(休壤郡)註 601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註 602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까지 그대로 따른다. 거느리는 현(領縣)은 5개이다.
습계현(習谿縣)註 603은 본래 고구려(高句麗) 습비곡현(習比谷縣)註 604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註 605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흡곡현(歙谷縣)註 606이다.
제상현(隄上縣)註 607은 본래 고구려(高句麗) 토상현(吐上縣)註 608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註 609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벽산현(碧山縣)註 610이다.
임도현(臨道縣)註 611은 본래 고구려(高句麗) 도림현(道臨縣)註 612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註 613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까지 그대로 따른다.
파천현(派註 614川縣)註 615은 본래 고구려(高句麗) 개연현(改淵縣)註 616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註 617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까지 그대로 따른다.
학포현(䳽浦縣)註 618은 본래 고구려(高句麗) 곡포현(鵠浦縣)註 619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註 620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까지 그대로 따른다.
 
 
 
註) 611  임도현(臨道縣): 통일신라 시기 명주(溟州) 금양군(金壤郡) 소속의 현(縣)으로 지금의 강원도 통천군(通川郡) 임남면(臨南面) 외염성리(外濂城: 북한의 강원도 고성군 염성리) 일대로 비정된다(이병도, 1977: 2012, 594쪽; 정구복 외, 1997d, 297쪽). 본래 고구려 도림현(道臨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임도현으로 고쳤다고 한다. 본서에는 이 기사 외에는 ‘임도현’이라는 지명이 확인되지 않지만, 본서 신라본기7 문무왕 16년(676) 7월조에 도림성(道臨城)이 나온다. 당군이 도림성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현령인 거시지(居尸知)가 전사하였다고 하는데, 675년 매소성에서 패배해 퇴각하던 당군이 동해안 방면으로 물러나며 임도현의 전신인 도림성을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45 강원도 통천군 고적조에 따르면 임도폐현(臨道廢縣)이 고을 남쪽 30리에 위치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이병도, 1977, 『국역 삼국사기(國譯 三國史記)』, 을유문화사
정구복 외, 1997d,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성현, 2010, 『신라의 거점성 축조와 지방제도의 정비』,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이병도 역주, 2012, 『국역 삼국사기』(두계이병도전집 11), 한국학술정보
 
註) 612  도림현(道臨縣):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임도현(臨道縣)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다. 본서 권37 지리4 고구려조에서는 조을포(助乙浦)로도 일컬었다고 하며, 휴양군(금양군)이 아니라 달홀(고성군)의 영현(領縣)으로 나온다. 이에 도림현이 휴양군과 달홀 사이에 위치한 점에 주목해 통일신라 초까지는 달홀의 영현이었다가, 경덕왕 시기에 휴양군 곧 금양군의 영현으로 조정되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김태식, 1997, 52~53쪽; 전덕재, 2021, 198쪽).
 
〈참고문헌〉
전덕재, 2021, 『삼국사기(三國史記)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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