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history.go.kr/front/ti/view.do?treeId=02006&levelId=ti_006_0010
풍납토성
풍납토성(風納土城)은 초기백제시대의 성곽으로, ‘풍납동토성(風納洞土城)’으로도 불린다. 서쪽으로 한강을 끼고 충적대지상에 구축한 순수 평지토성이며, 약간 동쪽으로 치우친 남북 장타원형을 띠고 있다. 토성은 현재 한강변에 연한 서벽을 제외하고 북벽과 동벽, 남벽 등이 남아 있다.
유적조사는 1925년 대홍수 때 서쪽 벽이 허물어지면서 삼국시대 전기의 청동제 초두(炒斗) 2점이 발견됨으로써 이루어졌다. 발굴 결과 이 토성의 성벽은 판축(版築)방법을 사용하여 고운 모래로 한 층씩 다져 쌓았음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축성방법은 돌이 별로 없는 중국의 평야지대에서 성을 쌓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이것이 백제에 전해져 풍납토성과 몽촌토성(夢村土城)을 비롯하여 성곽이나 목탑기단 축조에 주로 이용되었다.
문헌상에 나타난 토성의 연대는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있는 286년(책계왕 1년)의 ‘사성(蛇城)’에 대한 기록이 가장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이 토성의 발굴조사 결과 무문토기(無文土器)⋅조질유문토기(粗質有文土器)⋅김해식토기⋅신라식토기⋅흑도(黑陶) 등의 토기와 도제(陶製) 그물추⋅물레가락바퀴⋅개와(蓋瓦)⋅철편(鐵片) 등의 유물이 출토되어, 이 성의 축조 연대를 백제 건국 초기(기원전 18년)로 소급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처럼 축조시기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견이 있지만, 늦어도 ‘사성’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는 3세기에는 토성의 축조가 완료된 것으로 보고 있다.
풍납토성은 당시의 인구규모나 사회조직, 권력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백제 초기 왕성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비슷한 시기의 고대 도성인 낙랑토성(樂浪土城)이나 고구려 국내성(國內城) 등에 비견되고 있다. 이처럼 풍납토성은 주변국 도성과의 비교를 통해 백제 초기 도성의 모습을 밝히는데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된다. 또한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적과 유물들은 당시 백제 지배층의 생활상을 복원⋅연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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