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르네상스’ 외치는 한국 정부의 착각
‘원전 르네상스’ 정책을 밀어붙이는 윤석열 정부는 야권과 언론의 체코 원전 수출 검증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세계 원전산업 보고서는 원전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말한다.
이오성 기자 입력 2024.10.23 06:28 호수 892
 
윤석열 대통령은 9월20일 체코 정부청사에서 열린 공동 언론 발표에서 “원전 사업이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의 모범사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긴밀한 소통을 이어가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9월20일 체코 정부청사에서 열린 공동 언론 발표에서 “원전 사업이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의 모범사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긴밀한 소통을 이어가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잭팟’ ‘쾌거’ ‘대박’이라는 상찬이 쏟아졌던 체코 원전 수출의 개운치 않은 뒷맛이 오래가는 중이다. 덤핑 수출,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식재산권 분쟁, 한국수출입은행의 사업비 지원 여부 등 관련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제22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 체코 원전은 주요 현안으로 다뤄졌다. 10월9일 〈한겨레〉는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실에서 입수한 자료를 바탕으로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기 전 한국 정부가 장기·거액·저리 자금조달이 가능하다고 체코 측에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가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한국수출입은행(수은)을 통해 체코 재무부 차관 등에게 금융지원 의사를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정부의 대응이 이례적이었다. 산업부는 한글날 공휴일인 10월9일 설명 자료를 배포하고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 시 정책금융 제공 의향 제시는 공적 수출 신용기관 본연의 기능이고 당연한 관례이며, 기간·금액·금리 등 구체적인 금융조건을 제시하거나 협의한 적이 없다”라고 해명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설명 자료 말미에 정부는 이렇게 밝혔다.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기사를 반복하는 이유는 체코 원전 수주에 흠집을 내어 경쟁국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목적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음. 체코 원전 최종 계약을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국내 원전 기업들의 노력을 방해하고, 국익을 저해하는 기사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음을 밝혀드림.”
 
‘악의’ ‘국익 저해’ ‘용납될 수 없음’ 등 정부의 공식 문서치고는 사용한 단어가 무척 거칠었다. 산업부는 지난 7월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발표 이후 10월9일까지 10차례에 걸쳐 설명 자료를 배포했다. 이 중 8차례는 9월 윤석열 대통령의 체코 순방 이후에 나왔다. 순방 직후인 9월24일 윤 대통령은 “우리 정치권 일각에서 체코 원전 사업 참여를 두고, ‘덤핑이다, 적자 수주다’ 하며 근거 없는 낭설을 펴고 있다. 사활을 걸고 뛰는 기업들과 협력업체들, 이를 지원하는 정부를 돕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훼방하고 가로막아서야 되겠나”라고 말했다. 앞선 산업부의 설명 자료와 일맥상통한다.
 
야권과 언론의 체코 원전 수출 검증에 대해 정부가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논란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025년 3월 최종 계약이 이루어질 경우 어느 정도 사실관계가 드러나겠지만, 비밀유지 약속에 따라 구체적인 사업비용과 계약조건은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식재산권 분쟁과 관련해서도 정부는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원전 핵심 기술 여럿을 보유한 기업으로, 한국은 1978년 고리 1호기 원전을 건설할 때부터 이 회사 기술을 전수받았다. 그런데 웨스팅하우스는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 발표 직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지식재산권 침해 혐의로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 측이 자사의 기술을 베꼈다는 이유다.
 
지식재산권 분쟁, 낙관하기 어려워
 
이와 관련 10월8일 국정감사에서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됐다.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과 안덕근 산업부 장관의 질의응답이다. 다소 길지만 이제까지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내용이어서 소개한다.
 
김한규 의원: 한수원, 한전 등에 웨스팅하우스와 체결한 계약서 요청드렸는데 아까 장관님은 계약상 비밀유지 조항 때문에 제공하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그게 미제공 사유가 맞습니까?
 
안덕근 장관: 비밀유지 협약이 묶여 있는 것 때문에 저희가···.
 
김한규 의원: 제가 계약서를 다 갖고 있어요. (비밀유지 협약이) 어느 계약 내용에 있는데요?
 
안덕근 장관: (한동안 침묵)
 
김한규 의원: 통상 라이선스 계약에 따라 기술 내용을 미공개하지, 계약기간이 도과하고 나서 계약(내용)을 미공개하지 않죠. 한수원, 한전이 제대로 역할을 하는지 계약서를 봐야 감사를 할 것 아닙니까. 이런 자료를 제대로 공개하셔서 국회가 감시감독을 할 수 있게 해주세요.
 
김한규 의원이 비밀유지에 해당하느냐고 따진 이 계약서는 PACER(Public Access to Court Electronic Record)라는 곳에 공개된 자료다. 미국 연방법원이 운영하는 PACER는 판례나 소송 자료를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웹사이트다. 김한규 의원이 계약서 내용을 확인한 결과 한국 측이 웨스팅하우스에 10년간 기술사용료를 지급한다는 내용이 1997년 계약서에 나온다(다만 이 시점에는 해외 원전 진출이 없었으므로 기술사용료가 지급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2010년 계약서에는 웨스팅하우스가 한국 측에 어떤 부품을 공급할 것인지 나와 있고, 2012년 계약서에는 ‘한국 측의 기술이 웨스팅하우스 기술에 기반한다’라고 적시돼 있다. 이런 내용을 종합해볼 때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식재산권 분쟁을 낙관적으로 전망하기는 어렵다.
 
9월7일 기후정의행진 참가자들이 원전 반대 조형물 주위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9월7일 기후정의행진 참가자들이 원전 반대 조형물 주위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염려에도 윤석열 정부의 ‘원전 르네상스’ 정책에는 변함이 없다. UAE, 체코 등에 이어 최근 필리핀에도 원전을 수출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10월7일 필리핀을 방문해 1986년 건설이 중단된 필리핀 바탄 원전 건설 재개 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원전 르네상스 시대를 필리핀과 함께 준비해 나가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필리핀을 동남아 원전 수출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포부다.
 
‘세계 원전산업 보고서(World Nuclear Industry Status Report)’라는 게 있다. 마이클 슈나이더 등 탈원전을 지향하는 세계 에너지·기후 전문가들이 참여해 전 세계의 원전 산업 동향을 다룬 보고서다. 9월19일 공개된 ‘2024 세계 원전산업보고서(513쪽 분량)’는 한국을 16개 ‘초점 국가(focus countries)’ 가운데 한 국가로 꼽고, 161~173쪽에 걸쳐 상세히 소개했다. 한국 편은 ‘윤 정부의 지속적인 친원전 정책(Continued Pro-nuclear Policy of the Yoon Administration)’이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한다.
 
보고서는 “(윤석열 정부 이후) 신한울 2호기의 가동으로 경북 울진군에 위치한 한울원자력발전소는 원전 8기를 유치한 곳이 되었다. 이는 유럽 최대 규모인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발전소보다 약 1.5배 큰 규모다. 전쟁 이후 러시아가 자포리자 발전소를 군사적으로 점령한 점이, 북한과 여전히 대치 중인 한국에 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라고 밝혔다.
 
한국의 체코 원전 수출과 관련한 내용도 보고서에 나온다. 보고서는 “체코 정부가 24조원에 달하는 건설 비용을 조달하기엔 너무 크다. 체코 정부가 가능한 옵션은 한국 수출입은행을 통한 대출 또는 한수원의 지분 참여로, 건설 후 수십 년에 걸쳐 전력을 판매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30년 이상의 회수 기간을 가진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한국에 도움이 될지 불확실성이 크다”라고 밝혔다.
 
‘공화당의 텍사스’가 녹색에너지 모델로
 
보고서는 전 세계 원전 산업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 세계 전력 생산 중 원전 비중은 2023년 기준 9.1%다. 1996년 17.5%로 정점을 찍고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중이다. 2004~2023년 20년 동안 원전 102기가 새로 건설됐지만, 그보다 많은 104기가 폐쇄됐다. 신규 원전 가운데 절반 가까운 49기가 자체 기술을 보유한 중국 것임을 감안하면 한국의 원전 수출 전망을 밝게 보기도 어렵다. 중국은 ‘독자개발과 선진기술 도입을 통해 원자로 국산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중국 원전굴기의 특징과 전략적 시사점’ 국가안보전략연구원, 2022).
 
세계 원전산업 보고서 공개 이후 이를 인용한 언론 보도가 나오자 산업부는 10월4일 “해당 보고서는 탈원전 학자 및 탈원전 단체가 작성한 보고서”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나 세계원자력협회(WNA)처럼 각국 정부, 발전사업자가 공식 참여하는 국제기구에서 발간한 보고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WNA 공식 자료에서도 전 세계 전력 생산 중 원전 비중은 9%(2023년 기준)로 앞선 보고서와 거의 일치한다.
 
〈그림〉은 2024년 상반기 미국, 중국, 유럽연합(EU)의 발전원별 설비 증감 현황을 나타낸 자료다(전년 동기 대비). 각국 에너지 당국의 최신 자료를 사단법인 에너지전환포럼이 분석했다. 태양광과 풍력이 각각 151.4%, 39.8% 증가한 반면 원전과 석탄은 각각 0.2%, 4.3% 감소했다. 재생에너지 설비의 폭발적 성장세에 비해 원전은 정체 상태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정부의 원전 르네상스 주장과 대비된다.
 
재생에너지 강국 EU의 현황은 새삼스럽지 않다. 눈여겨볼 곳은 양대 강국, 미국과 중국의 행보다. 미국에서는 ‘친원전’ 입장을 취해온 공화당 지역구에서조차 더욱 활발한 재생에너지 투자가 이루어지는 중이다. 텍사스가 대표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5월 ‘공화당의 텍사스는 어떻게 녹색에너지의 모델이 되었나?(How red Texas became a model for green energy)’라는 기사에서 텍사스의 태양광발전이 석탄발전량을 추월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의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 정책이 농촌의 보수층에게 먹혔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11월 대선에서 공화당이 집권한다 해도 미국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언뜻 지난 20년 동안 전 세계 신규 원전의 절반을 건설한 중국은 여전히 전통적인 발전원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단면일 뿐이다. 중국은 이른바 ‘쌍탄소’ 전략(2030년에 탄소배출 정점을 찍고 2060년에 탄소중립 달성)에 따라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재생에너지 발전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신규 태양광 설비 설치 규모는 216GW인데, 이는 한국 전체 발전설비 용량(약 138GW)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올해 상반기에도 102GW를 신규 설치해 2030년을 목표로 했던 탄소배출 정점 시기를 올해 안에 달성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하미지구에 건설된 50MW급 태양광 발전소.  ⓒXinhua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하미지구에 건설된 50MW급 태양광 발전소.  ⓒXinhua
 
한국의 행보는 초라하다. 상반기 신규 태양광과 풍력 설치량은 각각 1.2GW, 0.04GW에 머물렀다. 재생에너지 비중 역시 8.7%(수력 포함 9.6%)에 머무르고 있다. ‘RE 100(기업에서 쓰는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것)’을 이행해야 하는 국내외 기업으로서는 한국에 대한 투자를 망설이는 요인이 된다. RE100은 원전을 재생에너지로 인정하지 않는다.
 
웨스팅하우스에서 여러 해 근무한 이력이 있는 핵공학자 서균렬 서울대 명예교수는 올해 6월 펴낸 책 〈서균렬 교수의 인문핵〉에서 “핵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라고 말했다.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 등을 감안하면 원전의 경제성은 크게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지적한다. “핵 찬성론자들은 핵 시설을 폐기하면 투자가 줄고 자기들 권력이 없어질 걸 염려합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핵 폐기물 관리를 위한 투자가 이루어질 겁니다. 원전을 안 짓는다고 해서 원자력공학과가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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