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뉴스타파] '명태균 게이트' 기자회견, 대통령의 대국민 거짓말
뉴스타파 2024년 11월 07일 20시 00분
오늘(11월 7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습니다. 각종 게이트급 의혹으로 위기에 몰린 윤석열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반등의 계기를 마련할 거라는 여권 일각의 기대는 헛된 희망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현 상황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 수준은 황당할 정도로 안일했습니다. 솔직한 해명과 진심 어린 사과, 국민을 설득하기 위한 쇄신 조치 등은 없었습니다.
오늘 <주간 뉴스타파>는 대통령 기자회견의 내용을 집중 분석했습니다.
사과같지 않은 사과... 그마저도 김건희가 시켰다?
기자회견을 앞두고 가장 관심이 갔던 부분은 윤석열 대통령이 무엇에 대해서 어느 정도 수위로 사과를 할 것인가였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기는 했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사과가 아닌 듯한 사과였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일로 국민들께 걱정과 염려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것은 변명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국민 여러분께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 진심어린 사과의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기자회견 중 (2024.11.7.)
사과는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기 때문에 사과한다는 말은 빠져 있었습니다. 이어진 질의 응답에서는 오히려 확인되지 않는 의혹이 많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기자회견 말미에 한 기자가 이 부분을 추궁했습니다.
○ 부산일보 박석호 기자 : 흔히들 사과를 할 때 꼭 갖춰야 될 요건이 몇 가지 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어떤 부분에 대해서 사과할지 명확하고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대통령께서는 대국민 담화에서 제 주변의 일로 걱정과 염려를 끼쳐 들었다. 어떻게 보면 다소 두리뭉실하고 포괄적으로 사과를 하셨습니다. 사과를 하지 않아도 될 만한 일인데 바깥에서 시끄러우니까 그러니깐 사과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오해를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TV를 통해 회견을 지켜보는 국민들이 과연 대통령께서 무엇에 대해 우리에게 사과를 했는지 어리둥절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보충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 윤석열 대통령 : (중략)... 잘못한 게 있으면 딱 집어 가지고 그러면 이 부분은 잘못한 거 아니냐라고 해 주시면은 제가 거기에 대해서 딱 그 팩트에 대해서 제가 사과를 드릴 건데, 워낙 많은 얘기들이 저도 뭐 제 아내와 관련한 이런 기사를 꼼꼼하게 다 볼 시간이 없습니다. 이런 것들이 많이 있구나라는 것만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어떤 것을 딱 집어 가지고, 왜냐하면 이것도 사실과 다른 것들도 많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대통령이 돼서 기자회견을 하는 마당에 그 팩트를 가지고 다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해서 그걸 다 맞습니다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고. 무슨 짜깁기가 됐느니 소리를 집어넣느니 그러면 그걸 가지고 대통령이 맞네 아니네 하고 그걸 다퉈야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점은 좀 양해를...
윤석열 대통령 기자회견 중 (2024.11.7.)
그러니까 한마디로 지금까지 나온 여러 의혹 중에 사실이 아닌 것도 많지만 그걸 일일이 따질 수 없으니 일단 사과를 하는 것뿐이다, 이런 얘기인 겁니다. 하지만 국민들이 듣고 싶은 얘기는 그 하나하나의 의혹에 대해 사실 관계가 어떤 것인지입니다. 그런데 그런 개별적 사실 관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는 것은 사실, 사과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일일이 사실 관계를 다투기 어렵다면 대통령실의 참모들이라도 하나하나의 사실 관계에 대해 해명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민주공화정의 최고 권력자가 시민에 대해 가지는 '설명의 의무'입니다. 물론 일일이 해명을 하기 어려운 참모들의 사정도 이해는 갑니다. 모두 대통령 부부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의혹들인데, 여기에 대해서 대통령 부부가 일일이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면 참모들로서도 방법이 없겠죠.
물론 이런 '두리뭉실' 사과는 매우 전략적인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직접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언급할 경우 나중에 또 다른 증언이나 증거에 의해서 반박 당할 수 있고, 그 경우 대통령이 또 거짓말을 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위험을 피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과같지 않은 사과'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또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김건희 여사는 사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제 아내는.. 원래는 이게 우리 기자회견을 순방을 다녀와서, 원래는 이런 형식이 아니고 어디 방송국 같은 홀에서 타운홀 미팅으로 하자 하다가, 그래도 순방 나가기 전에 또 10일 전에 하는 게 좋겠다라고 발표가 나가니까 밤에 집에 들어가니까 그 기사를 봤는지 '가서 사과 좀 제대로 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본인도 어찌 됐든 저찌 됐든 자기를 뭐 의도적으로 악마화를 하네, 가짜 뉴스가 있네, 침소봉대를 해서 억지로 만들어내네 해도, 그런 억울함도 본인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거 보다 어찌 됐든 국민들 걱정 끼쳐드리고 속상해 하시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 보고도 괜히 임기 반환점의 이거라고 해서 그동안의 국정 성과 이런 얘기만 하지 말고 사과를 많이 하라고... 모르겠습니다. 이것도 국정 관여고 농단은 아니겠죠. 그런 생각 가지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기자회견 중 (2024.11.7.)
대통령 사과의 수위까지도 김건희 여사가 조언을 해주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요, 비록 자신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순수한 조언을 할 수는 있다고 해도, 그동안의 여러 사례를 봤을 때 '이번에도 김건희 여사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겁니다.
책임전가와 거짓으로 점철된 '명태균 게이트' 해명
오늘 기자회견이 마련된 직접적인 계기는 '명태균 게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명태균 씨의 녹음 파일을 통해 매일같이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대통령 본인의 공천개입 의혹 육성까지 공개된 상황에서 더 이상 기자회견을 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임계치까지 몰린 것이죠. 그러나 명태균 게이트와 관련된 윤석열 대통령의 답변은 그동안 제기됐던 의혹을 전혀 해소할 수 없는 책임전가, 횡설수설, 거짓말의 3종 세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먼저, 책임 전가입니다. 대통령실은 명태균 의혹이 점화되던 초기 "명태균과는 경선 이후에 만난 적도 통화한 적도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는 해명을 내놨습니다. 그러나 당선자 신분으로 대통령 취임 전날이었던 5월 9일, 윤 대통령과 명태균 씨가 통화하는 음성이 공개됐습니다. 거짓말이 들통난 거죠. 이에 대해 한 기자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 KBS 장덕수 기자 : 의혹이 제기되고 나서 대통령실은 경선 막바지에 조언을 받아 소통을 끊은 것으로 기억한다고 입장을 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대통령님과 명 씨의 녹취가 공개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요, 대선 이후 명 씨와 정말로 소통을 끊으신 건지, 연락을 한 적이 없으신지 궁금하고요. 만약 또 통화나 문자가 공개된다면 어떻게 대응하실 건지 궁금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 (중략) 이런 논란들이 언론 보도가 돼서 저도 아침 그 비서실 회의 때 경선 뒷부분에 가서 좀 그럴 만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연락하지 마라 이렇게 한 적이 있고. 아마 어느 언론에서 명태균 씨도 그런 비슷한 취지의 얘기를 후보로부터 들었다고 한 것도 제가 봤는데요. 그렇게 했는데 제가 당선된 이후에 연락이 왔는데 그게 뭐로 왔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전화번호를 지우고 텔레그램에는 이름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텔레(그램) 폰으로 온 건지 아니면 전화로 온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 축하 전화를 받고 저도 어찌 됐든 명태균 씨도 선거 초입에 여러 가지 도움을 준다고 자기도 움직였기 때문에 하여튼 수고했다는 얘기도 하고, 이런 얘기도 한 기억이 분명히 있다고 제가 비서실에 얘기를 했는데... 아마 언론에 관계되는 걸 얘기하는데 대변인이나 뭐 그런 입장에서는,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이렇게 얘기하기가 어려우니까 '경선 뒷부분 이후에는 사실상 연락을 안 했다'하는 그런 취지로 얘기한 건데...
윤석열 대통령 기자회견 중 (2024.11.7.)
횡설수설, 말이 길지만 핵심은 이겁니다. 윤석열 대통령 본인은 비서실 회의에서 "당선된 이후에 명태균과 통화한 기억이 있다"고 분명히 얘기를 했는데도, 대변인이 언론에 "경선 막바지 이후에는 사실상 연락을 안 했다"고 했다고 설명했다는 겁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대통령실 대변인이 대통령의 말을 임의로 왜곡했고, 그 결과 대통령이 거짓말쟁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 중대한 사안입니다. 대변인 문책이나 경질 사유가 될 만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대변인을 문책하기는커녕 이 일이 별 것 아니라는 투로 얘기하는 대통령의 태도가 놀랍습니다.
다음으로 거짓말입니다. 명태균 게이트 의혹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① 명태균은 조작된 여론조사를 윤석열에게 무상 제공했나 ② 윤석열은 그 대가로 김영선 의원을 공천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했나
이중 ①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저는 명태균 씨한테 무슨 여론조사를 해달라는 얘기를 한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명태균 씨나 또는 우리 당의 정치인들이 이제 여론조사 발표된 거라든지 또는 이건 내일 발표될 예정인데 그냥 알고만 계시라 뭐 이런 얘기들을 선거 때 수도 없이 받았고요. 그리고 제가 여론조사를 조작할 이유도 없고 여론조사가 잘 나왔기 때문에. 늘 그거를 조작할 이유도 없고 그리고 잘 안 나오더라도 그것을 조작한다는 것은.. 저는 인생을 살면서 그런 짓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기자회견 중 (2024.11.7.)
그러나 명태균 씨가 조작된 여론조사 결과를 윤석열 후보에게 보고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은 숱하게 많습니다.
명태균 씨는 강혜경 씨나 김영선 의원과의 통화에서 자신이 여론조사 결과를 윤석열 후보에게 보고한다고 수차례 얘기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직접 언급한 통화녹취만 5건이나 되는데, 모두 각기 다른 날짜입니다.
명태균 씨는 여론조사 결과를 윤석열 후보에게 빨리 보내줘야 한다고 말하던 당일 서울로 가는 항공권을 예약했고, 윤석열 후보 자택과 비밀 사무소였던 00화랑에서 각각 차로 10여 분 걸리는 위치의 호텔에 투숙 예약까지 했습니다.
윤석열 캠프에서 정책총괄지원실장 역할을 맡았던 신용한 씨는 대선 본선 당시, 명태균 씨의 보고서를 윤석열 캠프의 회의에서 활용됐다며 자신이 갖고 있던 명태균 씨 보고서 파일을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제시했습니다.
즉,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 이를 보고 받았다는 직접적인 증거만 없을 뿐, 10가지 퍼즐 조각 가운데 9가지는 이미 맞춰진 상태인 겁니다.
② '윤석열은 그 대가로 김영선 의원을 공천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했나'에 대한 기자회견 답변은 이랬습니다.
저는 당의 공천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고 오히려 당에서 공천을 진행해 나가는데 당의 중진 의원들 중에 저한테 전화해서 이런 점들은 여론이 좋지 않으니 좀 더 바람직하게 해달라고 저한테 막 부탁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원리 원칙에 대한 얘기만 했지 누구를 공천을 주라 이런 얘기는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중략)
전화내용인지 아니면 텔레그램 통화를 녹음을 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저는 (명태균이) 몇 달 전에 저한테 많이 서운했을 것 같아서 저도 (전화를) 받았고 그래도 고생했다는 얘기 한마디 한 것 같고. 그리고 무슨 공천에 관한 이야기 한 기억은 없습니다마는.. 했다면은, 했다면은 당의 그냥 이미 정해진 얘기. 아마 그 시기에는 거의 정해졌을 것이고 다른 선택의 대안도 없고.. 당에서도 아마 공관위와 최고위에서 딱딱 찍어서 전략 공천으로 마무리를 지은 것 같은데요.
윤석열 대통령 기자회견 중 (2024.11.7.)
여기서 윤석열 대통령 본인의 육성을 다시 보여드리겠습니다. 국민의힘이 재보궐선거 국회의원 후보 공천을 발표하기 하루 전날의 통화입니다.
● 윤석열 당선자 : 공관위(공천관리위원회)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부터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거는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
○ 명태균 : 진짜 평생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윤석열-명태균 통화 내용(2022.5.9.)
대통령은 공천에 대한 얘기를 한 기억이 없다고 하지만, 분명히 공천에 대한 얘기는 있었습니다. '만약 했다면' 당에서 거의 정해진 얘기를 했을 것이라고 했지만, 분명 당에서는 '말이 많은' 상황이었는데 본인이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녹취가 공개된 마당에 그것과는 배치되는 해명을 온 국민 앞에서 한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기자도 녹취의 내용을 언급하며 재질문하지 않았습니다.
"김건희 의혹, 전화번호 안 바꾼 내 잘못"
오늘 기자회견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김건희 여사가 받고 있는 각종 의혹에 대해 대통령은 명쾌한 원인 진단을 해냅니다. 그 원인은 놀랍게도 '내가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아서'였다는 겁니니다. 무슨 얘기인지 직접 확인해볼까요.
(아내 김건희는) 조금이라도 누구한테 도움을 받으면 말 한마디라도 이렇게 인연을 딱 못 끊고 말 한마디라도 고맙다는 얘기를 해야 된다는 그런 거를 좀 가지고 있다 보니 이런 문제가 좀 생긴 것 같습니다. 이게 나중에 막 무분별하게 이런 것이 막 이렇게 언론에 이렇게까지 이럴 거라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은데 이게 전부 제 책임입니다. 왜냐하면 후보 시절과 또 당선인 시절과 대통령이 됨으로써 이 소통의 방식을 좀 매정하게 해야 되는데 대통령이 돼서도 검사 때 쓰던 휴대폰을 계속 쓰고 있으니까 무조건 바꿔라고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중략) 과거에 전직 대통령 부부가 그런 프로토콜에 따라서 한 것이 다 이런 부정적인, 부적절한 이런 국민들 걱정 끼쳐드릴 만한 사고의 예방을 위한 건데 저는 또 아니 내가 번호 바꿔버리면 가까운 사람들도 그렇다고 다 일일이 이 번호라고 알려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중략)그걸 저도 안 하고 그러다 보니까 제 아내에 대해서도 좀 이런 것들을 미리 미리 전직 대통령 때의 프로토콜대로 싹 바꿨어야 됐는데 그건 뭐 제가 원래 그렇게 했어야 되는데 저 자신부터 못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의 발생 원인의 근본으로 들어가면 그거는 저한테 있고…
윤석열 대통령 기자회견 중 (2024.11.7.)
즉, 자신부터 대통령이 된 이후 전화번호를 바꿨어야 했는데, "가까운 사람들에게 일일이 번호를 알려줄 수도 없고 해서" 검사 시절부터 쓰던 번호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아내인 김건희 여사에게도 전화번호를 바꾸라고 할 수 없었다. 전화 번호를 그대로 쓰다 보니 이런저런 사람들의 연락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여러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는 해명입니다. 그 많은 의혹들이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니, 그 통쾌한 혜안에 무릎을 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놀라운 얘기를 하나 더 꺼내놓습니다.
하루종일 사람들 만나고 여기저기 다니고 지쳐서 집에 와서 쓰러져 자면 아침에 이렇게 일어나 보면 5~6시인데 (김건희 여사가) 안 자고 이렇게 엎드려서 제 휴대폰을 놓고 계속 답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미쳤냐 지금 잠을 안 자고 뭐 하는 거냐 그랬더니. 지지하는 사람들, 또 이런 것 좀 잘해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고맙습니다라든지 잘하겠습니다라든지 잘 챙기겠습니다라든지 답을 해줘야 이분들이 다 유권자인데 이렇게 자발적으로 문자가 들어오는데 거기에 대해서 답을 하는 것 같은 그런 선거운동이 어디 있냐, 그러면서 잠을 안 자고 완전히 날밤이 바뀌어가지고 그렇게 했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기자회견 중 (2024.11.7.)
김건희 여사가 윤석열 대통령의 휴대전화를 임의로 열어보고, 임의로 답장을 보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이때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계속 사용했습니다. 심지어 장차관들에게 전화를 걸 때도 본인의 휴대전화를 사용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김건희 여사가 윤석열 대통령의 전화를 들여다보지 않았을까요? 거기에는 민간인인 김건희 여사가 접근해서는 안 되는 국정운영과 관련된 정보들이 들어있지는 않았을까요?
"김건희가 국정 농단? 국어 사전 다시 정리해야”
윤석열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의 각종 국정 개입 의혹에 대해 "그게 국정농단이라고 한다면 국어 사전을 다시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김건희 여사를 '악마화'하고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대통령 부인이 대통령을 좀 도와서 어쨌든 선거도 잘 치르고 원만하게 잘하기를 바라는 그런 일들을 국정농단이라고 한다면 그거는 국어사전을 좀 다시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은 좀 들고요. 다만 이제 제가 검찰총장 할 때부터 일단 저를 타깃으로 하는 거지만, 집사람도 하여튼 침소봉대는 기본이고 없는 것까지 만들어서 그야말로 저를 타깃으로 해서 제 처를 많이 좀 악마화시킨 것은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기자회견 중 (2024.11.7.)
물론 대통령의 아내가 자신의 남편에게 사적인 차원에서 조언을 할 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김건희 여사가 공적인 영역에서까지 권한을 행사했느냐 여부입니다. 대통령의 아내가 합법적으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공무원은 여사의 활동을 보좌하는 제2부속실 소속 공무원일 겁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에 제2부속실은 없었습니다. 오늘 기자회견에서야 제2부속실을 설치했으며 오늘 부속실장 발령을 냈다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지난 2년 반 동안 김건희 여사가 공무원들에게 내린 각종 지시들은 모두 국어사전의 정의에 따른 '국정농단'의 범주에 속할 수 있습니다.
그 강력한 방증이 이른바 '김건희 라인'의 존재일 겁니다. '김건희 라인', 혹은 '7상시' 또는 '8상시'는 여당 대표가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공식적으로 언급할 정도로 비밀 아닌 비밀이 됐습니다. 김건희 라인에 대한 질문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김건희 라인'이라는 말은 굉장히 부정적인 소리로 들립니다. 그리고 대통령의 부인이 대통령이 어쨌든 국민의 뜻을 잘 받들어서 정치를 잘 할 수 있게 그야말로 과거에 육영수 여사께서도 청와대 야당 노릇을 했다고 하시는데 그런 대통령에 대한 아내로서의 이런 조언 같은 것들을 마치 국정농단화시키는 것은… 그거 또 우리 문화적으로도 이건 맞지 않는 거라고 저는 보고요.
(중략) 계통을 밟지 않고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저는 그거는 받아들인 적이 단 한 번도 없고요. 그리고 대외활동에 대해서는 결국은 대외활동은 국민들이 다 보시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좋아하시면 하고 국민들이 싫다 그러면 안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기자회견 중 (2024.11.7.)
김건희 라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마 윤석열 대통령 혼자일 것 같습니다. 김건희 여사의 대외 활동 문제는 '국민들이 싫어한다'는 전제 하에서 안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과연 '국민들이 싫어한다'는 것을 윤 대통령이 인정할지는 미지수입니다.
“김건희 특검 수용 불가”... 특검은 반헌법적 제도?
여당인 국민의힘 일각에서도 오늘 기자회견의 성패는 김건희 특검을 수용하느냐 마냐에 달려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완강한 어조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천명했습니다.
정말 정치적인... 이런 사법이라는 이름을 쓰고 이런 꼭 필요할 때 써야 되는 칼을 정치에 가지고 와서 하게 되는 그런 거를 초래한다고 하는 말씀을 이미 여러 차례 제가 드린 건데 다시 한번 반복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과오를 저지르고 불법을 저질렀다 그러면 아무리 사랑하는 아내지만 제 신분이 변호사면 제가 제 아내를 디펜드 해줘야죠. 그러나 대통령으로 있다고 하면 제가 그건 할 수 없습니다. 이거는 아내에 대한 사랑과 변호 차원의 문제가 절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윤석열 대통령 기자회견 중 (2024.11.7.)
김건희 특검법은 정치적인 것이다, 대통령으로서 사법이라는 칼을 정치에 가지고 와서 쓰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 따라서 김건희 특검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사법이라는 칼을 정치 영역에 들고 와서 휘두르는 건 윤석열 대통령의 주특기였습니다. 검찰총장 시절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겨냥해 벌였던 수사가 대표적입니다.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도 서해 공무원 사건,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등 "사법이라는 칼을 정치 영역에서 휘두른"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결국 우리 편은 안되고 남의 편은 다 되는 이중 잣대라밖에 볼 수 없습니다.
도이치모터스 사건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 시절 2년 동안 털만큼 털었다는 기존의 입장을 다시 한 번 되풀이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거짓말이 섞여 있습니다.
이미 2년 넘도록 수백 명의 수사인력을 투입해서 그야말로 지난 정부 때는 자기네 사람들 수사할 때는 이거는 불법이다. 별건 수사는 불법이라고 했던 그 별건의 별건을 수도 없이 이어가면서 정말 어마무시하게 많은 사람들을 조사했습니다. 왜냐? 김건희가 나올 때까지, 김건희 기소할 만한 혐의가 나올 때까지 수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기소를 못했지 않습니까. 그거를 다시 또 이런 방대한 규모의 수사팀을 만들어서 수사를 한다. 그게 문제가 있고요.
(중략) 다시 수사를 하면 제 아내만 조사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 사람들을 재수사를 해야 되는데 아무리 이 일사부재리라는 거는 사법 기판력이 있는 것에만 미치지만 우리가 통상 수사나 이런 검찰 업무에 대해서도 이렇게 한번 털고 간 거에 대해서는 사실상의 일사부재리라는 것을 적용합니다. 그거를 반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걸 가지고 특검을 한다는 자체가 이거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건 인권유린이 되고요.
윤석열 대통령 기자회견 중 (2024.11.7.)
우선 도이치모터스 사건에서 '별건 수사가 있었다'는 윤 대통령의 주장입니다. 별건 수사란 주가 되는 혐의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피의자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다른 혐의까지 확장해 수사를 벌이는 방식을 말합니다. 도이치모터스 사건의 주범인 권오수 회장을 예로 들어본다면, 주가조작 혐의와 무관한 횡령이나 배임 혐의까지 들추어 수사를 하는 것을 말하는 거죠.
그러나 도이치모터스 사건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딱 한 명, 1차 작전의 주포 이 모 씨는 다른 회사와 관련된 횡령 배임으로 기소가 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이 모 씨의 경우 어차피 주가조작 혐의는 공소시효 만료로 면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별건 수사'와는 결이 다르죠. "별건의 별건을 수도 없이 이어갔다"는 대통령의 말은 거짓말입니다.
검찰 수사에도 '일사부재리'라는 것을 적용한다는 말도 사실과 다릅니다. '일사부재리' 원칙은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법원의 판결 등에만 적용됩니다. 대통령은 검찰 업무에 대해서도 '사실상의 일사부재리'가 적용된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많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실소유 혐의에 대해서도, 검찰과 특검이 한 번씩 수사해 불기소한 것을 정권이 바뀐 뒤 다시 수사해 기소한 전례가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더 나아가 특검이라는 제도가 '반헌법적'이라는 대담한 주장까지 펼쳤습니다.
특검을 하니 마니를 국회가 결정해서 또 국회가 사실상의 특검을 임명하고 방대한 수사팀을 꾸리는 나라는 없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삼권분립체계에 위반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건에 대해서 수사권을 발동할 것이며, 어떤 사건에 대해서 어떤 검사에게 사건을 배당할 것이냐는 것은 그거는 법… 이거는 헌법의 기본, 삼권분립의 본질인 그건 행정권의 고유한 부분입니다.
(중략) 그래서 대통령과 여당이 반대하는 특검을 임명한다는 자체가 법률로는 뭐든지 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 자체가 기본적으로 헌법에 반하는 발상이고요
윤석열 대통령 기자회견 중 (2024.11.7.)
'대통령과 여당이 반대하는 특검은 헌법에 반한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동안 있었던 여러 차례의 특검은 모두 반헌법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대통령이나 여당도 자신에게 분리하는 특검에 대해 처음부터 찬성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장 윤석열 대통령이 참여했던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부터 성난 여론에 떠밀린 여당과 청와대가 이를 마지못해 수용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본인 역시 후보 시절 대장동 의혹에 대해 특검을 요구하며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기자들이 묻지 않은 질문들
지난 5월에 있었던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 비해 오늘 기자들은 상대적으로 날카로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당시 가장 비판을 받았던 부분은 추가 질문이 없었다는 것이었는데, 오늘은 한 가지 사안에 대한 집요한 릴레이 꼬리 질문도 이어졌습니다. 그래도 아쉬웠던 점은 기자들이 묻지 않았던 질문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간략히 정리해 봐도 대통령 본인에게 반드시 물어봤어야 할 질문들이 몇 가지 떠오릅니다.
후보 시절 대통령은 도이치모터스 사건과 관련해 김건희 여사가 4천만 원의 손해를 보고 절연했다고 했는데, 사실은 2차 작전 세력과 계속 관계를 맺으며 14억 원에 가까운 수익을 봤다. 왜 이런 거짓말을 했는가?
최근 뉴스타파는 윤석열 캠프의 불법 선거 사무실 운영 의혹과 이에 따른 정치자금법 위반, 뇌물 수수 의혹을 보도했는데 윤석열 후보 본인이야말로 이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관저 증축에 무허가 업체를 소개한 장본인은 누구인가? 관저에 정말로 스크린 골프장 등 호화 시설이 있는가? 역시 대통령 본인이 가장 잘 아는 문제 아닌가?
뉴스타파 대 윤석열 사건, 즉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은 반의사불벌죄 사건인 만큼 피해자의 처벌 의사가 있어야 사건이 성립하는데, 대통령 본인은 한 번도 피해자로서 처벌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처벌 의사가 있는가?
2011년 부산 저축은행 사건에서 윤석열 검사가 출국금지요청서에 직접 결재를 하는 등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의 범죄 혐의를 알고도 봐줬다는 증거들이 속속 공개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공공성' 인식이 없는 대통령을 확인한 기자회견
오늘 기자회견 중 가장 황당했던 부분은 대통령이 된 뒤에도 쓰던 전화 번호를 계속 썼던 이유에 대해 "가까운 사람들에게 새 전화번호를 일일이 알려줄 수가 없어서"라고 설명했던 답변입니다. 그러면서 본인이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아서 아내인 김건희 여사도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았고, 그래서 각종 국정 개입 의혹의 여지가 생겨났다고 했는데요.
대통령의 전화와 관련된 쟁점은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그 사이 미국의 도청 논란이 있었습니다. '비화폰'이 아닌 대통령의 개인 휴대전화가 도청됐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자신이 원래 쓰던 번호로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를 거는 바람에 채해병 사건 외압 의혹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논란 끝에 임기 절반이 지난 지금에서야 뒤늦게 '전화번호를 바꿨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모습을 비치는 게 2024년 대한민국의 대통령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2년 반 전, 대통령으로 선출한 윤석열이라는 인물은, 직위에 걸맞은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확인한 절망의 기자회견이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통해 확인하세요.
제작진
취재 심인보 이명선 임선응
연출 송원근 김새봄
촬영 정형민 신영철 김희주
편집 박서영
CG 정동우
디자인 이도현
출판 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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