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2307
징벌손배 반대하던 尹 “허위보도로 언론사 파산” 발언 뭇매
기자명 김도연 기자 입력 2022.02.12 21:13
1년전 민주당 주도 징벌손배 도입시도에 “헌법에 위배”
12일 취재진에 “진실왜곡 시 언론사 파산 시스템 필요”
이준석 “원론적 발언” 수습에도 언론계 “천박한 언론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2일 “진실을 왜곡하는 기사 하나로 언론사를 파산케 하는 강력한 시스템이 자리 잡는다면, 언론을 자유롭게 풀어놔도 공정성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후보는 이날 전남 순천역을 방문한 뒤 ‘열정열차’에서 취재진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언론 책임을 강조한 발언이지만 윤 후보는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했던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골자로 한 언론중재법 개정을 반대해왔다.
지난해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언론중재법 개정안 국면에서 언론에 대한 과도한 민사 책임은 “헌법 위반”이라던 그의 발언에 비춰보면, 이날 발언은 언론 현안에 대한 무지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취재진 앞에서 ‘언론사 파산’ 운운한 尹
윤 후보는 12일 취재진에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언론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이라든지, 이런 사법 절차를 통해 (언론사가) 허위 보도에 확실하게 책임을 지는 일을 한 번도 해온 적 없다”며 “이것이 우리나라 언론의 가장 근본적 문제”라고 주장했다.
지난 11일 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한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질문자로 나선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은 대선후보들에게 ‘통합형 언론자율규제 기구’에 대한 평가를 물었으나 윤 후보만 답변을 회피했다.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달 7일 오후 서울시 여의도 당사 대통령 후보실에서 대장동 피해 원주민들과 면담을 하고 있다. 사진=국민의힘 홈페이지
윤 후보는 이와 관련 “자율 규제는 쉽지 않고 위험하다”고 말했다. 현업 언론단체들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대안으로 내놓은 언론자율규제 기구에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자율 규제를 한다고 하는데 그 내용이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땐 올바른 길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윤 후보가 이날 취재진에 거듭 강조한 것은 언론의 책임이다. ‘언론사 파산’을 운운할 정도로 발언 수위는 셌다. 그는 “미국 같은 경우 규모가 작은 지방 언론사는 허위 기사 하나로 회사가 (파산으로) 가는 경우도 많이 있다”며 “내가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그만큼 언론사와 기자가 보도할 때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이라고 밝혔다.
윤 후보는 “대형 언론사가 소송 하나로 파산하겠냐마는 소형 언론사가 무책임하게 (허위 보도를) 던졌을 때 그 언론사는 보도 하나로 (파산으로) 갈 수 있는 것”이라며 “확실한 책임감을 주면서 취재원 보호와 보도 자유를 충분히 보장해주는 방법은 그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언론 보도가 잘못됐을 때 그에 대한 책임 추궁은 법적으로 하는 것”이라며 “원칙은 사법 절차고, 보조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언론중재와 같은 준사법 절차다. 그 원칙을 분명히 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윤 후보는 지난해 8월 SNS에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비판했다. 당시 개정안 골자는 허위 보도에 따른 손해액을 언론사에 징벌적으로 부과하자는 내용이었다. 윤 후보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권력에 대한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훼손하는 독소 조항이 가득하다”며 “최대 손해배상액을 언론사 전년도 매출액의 1000분의 1을 곱한 금액에서 5배까지 가능하게 한 것도 과잉금지 등 헌법상 원칙을 어겼다”고 비판했다.
이어 “현장에서 발로 뛰는 젊은 기자들이 권력을 비판하려면 수십억 원의 배상책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며 우려했다. 1년 전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반대했던 그가 12일 열정열차에선 민주당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발언을 쏟아낸 것.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까진 아니래도 강력한 제재는 필요하다는 취지인데 이 역시 모호하다.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사진=윤석열 페이스북.
다만 윤 후보는 언론 보도의 고의·중과실 입증 책임을 언론에 지우려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기자에게 ‘이 기사가 허위가 아니라는 것을 네가 입증하라’고 하는 것은 결국 기자에게 취재원을 입증하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며 “취재원 보호가 안 되는데 누가 기자에게 권력 비리를 제보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논란이 커지자 이날 일정에 동행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추가 해명에 나섰다. 이 대표는 “윤 후보 발언 취지는 끝까지 법적 절차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 때에 대한 원론적 수준의 말”이라며 “민주당이 주장하는 언론중재법은 당이나 후보 차원에서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언론노조위원장 “천박한 언론관 드러내”
언론계에서는 윤 후보 발언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창현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12일 통화에서 “검찰총장까지 지내신 분이 기본적 사실관계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다”며 “현행 법 체계에서도 언론 피해로 인한 억대 내지 수천만 원대의 피해 보상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위원장은 “윤 후보는 자율규제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자율규제는 (외부 규제로 인한) 언론의 자유 침해 우려를 덜어내는 대신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 허위조작 정보 유통을 줄이는 시스템을 갖추자는 것”이라고 설명한 뒤 “자율규제도 아니고, 징벌적 손배제도 아니라고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서 언론에 책임을 지우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고 혹평했다.
윤 위원장은 “이런 식의 입장이라면 국민의힘이 지난해 언론중재법 개정안 반대 과정에서 내세웠던 언론 자유 보장 등의 명분은 한 편의 쇼였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윤 후보와 국민의힘의 언론 정책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엉터리에 가까운 천박한 언론관을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는 “일부 언론이 악의적이고 무책임하게 보도하는 행태를 규제하는 방안에 대해 사회적 중지를 모아야 하는 것은 맞는다”면서도 “그러나 언론 규모에 따라 책임 소재를 달리하는 그의 발언은 언론에 대한 편견을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대형 언론사가 소송 하나로 파산하겠냐’는 발언의 기저에는 대형 언론사는 소규모 매체와 달리 무책임한 보도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왜곡된 인식이 깔려 있다”며 “현재 자신에게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을 ‘소규모 매체’들로 규정하고 선입견을 드러낸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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