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80606.22016200429
강인욱의 북방 역사 기행 <11> 연해주에서 발견된 세형동검
블라디보스토크 야산서 출토된 한반도 동검… 누가 사용한 것일까
50년만에 한국 조사팀 방문 재조사
거울편 등도 출토… 유입 경로는 논란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국제신문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08-06-05 20:05:23 | 본지 16면
이즈웨스또프까에서 나온 세형동검. 한반도에서 출토된 세형동검과 동일하다
1959년 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쉬꼬또프까 벽돌공장의 노동자들은 한 야산에서 대리석을 캐고 있었다. 세계 2차대전 이후 구 소련 각지는 전쟁의 상처를 복구하며 경제 발전에 힘쓰고 있었기에 많은 건축자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은 이 산을 '비둘기의 산'이라고 불렀으나, 곧 대리석의 산이라는 뜻인 '이즈웨스또프까'라고 부르게 되었다. 트랙터 기사였던 자가로드니 씨는 돌을 캐던 중 지하 1.5m에서 인골이 쏟아져 나오자 작업을 멈추었다. 혹 암매장한 인골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 주변에서는 갈색 토기편 청동칼과 거울 등이 발견됐다. 의아하게 생각한 트랙터 기사는 이 유물들을 블라디보스토크 주립박물관에 신고했다.
당시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이 유물을 감정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레닌그라드(현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고고학자인 오끌라드니꼬프 씨는 여름 조사차 블라디보스토크에 와서 유물을 보고는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한반도에서만 나오는 것으로 알려진 세형동검과 다뉴조문경, 끌(동착) 등 이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당시 오끌라드니꼬프 씨 밑에는 북한에서 유학 온 김용남이라는 고고학자가 있었기 때문에 북한의 고고학 자료에 대해 제법 알고 있었다. 유라시아의 땅끝인 연해주의 야산에서 한반도에서만 나오는 동검과 거울이 나온 것이다. 이즈웨스또프까 동검은 1년 후 소련의 대표 고고학잡지인 소비에트 고고학에 게재된 데 이어 일본 한국에도 소개가 되었다. 하지만 가볼 수도 없는 나라인 구 소련에서 나온 것이니 한국에서는 그냥 참고자료로만 할 뿐이었다.
필자는 2004년 초, 서울대·부산대의 고고학팀과 함께 극동지역을 조사할 때 이 이즈웨스또프까 동검을 다시 조사했다. 지난 50여 년간 연해주의 고고학자 중에서 이 유물을 다시 조사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필자 연구팀의 재조사 성과는 예상외였다. 당시의 자세한 출토상황과 함께 현장에서 발견된 남자의 인골편, 그리고 토기편 등도 같이 확인되었다. 약 50여 년 전의 보고 이후 아무도 이 유물들을 재조사하지 않았었다. 재조사 과정에서 또 다른 놀라운 발견이 이어졌다. 이즈웨스또프까 유물이 담긴 상자의 옆에서도 세형동검 조각과 거울편이 소장되어있었다. 박물관의 직원에게 물어봤지만, 본인도 그 유물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듯했다. 유물들은 유물번호가 기재되지 않았으며 유물대장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한국식 청동검이 연해주에서 나온 것이 단 한 점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즈웨스또프까 유적 전경. 유적의 정상부에는 발해의 성지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채석장으로 변해 옛 모습을 찾을 길 없다
한국에 돌아와 이런 저런 자료들을 뒤져도 두 번째 동검의 사연은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혹시 구 소련이 생기기 이전의 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고문헌자료들을 찾는 중 1920년대에 연해주를 답사한 일본의 인류학자 토리이 류조(鳥居龍藏)가 당시 박물관에 수집된 이 동검과 거울편을 보고한 기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서울대학교 도서관 구석에 위치한 고문헌자료실에서 조심스럽게 옛 책장을 넘기다가 토리이 류조의 스케치와 답사기록을 발견한 순간의 전율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이 두 번째 세형동검은 이즈웨스또프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쉬꼬또프까라는 곳에서 출토된 것이었다. 시월혁명 전에 박물관에 들여와서 전시도 되었으나 혁명의 와중에 박물관의 직원들은 모두 자취를 감췄고, 이 유물은 아무도 모른 채 박물관의 창고 속에 있었던 것이다.
이 이즈웨스또프까 동검은 한반도 사람들이 건너가서 사용한 것인가 아니면 현지 옥저인이 사용한 것인가? 이 동검을 한반도에서 수입한 것인가, 아니면 그 지역에서 만들었을까? 여전히 학계에서는 논란이 되고 있다. 이즈웨스또프까 동검의 성분을 분석하니 주석성분은 극히 적고 납성분이 많아서 한반도의 청동기와는 많이 다르다. 또 연해주의 뻬뜨로바 섬에서 발굴된 청동기 제작장에서 발견된 청동기의 성분도 이즈웨스또프까와 거의 일치했다. 연해주와 인접한 함경북도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으니, 한반도의 청동기 만드는 장인이 옥저인들의 땅으로 가서 이 동검을 제작한 것은 아닐까?
50여 년 전 작업 중에 발견된 유물을 세심하게 박물관까지 가져다 준 연해주의 한 트랙터 기사가 없었다면 한반도와 연해주를 잇는 이 놀라운 유물은 알려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채굴로 이즈웨스또프까 산의 유적은 이미 사라지고 없으니, 고고학자로서는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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