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583531
MB의 엉뚱한 '삽질', 큰 기회를 모두 날려버리다
[리뷰] '4대강 사업' 추적 다큐멘터리 영화 <삽질>
김종성(qqqkim2000) 19.11.04 20:12 최종업데이트19.11.04 20:12
▲영화 <삽질> 스틸컷ⓒ (주)엣나인필름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고 4대강 사업이 개시된 2008년은 세계사적 중요성을 띠는 해였다. 특히 세계 경제 측면에서 역사적 의의를 갖는 해였다.
이 해 9월 15일, 헨리 리먼과 두 동생이 조선 철종 때인 1850년 설립한 세계적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새벽 2시에 파산 신청을 내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한국 시각으로 같은 날 오후 3시의 일이다. 19세기부터 21세기까지 3세기나 생존했던 세계적 금융기관이 한밤중에 그렇게 쓰러졌던 것이다. 이 사건은 이 회사의 파산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세계 금융시장이 일대 타격을 받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져나갔다.
사회당 출신인 프랑수아 미테랑 정권(1981~1995년)이 '기업의 자율성을 극대화시키고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시키는 신자유주의'에 잠시나마 맞섰다가 뜻을 꺾은 1980년대 초반부터, 지구 북반구에서는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쳤다. 그랬던 신자유주의가 휘청거리게 된 계기가 바로 2008년 금융위기다. 금융기업의 자율성을 극대화하고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한 결과가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 사건은 세계 경제의 지배체제에 즉각적 영향을 끼쳤다. 주요 8개국 정상 및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의 협의로 세계경제의 방향이 결정되던 'G8 체제'가 2008년 11월 14일 제1차 G20 정상회의를 거치면서 'G20 체제'로 전환됐다. 주요 8개국만의 결정으로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어 주요 20개국의 머리와 협력을 빌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경제적 의미의 세계 권력관계를 바꾸는 계기가 됐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각국의 경제적 위상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금융위기 몰아친 2008년 이명박이 관심 쏟은 건
▲영화 <삽질> 스틸컷ⓒ (주)엣나인필름
이 중차대한 시점에 대통령 이명박은 엉뚱한 일에 최대의 관심을 쏟고 있었다. 2007년 12월 대선에서 '경제 대통령' 이미지로 당선됐던 그는 이 절체절명의 시기에 세계 경제보다는 다른 것에 좀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 '다른 것'은 지난 1일 서울 대한극장에서 시사회를 연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다. 김병기 오마이뉴스 기자가 감독한 <삽질>이 바로 그 영화다.
오는 14일 개봉되는 이 영화는 이명박의 4대강 사업으로 오염된 금강과 낙동강의 참혹한 실상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김종술·정수근의 취재와 증언을 통해 고발하는 한편, 4대강 사업 관련자들에 대한 김병기 기자의 오랜 추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명박이 대통령 후보였던 2007년부터 금년까지 12년간, 김병기 기자가 축적해 놓은 취재 결과물을 소개하는 영화다.
김병기가 만난, 아니 접촉을 시도한 4대강 관련자들은 이명박과 '4대강 전도사' 이재오를 비롯해 이들과 협력한 정치권·정부·기업·학계·언론계 인사들이다. '리먼 브라더스'로 인해 세계 경제가 휘청거린 2008년에 이명박과 함께 삽질을 벌인 '이명박과 그 형제들', '이명박 브라더스'가 이 영화에 대거 등장한다.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의 혀에서 '리먼박 브라더스'로 발음될 수도 있는 4대강 관련자들을 이 영화에서 거의 다 만날 수 있다.
김병기 기자는 그들과의 접촉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해 한 말씀 해주세요!"나 "4대강 사업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들을 던진다. 그러면 그들 대부분의 인상은 굳어진다. 그런 뒤 그들은 카메라를 가리키며 "좀 치워요!"라고 언짢해 한다.
개중에는 달아나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 기자도 열심히 달려간다. 화면에 나오지 않는 카메라 기자는 더 열심히 달렸을 것이다. 쫓아가는 기자들과 도망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도망자들이 이따금 내뱉는 한마디가 이 영화의 '재미 포인트'라고도 할 수 있다. 다큐 영화치고는 지루하지 않은 편이다.
나라를 들썩인, 22.2조원짜리 사업의 결말
▲영화 <삽질> 스틸컷ⓒ (주)엣나인필름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두 사람의 지인들을 중심으로 은밀히 소규모로 전개된 데 반해, 이명박의 '4대강 삽질'은 정치권·검찰·국정원·정부기관·학계·언론·건설업체의 총체적 합작 속에 드러내놓고 대규모로 전개됐다. 22.2조원이 소요된 만큼, 이명박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떡고물'이 돌아가는 일이었던 것이다.
세계 경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시점에 한국에서는 이명박 정권이 거대한 떡고물을 돌리며 엉뚱한 삽질을 벌이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 엉뚱한 일에 정신을 빠트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온 나라를 들썩거릴 정도로 시끄러웠던 그 사업이 어떻게 끝났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22.2조원만큼의 경제적 효과가 생기기는커녕 도리어 그 이상의 환경 피해만 양산됐다. <삽질>에서 김종술·정수근이 강물에서 손으로 떠올린 '녹조 라떼'가 4대강 환경파괴를 잘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과 그 협력자들은 4대강 사업만 완성하면 대한민국이 좋은 곳이 될 것처럼 선전했다. 하지만 <삽질> 속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그들은 '4대강'이란 말만 나오면 입을 닫고 도망하는 사람들이 돼버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관련됐다는 사실조차 부인하면서, '카메라를 치우라'느니 '찍지 말라'느니 라는 반응만 보인다. 4대강 사업이 잘된 사업이라면, 혹은 잘되지 않았더라도 마땅히 했어야 하는 사업이라면 이런 반응이 결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영화가 시작한 지 11분쯤 지난 뒤 등장하는 권도엽 당시 국토해양부 장관은 기자의 질문에 대해 그나마 '성실하게' 반응한 편에 속한다. 하지만 알맹이 없는 껍데기 같은 반응뿐이었다.
장관 재직 당시 그는 2012년 공주보에서 열린 설명회 때 4대강 사업을 극찬하면서 '국토의 품격을 높였다'느니 '수술은 전체적으로 잘됐다'느니 '생태계가 바뀌고 있다'느니 등등의 말을 했다.
하지만, 7년 뒤 "4대강 사업이 국토의 품격을 높였다고 보십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현장에 한번 가보세요"라거나 "4대강 예산이 어디에 얼마 들었는지 아십니까?"라며 전문가의 권위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말들만 내뱉었다. 기자가 자신도 현장에 자주 가고 있으며 이러저러한 데에 돈이 쓰이지 않았느냐며 구체적인 답변을 하자,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오마이뉴스하고 인터뷰하고 싶지 않으니까 가세요"라는 한마디였다.
딱히 언급할 4대강 사업 성과물이 없었던 것이다. 한두 푼도 아니고 22.2조원이나 쏟아부어 놓고도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으니, 그들 스스로가 생각할 때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엉뚱한 일에 시간과 혈세를 허비한 한국
▲영화 <삽질> 스틸컷ⓒ 장혜령
2008년 금융위기는 한국에도 위기가 됐다. 하지만 전적으로 위기라고만은 할 수 없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처럼, 이것은 한국에 기회가 되기도 했다.
G7이나 G8에 관한 뉴스가 많이 나오던 시절, 세계 경제에서 한국이 차지한 지위는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다. 그랬던 한국이, 리먼 브라더스 파산의 여파로 미국과 몇몇 국가의 합의만으로는 세계 위기를 극복할 수 없게 되면서 G20에 초청돼 세계 경제에 영향을 주는 나라로 바뀌었다.
이 시기에 한국이 G20에 초청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경제 체질을 혁신하고 국제경쟁력을 제고하는 일에 좀더 많은 관심과 역량을 투입했다면, 한국 경제는 확연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11년이 지난 2019년의 한국 경제는 지금보다 훨씬 더 튼튼해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시기에 한국은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엉뚱한 일에 시간과 혈세를 허비했다. '리먼박 브라더스'가 한국 경제를 파탄시킬 만한 단군 이래 최대의 삽질을 벌였던 것이다. 그 시기에 대통령이 나랏돈 22조 원을 꺼내 정치권·정부·학계·언론·기업과 함께 삽질을 하지 않았다면, 한국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오히려 더 도약할 수도 있었다.
2007년 대선 때 유권자들이 이명박의 숱한 흠결에도 불구하고 표를 찍어준 것은 그가 경제를 살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다음 해인 2008년에 세계 금융위기가 닥쳤다는 결과를 놓고 볼 때, 2007년 12월에 유권자들이 '누가 경제를 더 잘할 것인가'를 기준으로 대통령을 선출한 것은 결과적으로 상당히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명박은 국가경제를 이끌 만한 그릇이 아니었다. 유권자들이 그를 과대평가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삽질'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경제 대통령을 뽑아야겠다고 판단한 것은 잘한 선택이지만, 이명박을 뽑아야겠다고 판단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던 것이다.
이명박 같은 인물이 하필이면 2008년에 대통령이 됐다는 것은 우리 역사의 불행이다. 4대강을 망칠 대통령, '삽질'에 빠져 금융위기 이후의 기회를 망쳐버릴 대통령을 우리 스스로 뽑았다는 점에서, 우리는 현명하지만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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